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병원·관광청 손발 "척척"

태국계 해외거주 의사 영입 환자도 끌어와

 의료선진국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북미나 유럽권 나라를 지목하지 않을까 싶다. 그들 나라가 의료강국으로서 인정받고 있다기 보다는 그들의 국가 이미지가 의료시장을 대변하는 변수로까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실상은 어떠한가?

 복지제도를 두고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라 캐나다를 살펴보자. 그곳에서는 매달 정해진 의료보험료를 낸 사람에 한해 모든 의료기관의 서비스가 무상으로 제공된다.

 골절수술부터 심장수술까지 절차가 까다롭거나 진료비가 비싼 질병까지도 무료이기 때문에 노년의 사람들에게 있어 캐나다의 의료시스템은 든든한 버팀목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나라들의 의료시스템은 종종 오랜 대기시간과 수준 낮은 서비스로 말미암아 고객들의 불만을 야기시키기도 한다. 큰 수술을 앞두고 몇 달을 기다렸다는 하소연을 듣기란 다반사이니 말이다. 때문에 이들 나라의 사람들이 다른 나라로 눈을 돌려 대안을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일지도 모른다.

 몇 해 전부터 태국이 그 대표적 대안으로 떠오르며 각광받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오늘날 태국이 의료강국으로 떠오른 배경과 마케팅적 요소를 살펴보도록 하자.


태국 의료계의 작은 몸부림,
해일이 되어 돌아오다


 1997년 외환위기가 불어닥치면서 태국 사립병원들의 경영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세계적으로 연간 천만명의 관광객이 모여드는 관광대국 태국이지만, 사립병원만을 놓고 본다면 환자가 절반으로 감소했고, 43%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이후 그들은 앞다퉈 외국인 전문경영인을 초빙하면서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의료관광 상품을 개발하여 당당하게 세계인을 유혹하고 있다.

 태국 의료관광의 대표명사 격인 범릉랏병원은 특급호텔을 연상시키는 우아한 병원로비, 친절한 국제 고객봉사 센터, 다양한 부띠끄들과 제과점, 옥상의 휴식시설 등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있기로 유명하다. 예약 일정에 맞춰 프론트에서 체크인을 하고 스타벅스가 입점되어 있는 병원로비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등 심신을 안정시킬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치료를 받는 일등급 의료서비스 연상이 되는가?

 방글라데시, 베트남 등 주변국에서 시작 네덜란드·호주 등지에 사무실을 열고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기 시작한 태국의 사립병원들은 현재 미국의 저소득층과 아랍·동남아권의 부유층을 주요타겟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값비싼 미국의 보험료에 부대끼며 최소한의 서비스만을 받아오던 수천만명의 미국민들과 9.11테러 이후 미국비자를 획득하기 힘들어진 아랍과 동남아 부유층들이 태국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의료관광의 진면모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바트화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이를 기회요소로 활용한 태국은 의료관광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켰다. 그렇게 시작된 의료관광은 지난해 범릉랏병원만 보더라도 약 35만명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고 2천2백만 달러의 순이익을 올릴 정도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범릉랏병원 전사적 홍보활동
10여개 언어 웹사이트 제공


 사실, 태국이 의료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관광청과 보건복지부, 그리고 사립병원의 삼위일체 노력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의료시장 개방 정책에 맞춰 각 사립병원들은 태국의 저렴한 인건비와 건설공사비를 앞세워 최고의 병원시설을 갖추기 시작했고, 관광자원을 무기로 의료관광 상품을 개발하여 대대적으로 병원마케팅을 펼쳐왔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앞장서서 해외에 거주하던 우수한 태국계 의사들을 영입하는데 총력을 기울임으로써 질높은 의료서비스를 보장하는 한편, 미국의 10분의 1, 싱가폴의 3분의 1 정도로 치료비를 설정함으로써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제도적 장치 또한 돋보인다. 복지부는 공립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도 자유롭게 사립병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2만5천여명에 불과한 태국 의사 인력을 200% 활용할 수 있게 하였고, 사립병원들은 의사의 60% 이상을 계약직으로 고용, 진료한 만큼 수익을 가져가는 체제를 도입함으로써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고객서비스 개선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사립병원들이 제반시설을 갖추어 가는 동안 태국관광청은 주기적으로 세미나를 마련해 의료인들에게 관광전문가들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각 병원들 간의 마케팅 경쟁도 치열하다. 방콕병원은 연중 60여차례 해외의학회, 관광전시회 등에 참가했으며 태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과 각국 대사관을 직접 찾아가는 등 전사적인 홍보활동을 전개했다. 또한 범릉랏병원(www.bumrungrad.com)의 경우 영어, 아랍어, 한국어를 비롯한 10여개 언어로 웹사이트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는 데 적극적인 움직임이다.


CRM - 원투원마케팅 적중

 마치 태국정부에 의해 주도면밀하게 짜여진 전략 아래 진행된 것 같이 비춰지는 "의료관광" 프로젝트의 비밀은 북미권에 거주하던 태국계 의사를 불러들이는 것에서 출발했다. 때문에 현재 범릉랏병원의 의사 700여명 가운데 30% 이상이 미국 의사 자격증 소지자라는 점도 괄목할만하다. 1990년대말 불어닥친 재정난을 탈피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태국의 사립병원들은 그 경쟁력을 찾으려 부단히 고민했고, 그러던 와중에 미국에 근무하던 의사들의 영입을 추진하면서 뜻밖의 변수를 경험하게 된다. 일전에 필자가 "스위칭코스트"라는 기회비용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담당 의사를 교체하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는 설명을 한 적이 있다.

 같은 맥락으로, 태국계 의사들의 귀환은 패밀리닥터로서 그들이 돌보고 있던 미국 고객들을 태국으로 불러들이게 된 계기를 마련했고, 태국 사립병원들의 최고급 시설과 저렴한 치료비의 일등급 서비스를 경험한 이들 고객들은 입소문의 주체가 되어 미국 현지에 경험담을 퍼뜨리게 되었다. 입소문은 시간이 갈수록 그 영향력을 더해갔고, 해당 환자의 지인들을 시작으로 많은 사람들이 태국 의료관광을 경험하기에 이르렀다. 병원 측 역시 이러한 현상을 눈여겨 보며 이들을 중심으로 마케팅 타겟군을 선정하고 체계적인 원투원마케팅을 전개하여 온 것이다.

 요즘은 태국의 의료관광이 취재거리로 떠오르며 몇몇 태국의 사립병원의 경우 전파를 타고 유명세를 누리게 되었지만, 이 배경에는 정돈된 CRM-원투원마케팅 컨셉을 앞세운 마케팅 활동들이 일조했음을 강조하고 싶다. CRM IT 솔루션의 가동 역시 체계적인 고객관리에 한 몫을 거두었다. 범릉랏병원의 경우, 델의 글로벌 케어 솔루션(GSC)이라는 선진 IT 솔루션을 설치함으로써 고객중심의 마케팅을 실현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IT 솔루션은 다국어로 실행이 가능하게 짜여졌으며 접수처와 진료부서 나아가 경영관리부서에 이르기까지 해당 고객과 관련된 모든 제반 정보들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돕고 있다.

 태국의 사립병원들은 의사 그 자체를 고객과의 핵심 터치포인트로 인식하고, 의사들로 하여금 이 IT 솔루션에 등록된 고객정보를 적절한 마케팅 요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훈련시킴으로써 고객만족을 이끌고 있다.

 오늘날 세계 곳곳의 미디어에서 심심찮게 소개되며 그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신흥 의료강대국 태국의 이미지는 결국 최고의 시설과 수준 높은 의료진, 체계적인 고객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립병원들의 피나는 노력과 각 정부부처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빚어낸 결과의 산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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