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5N1, 인간내전염성 획득 단계만 남았다

 "언젠가 또다른 인플루엔자 대유행이 창궐할 것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 시기와 주범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 로버트 웹스터 미국 세인트주드어린이병원 감염병 전문가
 다시 한번 이 경고를 마음에 새겨야 할 때가 온 듯 싶다. 인류는 다가올 인플루엔자 대유행과 관련 여전히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H5N1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원흉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심증 뿐이다. 그나마 한때 하루가 멀다 하고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H5N1 관련 소식의 약발(?)도 다한 것인지, 국민들은 동남아 지역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는 H5N1 인체감염 사망사례가 "강건너 불구경" 할 일이 아니라는 경고에 어느정도 내성이 생긴 듯 하다.
 그런데, H5N1 바이러스가 전혀 의외의 지역에서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공교롭게도 AI와의 새 일전이 타종(打鐘)된 곳은 2003년 악몽을 반면교사로 대비해 왔던 한국이었다. H5N1이 철저한 방어막을 뚫고 언제 어디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 것이다.

한국 발생 소식에 국제사회 백신 대책등 경각심

 이번 사태와 관련 바이러스 확산을 막고 관련 산업에 미치는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었다는데 안심하며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국제사회는 한국의 H5N1 재발사태를 보며긾 인플루엔자 대유행 가능성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고 백신물량 구축 등 대응책 마련의 고삐를 다잡고 있다.
 지난 11월 29일 현재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해 공식확인된 H5N1 감염자가 258명으로긾 이중 154명이 사망했으며 그 수치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긽 이 치명적 바이러스가 인체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가고 있으며, 그 만큼 인간내 전염성을 가진 대유행성으로 변이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바이러스 clade 유형에 따른 백신 필요
 최근 "NEJM"에 "H5N1 Influenza - Continuing Evolution and Spread" 제목의 글을 발표한 로버트 웹스터 박사는 "H5N1이 대유행성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으며, 최근의 바이러스 특성을 고려한다면 대유행시 과거보다 대처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밝혔다.
 H5N1은 "clade 1"과 "clade 2"로 유형이 나뉘며, 후자는 다시 3가지 "subclade(아형)"로 분류된다. 문제는 clade와 subclade의 항원구조가 서로 달라, 예방에 각각 다른 백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물실험에서는 하나의 clade에 효과를 보인 백신이 또다른 유형의 감염은 예방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기도 세포감염 용이토록 변이 가능성 커
 지난 3월 23일자 "Archives of Internal Medicine"에 게재된 보고서에 의하면, 최근의 H5N1 바이러스는 인체감염시 하기도 깊숙한 곳에서 발견되며 "SAα2긾3Gal"형 시 알산(sialic acid) 수용체를 통해 세포를 감염시킨다.
 인후(咽喉)나 비강(鼻腔)을 포함한 상기도에는 "SAα2,6Gal"형이 있는데 이보다는 "SAα2,3Gal"형에 효과적으로 접합된다. 연구팀은 이로 인해 H5N1 바이러스 감염이 치명적인 반면, 전염력은 높지 않은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를 주도한 요시히로 가와오카 교수(美 위스콘신대)는 "H5N1 바이러스가 인체세포를 감염시키는 것은 단순한 변이만으로도 가능하다"며 "SAα2.6Gal"형에 쉽게 접합하지 못하는 이 바이러스가 인체내에서 변이의 요구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했다.

진단시기 늦어지면 타미플루도 무용지물
 H5N1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항바이러스제로 알려진 타미플루는 감염후 1~2일 시점에 투여돼야 적절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최근 3차례의 집단감염으로 주목을 받았던 인도네시아 환자들의 경우, 감염 5~7일후에 치료가 시작돼 타미플루 사용이 어려웠다. 터키에서 발생한 8명의 감염환자 또한 현재의 간단한 검사로는 조기진단이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첫 샘플이 환자의 비도(nasal passage)에서 채취됐는데, H5N1 양성반응이 나온 것이다.
 전문가들은 인후와 폐 깊숙히 침투해 세포와 결합하는 H5N1 바이러스의 특성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바이러스와 함께 진화하는 증상도 진단에 어려움을 준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티모시 유에키 박사는 "1997년과 현재의 H5N1 감염증상이 다르다"며 "설사가 적고 더 치명적인 반면, 열·통증·기침·숨가쁨 등의 일반적인 증상들은 여타 감염질환과 구분하기 더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대유행 구체적 대책 마련할 때
 H5N1은 대유행성으로 발전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인간내 전염성 획득)만을 남겨 놨다. 그런데 이 관문이 철옹성이 아니다. 단순한 유전자 돌연변이 하나만으로도 이 문을 통과할 수 있다. 지속적인 변이로 아형을 늘려가며 인간의 손길을 거부해 온 놈이 바로 이 바이러스다.
 최근 인도네시아 집단감염 환자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 인체간 전염을 명확히 규명치는 못했다. 하지만, 연구팀은 해당 환자가 가족·친척들로부터 감염됐을 가능성이 충분하며 제한적 증거 또한 확보됐다고 밝혔다.
 국소적으로 발생하는 가금류의 AI 감염은 우리 힘으로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음이 다시 확인됐다. 하지만, H5N1이 인간내 전염력을 획득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국내 전문가들이 이제 백신개발과 같은 거시적인 목표에 전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우선 타미플루의 비축확대와 함께, 진단기술은 물론 바이러스 변이까지 고려한 구체적인 백신개발 기술의 확보 등 보다 심도 깊은 정책이 준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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