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광고 100년사.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대한제국시절,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대중들에게 선보인 의약품, 제약업계 광고이다. 우리의 광고 역사가 100여년이라면 의약품 광고 역사가 그 시작을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지금도 의약품 광고의 내용은 우리 일상 생활에 빼 놓을 수 없는 유명한 명언(?)이나 유행어를 남기곤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지킬 것은 지킨다"는 광고 문구 하나만 보더라도 광고의 영향력은 제품 홍보와 기업 이미지 PR 기능까지 갖고 있다.

 현존하는 국내 의약품 광고의 효시는 1896년 11월 7일자 독립신문에 게재된 세창양행의 금계랍 광고<사진 1>로 보는 시각이 많다. 당시 말라리아 치료제로 선보인 금계랍(金鷄蠟)의 사전적 의미는 염산키니네를 일컫는다. 당시 광고 문구는 "세창양행 제물포. 세계에 제일 좋은 금계랍을 이 회사에서 또 많이 가져와 파니 누구든지 금계랍 장사하고 싶은 이는 이 회사에 와서 사거든 도매금으로 싸게 주리라"였다.(사진에는 미국계 사운선양행(Townsend & Co)의 "고샬기 샹품 금계랍을 싸게 파오"라고 되어있다.)

 광고라는 것은 이처럼 100여년 전에도 단순 명쾌한 표현으로 제품을 홍보하고 소비자 혹은 대중들에게 가장 강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국내 의약품 광고의 대표주자 격으로 일제시대부터 선보인 활명수와 60년대 이후 등장한 박카스를 살펴보자.

 1918년 4월 매일신보에 게재된 활명수 광고를 시작으로 1928년 2월 동아일보에 게재된 활명수 광고<사진 2>에는 활명수라는 한자와 함께 동화약방본포라고 적혀있다. 20년대 전후를 기점으로 활명수가 일종의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져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는 점은 1929년 7월 매일신보에 실린 광고<사진 3>를 보면 알 수 있다.

 광고 양쪽에 "이약 사실때 반드시 부친 상표를 주의하시오"라는 표현이다. 세월을 훌쩍 뛰어 올 3월 일간지 광고로 실린 까스 활명수 광고<사진 4>와 비교해보는 것은 어떨지.

 박카스 광고 변천사 또한 단순 명쾌한 광고의 특성을 보여준다. 1960년대 광고 카피는 "활력을 마시자", "승리는 체력에서"라는 것이었으며, 당시 대대적인 대중 광고를 위해 일종의 스폰서 개념을 도입 인기 외화 전투를 독점 후원하면서 진행한 광고<사진 5>도 있다. 이후 박카스는 "그날의 피로는 그날에 풀어버립시다" 등을 거쳐 지금 우리의 머리에 각인된 "지킬 것은 지킨다" 혹은 "꼭 가고 싶습니다", "젊은 날의 선택" 등이 있다.

 또 일제시대에 선보였던 광고<사진 6>를 보면 당시 일본 식민지하에 살던 우리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다.

 제약업체들은 제품 광고 외에도 대중을 대상으로 한 기업 PR에도 큰 노력을 기울여 왔다. 유한양행이 1938년 10월 29일자 동아일보에 게재한 기업 광고<사진 7>는 물론 동화약품공업의 초창기 기업PR, 혹은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유한양행의 상징 버들표(버드나무), 종근당의 TV광고, 곰으로 상징되는 대웅제약의 TV광고(독자들도 기억속에 충분히 상상이 가능 할 것이리라) 등도 일종의 기업PR로 볼 수 있다.

 이외에 국제약품 라디오 광고로 선보여 소비자가뽑은 좋은 광고상(2002년)을 차지하기도 했던 "가장 좋은 약은 사랑입니다", 환인제약이 모 방송국 코너인 "우리소리를 찾아서"를 후원한 캠페인 광고, 명인제약의 효 캠페인 등도 그 하나이다.































*자료 출처 : 한독약품의약박물관, 한국제약협회 60년사, 동아제약70년사, 동화약품공업 광고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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