◇ 참 가 자
 조 승 복 좌장 / 조승복소아과 원장, 용산구의사회장
 최 혜 영 이대목동병원 방사선과 교수, 한국여자의사회 학술이사
 권 오 숙 닥터네이쳐 클리닉 원장
 김 소 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보분야 리더(서기관)
 정 수 진 사노피파스퇴르 의학부 이사
 김 지 은 한양대병원 내과 전공의 3년차



















 조 승 복 좌장 / 조승복소아과 원장, 용산구의사회장(좌)
 최 혜 영 이대목동병원 방사선과 교수, 한국여자의사회 학술이사
 권 오 숙 닥터네이쳐 클리닉 원장(우)






















 김 소 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보분야 리더(서기관)(좌)
 정 수 진 사노피파스퇴르 의학부 이사
 김 지 은 한양대병원 내과 전공의 3년차(우)




조승복 좌장(이하 조)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에 제안을 받고 부담이 많았는데 어차피 하기로 한거 수다떨듯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서로 좋은 얘기 나눴으면 합니다. 저는 용산에서 소아과를 24년 동안 개원하고 있습니다.

 권오숙(이하 권) 저는 93년도에 대학을 졸업하고 개업한지 7년 됐습니다. 20~50대후반, 활동적으로 일하는 직장인 환자들을 주로 접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탈모에서 얼굴, 주름, 비만 등 모든 부분을 케어하고 있습니다.

 정수진(이하 정) 저는 제약회사에서 메디칼 디렉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MBA코스에 진학하기 위해 준비중이고요. 의사지만 진료이외의 부분에 흥미가 있어 이 분야로 들어서게 된 것 같습니다. 영역 확장으로 진로 다양성에 이바지하고 싶기도 했고요.

 지금은 의사도 진료 뿐 아니라 경영 등 모든 것을 아우를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졸업 후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근무하다 1년정도 진로에 대해 깊게 고민한 후 진료실보다 이 분야가 제게 더 좋을 것 같아 조인했습니다. 백신분야를 선택한 이유는 백신을 담당하는 제약계 의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들 이 안하는 분야를 하면서 느끼는 쾌감이 좋습니다.

 최혜영(이하 최) 이대목동병원 영상의학과 과장, 한국여자의사회 학술이사, 영상의학회 감사를 맡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는 유방환자를 전문으로 보고 있고요. 이런자리에 초대돼 영광입니다.

 김지은(이하 김지) 내과 전공의 3년차입니다. 높은 선배님들 모시고 이야기를 잘할 수 있을 지 걱정이 앞섭니다.

  우리때만 해도 내과에는 사람 별로 없었어요.

 김지 요즘은 내과가 인기예요. 그리고 여학생들이 성적이 좋아 많이 가고 있죠.

  우리때는 산부인과, 안과 순이었어요. 다 시대 트렌드따라 흘러가나 봅니다.

  우리때는 그래도 산부인과나 흉부외과로 많이 갔었죠.

  그런데 요즘 보면 산부인과나 소아과는 거의 없는 과로 취급되더라고요. 우리병원만 봐도 그래요. 오히려 정신과, 방사선과가 인기라고 하더라고요.

  내가 과를 정하던 시절에 미국은 소아과가 꼴등이었어요. 그때는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나라도 20년만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한숨 나오죠. 그래도 내년에는 복돼지띠라고 해서 좀 더 기대해보려고 합니다. 우리손자도 복돼지띠가 될 것 같아요. 며느리가 3년차 전공의에요. 임신한 몸으로 동분서주하고 있죠.
 참, 와인은 따를때 잔을 받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병은 뉘어놔야 하고요. 와인은 누워있어야 맛이 난다나요.

 김지 요즘 젊은 층에도 "신의물방울"이라는 와인을 주제로 한 만화가 인기예요. 맥주나 소주 대신 각광받는 주류죠.
 조 이제 좀 본론으로 들어가볼까요? 다들 자신의 일과 생활에 대해 소개 좀 해주세요.

  영상의학과가 환자 안보는 과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실제로 초음파하면서 환자들과 상담 많이 합니다. 환자들이 고개만 돌리면 모니터가 다 보이도록 설계돼 있는 진료구조도 큰 역할을 하고 있죠. 임상의와 상담하라고 해도 환자들이 스스로 찾아와요.

 권 저는 일이 너무 재밌어서 의사 안됐으면 뭐했을까 생각할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병원이 강남대로 복판에 있다보니까 직장인들이 주로 옵니다. 점심시간이면 주변 식당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중 제 환자들도 꽤 될 정도에요. 몇년전 까지만해도 환자를 사적으로 대하는 것을 꺼려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죠. 환자가 좋아지는 과정을 보면 나도 행복합니다. 피부과라 나아지는 것이 눈에 보이기때문에 더 그런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엔 개인적인 이야기하면서 친해진 환자들과는 등산도 함께 다녀요. 권위의식을 벗어버리니 편안합니다. 이자리에 올때도 좌담회라는 자리가 처음이라 고민을 많이 했는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시는 여의사분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인 것 같아요.

  정선생님 같은 경우는 의사 직업으로서 다소 생소해보이는데 어떠신가요?

 최근 여러 선생님들이 이 분야에 비교적 다른해에 비해 많이 들어 오셔서 약 60명의 선생님들이 일하고 계십니다. 저 같은 경우 전임의 마칠때 헤드헌터의 제안으로 면접을 보게 됐는데 정말 아무정보 없이 갔다가 몸살을 앓았습니다. 지금껏 해온 인터뷰와 너무 달랐어요. 회사정보 뿐 아니라, 굉장히 디테일한 분야까지 파고드는 심층면접 이었습니다. 제일 어색한건 단연 돈 얘기였죠. 면전에서 얼마의 급여를 원하냐고 물으니 당황스러울 수 밖에요. 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해요.

 지금 면접관이 돼보니까 그때 제 모습이 어땠을지 상상이 갑니다. 요즘은 의사인 남편보다 제가 더 바쁜 것 같아요. 업무도 그렇지만 해야할 공부가 많아서인 것도 같습니다. 또, 수직적 커뮤니케이션 뿐만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논리와 이해를 바탕으로 구성원이 만나 팀을 이뤄 운영한다는 점도 독특해요. 이 분야로 진로를 결정하려고 하는 후배가 있다면 먼저 영어 실력을 갖추기위해 준비하고 경영에 관한 배움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병원 업무보다는 조금더 빠르고 복잡하고 논리적인 의사소통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도 알아 두어야 합니다. 외과의사인 남편과의 대화가 답답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말을 논리적으로 빠르게하는 습관이 생긴것 같습니다.

 의사로서 진료이외의 분야에서 만족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대단하네요.

  의사 본연의 업무인 환자진료 쪽으로 한눈 판 적 없나요?

  일선 의사분들이 느끼는 환자와의 교감은 정말 부럽지만 그 부분은 봉사활동을 통해 느껴갈 계획입니다. 지금도 교회에서 매주 교인들을 대상으로 무료진료활동을 하고 있어요.

  정 선생님 덕분에 제자들에게 조언을 많이 해줄 수 있겠네요. 솔직히 의사사회는 위계질서가 확실한 곳이죠. 저도 시키는 일만 하다가 과장이 되고나니 책임자로서 일을 추진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내 결정에 우리과 65명의 직원들의 모든 것이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인턴과목 중 개설돼 있는 베이직경영을 사이버강의로 공부했습니다. 4개월 코스였는데 매일 한시간씩 해 시험도 보고 리포트도 썼습니다. 그런데 회계는 정말 모르겠더군요. 그 과목은 낙제했습니다. 하하.

 저는 강남대로 근처에서 개원하다 청담동으로 병원을 옮기면서 규모가 상당히 커졌습니다. 의료와 경영을 병행함에 따른 어려움이 크더군요. 의사는 진료만해서는 안됩니다. 경영을 배워야 하죠. 경영에는 간호사부터 인적자원관리, 기기구입, 모든 부분이 포함되기 때문에 진료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전문경영인이 아무리 잘해도 의료의 특성을 모르는 한 불가능합니다. 의사들도 CEO로서 마인드를 가져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예전부터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외국 학회에 나가보면 의사가 약물이나 화장품을 개발하면 강의도 하고, 비지니스맨이 되어서 직접 전시장에서 홍보도 합니다. 너무 신선한 모습이었어요. 그러나 한국은 그런 모습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장사꾼이라고 손가락질 당하기 일쑤죠. 이런 모습이 바뀌어야 진정한 의료산업선진화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렇죠. 의사의 삶은 지금껏 상당히 수동적이었습니다. 고정관념이 강한 집단 중 하나죠. 저만 봐도 나름대로 유연하게 살고자 노력했지만 어느샌가 많이 굳어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사들은 남에게 절대로 피해를 주지 않지만, 피해 받고 싶지도 않으려하는 집단입니다. 즉, 다른 집단과 상호작용하는 것을 꺼려하는 것이죠.
 이제, 좀 즐거운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볼게요. 저는 용산 전자상가 근처에서 개업하고 있어요. 그 전엔 청과물과 농수산물 시장이었는데, 그래서인지 환자들이 시장 상인이 많았죠. 다양한 일을 하는 환자들 보면서 여러가지 삶을 알게 됐어요.  잔뜩 젖은 장화신고 오는 환자들 덕분에 청소를 하루에 두서너번씩 해야 하긴 했지만 말이죠. 한 자리에서 꾸준히 하다보니 스승의날에 카네이션 가져오는 아이환자도 있고, 초등학교 때 진료받았던 아이가 의대에 들어갔다며 찾아오기도 했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 아직 의사초년생이라 이렇다 저렇다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되길 잘했다는 생각은 듭니다. 아직 여의사에 대한 환자들의 인식이 떨어져 트러블은 있지만 말이죠. 지금도 간호사로 취급하며 거부감 갖는 환자들이 왕왕있습니다.

  저때도 아가씨라고 부르는 환자분들이 많았습니다. 당시에는 "의사"라고 정정하곤 했는데 레지던트 지나니까 그러려니 넘어가게 되더라구요.

  훈련이 필요합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환자대응법도 훈련합니다. 미리 직급을 밝히면서 진료하는 풍토로 바뀌어야 해요.

  의사는 군대와 같다고 합니다. 하룻밤 자면 잘수록 생활에 적응이 되고 좋아질거에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일하시길 바랍니다. 그렇지만 언제든 긴장은 늦출 수 없는 것이 현실이죠. 저는 동료들과 만나면 40대 여의사는 백조같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겉으로는 우아해도 걸치고 있는 일이 너무 많아 속으로는 발버둥치는 백조같다고요. 남자가 하는 일 똑같이 하면서 가사일, 학회활동, 사회활동 등 소홀히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 병도 많이 나더라고요. 자기관리에 철저해야 한다는 점 잊지 않길 바래요.

  저는 여대에 있다보니 여의사들이 간호사들과 부딪치는 일을 많이 봅니다.
 그럴때 인턴은 간호사보다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면 됩니다. 일이 다르기때문에 잘나고 못나고를 따질 순 없습니다.

 노련한 간호사들은 오늘의 인턴이 몇년 뒤에 클 것이라는 것 알기 때문에 잘대해 줍니다. 무르익으면 다 좋아지죠. 그럼, 바쁜 국회일정으로 늦게 도착한 김소윤 서기관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죠.

 김소윤(이하 김소) 저는 2000년부터 보건복지부에서 근무하고 있고, 지금 건강정보보호법 개정 문제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의사가 공직생활을 한다니, 어려움이 많을 것 같은데요.

 김소 처음 의대들어와서 잘못들어왔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러던 중 거시적으로 전 분야를 다루는 예방의학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정책 전반을 다루는 것이 좋아 보였죠. 그래서 1학년 2학기때 과대표하고, 1년간 여학생회장까지 했습니다. 인기과에 가려면 공부 이외의 일에 한눈팔기 힘들거든요. 처음에 공무원을 이야기했을때 부모님은 반대하셨어요. 지금 남편인 남자친구의 격려가 큰 힘이 됐죠. 이제 공무원 된 지도 6년정도 지났고, 작년에 진급도 했습니다. 다른 분들에 비해 빨리한 편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업무가 학생 시절 생각한 것과는 달리 한 분야를 세부적이고 직접적으로 해야하니까 오히려 다른분야까지 넓게보지 못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스스로 결정하는 것보다 주어진대로 주어진 기간동안 해내야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아직까진 복지부의 조직구조가 의사 등 민간전문가들이 참여하기에 폐쇄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예전에 여성은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회에 나와서 왜그럴까 생각해보니 키워드는 정치를 잘하는것이었습니다. 여자도 정치할 줄 알아야하죠. 여자부서에는 비리가 별로 없다는 속설도 있을 만큼 여성인력은 정직하고 책임감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능력을 100% 발휘하기 위해서는 인간관계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는 로비의 의미가 너무 부정적입니다. 미국은 로비스트가 직업인데말이죠.
 회사에서도 일을 위해 필요한 사람을 만나고 얘기 하는 것 모두를 로비라 칭하더군요. 인식이 바뀌어야 해요. 의사도 정치마인드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죠. 경영과 커뮤니케이션긾 회계분야 다 들어가야 합니다. 그럼 이번엔 바쁜시간을 쪼개 여가를 어떻게 보내시는지긾 나만의 여가생활을 한번 자랑해볼까요?

  전 시간이 너무 없어요. 남편이 골프를 같이하자고 해서 3개월을 끊었는데 2번 갔습니다. 새벽 3시에 잠들어 7시 출근하는 일과이니 좀처럼 여유가 없죠. 일을마치고 집에 가면 12시가 넘어요. 그래서 생긴 습관이 일기쓰는 것입니다. 금고에 보관하면서 20년 넘게 써왔습니다. 귀가해 목욕하고 나서 음악 틀어놓고 한시간 정도 일기쓰는 것이 낙이에요.
 아이들은 어머니가 케어해줍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유일한 시간은 새벽입니다. 5시반에 일어나서 아이들이랑 40분 정도 산보를 합니다. 그 후 출근해서 7시반부터 10시까지 두시간 동안 하루에 할 일을 정리하죠. 아이들 잘때 집에 들어가면 정말 눈물나요.

 얼마 전에 아이가 연극 주인공이 돼 유치원에 가야할 일이 있었는데 그날 학회에서 강의가 있어 연극이 시작된 후에 도착했죠. 멀리서 연극하는 아이 모습을 바라보는데 언제 저렇게 컸나 싶어 눈물이 나더라구요. 연극이 끝나고 선생님이 아이들을 무대에서 부모들 품으로 내려주는데 내가 안왔으면 우리 아이만 외톨이 됐을텐데라고 생각하니 어찌나 미안한지. 늘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요.

  얼마전까지만 해도 논문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날이 얼마 안돼 여가는 감히 생각도 못했어요. 집에가서 TV보는 한 두시간이 제게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시간이죠. 처음엔 어떤 생활이 좋은 것인지긾 너무 힘들게 사는 것은 아닌지 고민 많이 했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머니한테 참 고마워요. 저도 친정엄마가 아이를 키워주셨거든요. 아이들과 떨어져 살아서 항상 미안했지만 잘 자라줘서 고마운 마음 뿐이에요. 큰딸은 지금 인턴인데 제 뒤를 이어 영상의학과에 지원했어요.

  저 역시 휴일에 여가를 즐기는게 힘들어요. 일이 내 의지대로 끝나지는 것이 아니라 주말에도 일의 연장이죠. 얼마전엔 남편에게 경고를 받았어요. 그나마 남는 시간엔 드라마를 보거나 서점가서 책을 봐요. 좀 더 여유가 있을 땐 남편과 외곽에 있는 찜질방에 갑니다. 숯가마라는 곳인데 원적외선이 나와서 피부가 탱탱해진다고 합니다. 땀 빼고 야외에서 멍하게 있는 그 순간 좋더라고요.

  거기 저도 가봤어요. 눈이 안좋으면 숯에서 나오는 파란 불빛을 보라고 해서 봤는데 한결 밝아지는 느낌이더라고요. 여기서 찜질방 친구를 만났네요.

  복잡하고 과학적인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여가는 단순하게 보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의사들에게 좋은 여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음엔 숯가마 토크를 해봐야 하겠네요.

  저 같은 경우는 사회적 욕심이 별로 없었습니다. 다만 한평생 살면서 내 역량을 다 발휘하면서 사는 게 소망이었죠. 그 생각 하면서 여기까지 온거에요. 남편의 외조가 컸죠. 남편이 제 적성에는 회사가 맞다고 격려를 많이 해줍니다. 언젠가 맘먹고 쉬려고 해봤는데 쉬는 것도 재주인 것 같더라고요. 저는 쉬는 재주보다는 일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아요.

 김소 제 일은 새벽부터 시작됩니다. 일요일도 다음주를 위해선 거의 일해야 하죠. 그래서 그런지 쉴 시간이 있을땐 웬만하면 아무일 안하고 쉽니다. 어쩌다 남편의 차에 "실려" 드라이브 함께 해주는 정도죠. 등산이나 운동까지 할 기력은 없어요. 주말에 청소나 음식이라도 좀 하려고 하는데 결혼 후 4년동안 거의 못했어요.
 부모님이 주말마다 음식 채워주시고 청소해주시죠. 저에겐 잠이 최고로 행복한 여가인 것 같아요. 일 안하고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드는데 부모님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어요. 다달이 나가는 것도 있고요. 하하.
 아이는 일부러 안가진 건 아닌데 아직 없어요. 10년 정도 사회활동하다 그때도 안생기면 입양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 후원해주고 발전하는 모습 지켜보는 것도 멋진 삶일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시간이 제일 많은 것 같네요. 1긾 2년 차엔 오프가 없어서 잠만 잤는데 지금은 당직이 얼마 없습니다. 예전보다 많이 한가하죠. 쉴땐 요가나 독서를 주로해요. 요가하면서 자세교정도 많이 됐고요. 오늘 선배님들 말씀 들어보니 그 많은 일들 어떻게 다 하실까 싶네요.

 그래서 저출산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우리 애들만이라도 많이 나으라고 항상 이야기합니다. 여건이 힘든건 인정하지만 둘 셋은 나아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저는 워커홀릭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일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가족의 중요성을 너무 잊고 살았던 것 같아요. 최근에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일도 가족을 위해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거죠.

  모든 일을 다 잘 할 순 없어요. 아니다 싶은 건 적당하게 거절할 줄 알아야죠. 예전 아이들 어릴때 내가 옷을 입으면 나가는가 싶어 아이들이 불안해했어요. 그래서 속치마만 입고 계속 있다가 애들 잠깐 없을때 부리나케 나오곤 했죠. 그러다 애들이 보고 울면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전공의 1년차일 때 속상해서 많이 울었어요.
 한번은 3년차 때 애가 아픈데 당직을 하고 있었어요. 정작 우리아이는 봐주지도 못하면서 의사를 뭐하러 하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날 의사 안하겠다고 선언했었습니다. 남편이 만류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만 뒀을거에요. 저는 그때 아이들이 언제든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이런일 더 생기면 그 즉시 그만두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겪다보니 둘째 가질 엄두를 못냈죠.

 결국 3년 터울로 낳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생길때 바로바로 낳아야하는 것 같아요. 둘이 되니까 떼놓고 나가기가 더 쉽더라고요.

 더 많이 아플줄 알았는데. 그렇게 둘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지금까지도 두 아이의 우애가 굉장히 좋아요. 저 같은 경우는 첫아이를 5학년때까지 직접 가르쳤어요. 교만이었죠. 하루종일 진료보고 4시가 되면 입에 침이 마를 정도인데 말이죠. 그리고 직접 가르치니까 모자간에 사이가 나빠지는 것도 있어요. 그때부턴 가정교사를 붙였죠. 지금은 아이들 다 키워서 독립시켰지만 24시간 일하는 아줌마를 두고 있어요. 제가 사치하는 딱 한부분이죠. 식구들은 6시 반이면 나가고 저는 9시에 나갑니다. 그 두시간반이 저에겐 정말 귀한 시간이에요. 그 시간을 쓰기위해서 아줌마를 두는 것이라고 봐도 과언은 아니에요.

 다른 여의사들도 모든 것을 다 해내려고 하지말고 꼭 필요한 부분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더 잘해줄 수 있는 다른사람에 맡겨야 해요. 몸이 힘들면 마음도 지치고긾 결국 친구도 가족도 잃게 됩니다. 바쁜건 오로지 나만의 사정일 뿐이죠. 바쁘다는 핑계로 주위에 피해를 주면 안돼요. 또긾 제 경험에 비춰볼때 의사가 아닌 친구들을 만들어 놓는 것도 중요해요. 저 같은 경우 아이들 친구 엄마와 친구가 됐습니다. 휴진일 때마다 그 친구들 만나요. 여가시간은 주로 남산 산보나 TV시청으로 보내요. 제일 부러운 것이 낮 1시에 목욕탕 가는 아줌마들이라니까요.

  저는 대낮에 자유롭게 쇼핑을 꼭 해보고 싶어요.

  같이 놀고 싶다는 생각도 드는데 막상 해보라고 하면 못하겠어요. 내가 즐거울 자리가 아니라는 걸 아는 거죠.

  너무 솔직하게 속얘기들을 많이 해주셔서 즐겁네요. 막바지가 되어가는 것 같은데긾 여의사의 가장 이상적인 배우자 조건을 꼽는다면 뭐가 있을까요? 가장 닮고 싶은 여의사가 있다면요?

  예전에는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이 좋았어요. 남편과는 소개팅으로 만났는데 외국어를 가르쳐주겠다고 해서 넘어갔죠. 지금은 자기 일 열심히하는 사람이 멋있어요. 혼신을 다해서 일하는 모습 너무 보기좋지 않나요? 닮고 싶은 여의사는 전에 프랑스에 갔을때 만난 분인데 자기계발에 엄청난 시간을 투자하고 있더군요. 너무 보기 좋았어요. 그 분을 계기로 제 삶이 조금 더 윤택해진 것 같아요.

  제 이상형은 지금 남편에요. 결혼한지 6년됐는데 모든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좋아요. 세상에서 유일한 나의 편이죠.

 조·최 아직도 콩꺼풀이 안벗겨졌나봐요. 너무 보기 좋네요.

 의사로서 제 모델이 되신 분은 부산에 계신 홍숙희 원장님이에요. 돈에 연연하지 않고 환자를 돌봐주는 선생님이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해운대에서 중학교까지 마쳤는데긾 그 분을 보면서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배우자 상은 같은 의사가 좋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직업에 대해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해요.

 지금 남편과는 동대문병원 레지던트때 만났죠. 지금은 개업 중인데 술과 친구 좋아하는 것 말고는 불만 없어요. 예전에 학교에 남고 싶었는데 자리가 없어 봉직의 생활을 하다가 서울아산병원에서 다시 시작했거든요. 그 과정에서 남편의 도움이 컸어요. 교수의 꿈을 이루게 해준 사람이죠.

 김소 제 남편은 저의 든든한 "김기사"에요. 직원들도 다 알 정도죠. 중요한 결정이 필요한 시기에 가이드도 많이 해주고요. 어쩔 땐 나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아는 사람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전 집에 가면 아기가 돼요.

 김지 선배님들 모두 의사부부시네요. 저도 배려 많이해주고긾 이해해줄 수 있는 같은 직종에 있는 사람이 배우자가 됐으면 해요.

 남편은 헐렁한, 편한 옷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그릇에 담겨져도 먹을 수 있는 물 같은 사람말이죠. 여의사들은 배려를 받아야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더 그래요. 제 삶의 모델은 권숙정 소아과 선생님이에요. 80세가 넘었는데 지금도 단아하고긾 부드럽고긾 깨끗하고 정갈하시죠. 저도 저렇게 늙었으면 싶을 정도예요.

  오늘 좋은 말씀해주셔서 무척 감사합니다. 2006년이 가고 새해가 시작되는 만큼 내년에 바라는 것 한 가지씩 이야기하고 마무리하죠. 저는 사회가 정돈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은 너무 뒤죽박죽이에요. 손주도 순산하기를 바라고요.

 김소 내년에는 의사들도 사회에 기여하고긾 희망을 제시해 줬으면 해요.

  저는 우리과가 별탈없이 운영됐으면 하는 바람이 제일 크네요. 딸이 영상의학과를 지원했는데 그것도 잘됐으면 좋겠고요.

 권 요즘들어 건강의 중요성을 느껴요. 의사들은 연금도 퇴직금도 없으며, 노동 그자체의 대가로 생활하는 겁니다. 내 몸하나 망가지면 끝장인거죠. 모두들 건강에 유의하세요.

 주위를 좀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삶이 됐으면 합니다. 모두가 나로 인해서 행복해졌으면 해요.

 김지 제 주변에 올해 아팠던 사람들이 많아서 내년에는 다 좋아졌으면 합니다.

 오늘 모두 초면인데 활발하게 말씀 잘 해주셔서 좋았습니다. 여의사는 성차별이 비교적 적은 직종으로 좋은 직업입니다.

 그러나 누가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인만큼 건강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의촌에 살고 있어요. 다른 의료기관과 진료시간이 겹쳐 시간 맞추기도 힘들고긾 아프면 두배로 창피당하죠.

 따라서 건강에 특별히 유의하고긾 우리의 삶을 위해 희생해주는 부모님과 남편긾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삽시다.

 그럼 내년엔 더 좋은 일들만 가득 하시길 바래요.

사진·김형석 기자 hskim@mo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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