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와 예수로 극적 표현

 인간과 인간의 모든 관계는 주고받는 것으로 성립된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은 이러한 인간관계의 원리를 초월하는 것으로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할 때 받을 것을 예상하거나 기대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며 또 받으려고 주는 사랑도 아니다.
 그렇다고 받지 못해 섭섭한 것은 전혀 없는, 그저 주고 또 주는 일방적인 사랑이다. 그래서 인간은 어머니를 통해서 사랑과 인내를 배우고 희생과 용서도 배운다,
우리의 생명이 위태로울 때 제일 먼저 달려오는 사람은 어머니이고 가장 가슴 아파하는 이도, 자식의 목숨 대신 자기의 목숨을 내놓는 사람도 어머니 이다. 자식이 죽었을 때 가슴치고 통곡하며 가장 비통해 하는 이도 어머니이다.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아픔이 마음의 고통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가장 비통한 모습이라면 자기보다 먼저 죽은 자식을 애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거장들은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애도하는 모습을 많이 그렸다.
 14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조토(Giotto di Boudone 1266~1337)가 그림 `애도`(1305년 경·그림 1)라는 그림이 있는데 인간의 슬픈 감정을 더 이상 슬플 수 없을 만큼 감동적으로 표현하였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 때 마리아는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차마 믿을 수 없어 넋을 잃은 표정으로 예수의 얼굴만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있다. 마리아의 뒤쪽에 서 있는 여인은 북받치는 슬픔을 참지 못해 두 손을 모아 살며시 자기 뺨에 대보고 있다.
 예수의 제자 요한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두 팔을 뒤로 힘껏 벌려 내뻗고 있으며 또 등을 돌리고 앉은 두 여인도 어깨를 들썩거리며 흐느낀다. 예수의 발치에 주저앉은 제자는 예수의 상처난 발의 못자국을 보고 마음이 찢어지는 슬픔을 토해 내고 있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은 하늘의 천사들도 마찬가지여서 갖가지 다양한 자세로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슬픈 감정을 이보다 더 실감 있게 표현한 그림은 그리 많지 않을 정도로 조토는 슬픈 일을 당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자세를 모두 이 그림에 그려 넣었다.
 예수의 죽음과 관련해 `피에타(pieta)`라는 주제로 그린 그림이나 조각작품들도 많다. 피에타란 영어의 경건 `piety`와 측은함 `pity`의 뜻을 내포한 이탈리아어로 기독교의 근간을 떠받치는 두 개의 주춧돌로 손꼽히는 용어이다. 그러나 미술에서 말하는 피에타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즉 죽은 예수의 시신을 앞에 눕혀 놓거나 품에 안은 경배화의 한 유형을 가리키는 것이다.
 예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끌어 내린 다음 입관하기에 앞서 마리아가 잠시 예수의 주검을 끌어안고 애곡하는 장면을 따로 떼어 냈다.
 이탈리아 화가 벨리니(Giovanni Jacopo Bellini1430~1516)가 그린 `피에타`(1570년 경, 그림 2)는 해 질 무렵의 붉은 노을이 죽은 예수의 창백한 시신을 비추고 있다.
 마리아와 어린 요한이 매장할 시신을 양쪽에서 지탱하고 있으며 예수는 석관 안에 선 자세로 상반신을 드러내고 있으며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있는 죽은 예수를 그려 이탈리아 피에타의 한 유형을 완성하였다.
 예수는 두 눈을 감고 있으며 고통을 완성한 자의 표정이고 죽으면서 마지막 기도를 올렸던 입술은 아직 다물지 않고 있다. 아들과 얼굴을 맞댄 마리아의 표정은 더없이 비통하다. 눈시울이 부풀어 올랐고 충혈된 눈에 눈물이 어려 있다.
 탄식과 절망은 고통과 죽음에 이처럼 가까이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어머니의 볼이 죽은 아들의 볼에 비벼 대고, 산 자의 손이 죽은 자의 손을 어루만진다. 예수의 상처로 고통과 수난을 짐작하게 하여 보는 이의 눈을 뜨겁게 한다.
 어린 요한은 예수를 끌어안고 외친다. 그의 얼굴은 무엇인가를 절규하는 모습이다. 그의 긴장한 목 근육이 부풀어 올랐고 눈시울도 달아올랐다.
 마리아가 내면으로 가라앉는 슬픔이라면, 요한은 이 세상을 꾸짖으며 부르짖는 절규이다. 어머니의 비통함이 죽은 예수에게 전해졌는지 그의 눈에서도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다.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는 그가 만든 `피에타`(1498~99, 그림 3)라는 조각 작품으로 한층 더 유명해 졌다.
 지금은 바티칸의 입구에 있는 피에타 조각 작품은 젊은 어머니 마리아가 죽은 아들 예수를 무릎에 안고 경건함과 측은한 동정심을 가지고 내려다보는 대리석 조각상이다.
 이 어머니의 구겨진 옷자락과 인물을 대리석으로 잘 조화시킨 이 작품은 예술과 기교의 완전한 극치를 이룬다. 이 작품의 위대성은 성모와 그리스도의 시체가 하나의 자연스러운 유기체로서 아름답게 균형잡힌 데 있다.
 종래의 독일 조각에서는 마리아가 안고 있는 죽은 예수의 몸이 얼어붙은 명태처럼 어머니의 무릎 밖으로 나와 있었는데 이러한 어색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미켈란젤로는 먼저 마리아의 무릎을 넓게 만들고 그 다음 예수의 다리와 몸과 가슴과 머리를 균형 있게 굽혀서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무릎과 가슴과 팔에 포근히 안기게 하였다고 한다.
 예수의 한쪽 다리는 무릎과 거의 직각을 이루고, 마치 누운 것처럼 엉덩이에서 부드러운 각선을 이루고 있다. 또한 갈비뼈 근처에서 윗몸이 마리아의 팔에 들려 악간 일으켜지고 머리는 죽은 시체처럼 늘어지게 조각했다.
 예수의 왼팔은 몸과 평행하게 놓이고, 어머니의 치마 주름 속에 오른손의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놓여있으며 오른쪽 어깨는 사후의 근육 이완으로 늘어질대로 늘어져 사후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실감하게 하며 죽은 자의 머리가 힘없이 젖혀져 있어 시신의 무게가 보는 이의 시선을 가깝게 점유하게 해 예수의 죽음은 비로소 죽음답게 표현하였다.
 마리아는 예수의 사명을 이해하듯 아들을 안고 경건하게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미켈란젤로가 마리아의 어깨에서 앞가슴으로 두른 띠에 `조각가 미켈란젤로`라고 자기의 이름을 새긴 것으로 보아 이 작품에 대해서 조각가로서의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신라시대에 만든 토우(土偶) 가운데도 피에타 작품이 있다<그림 4>. 죽은 사람 앞에 꿇어앉아 슬퍼하고 있는 모습이다. 죽은 사람의 얼굴에는 천이 덮여 있으며, 슬퍼하는 인물은 아마도 자식을 잃었거나 남편과 사별한 여인의 비통해 하는 모습이다. 얼굴의 표정은 토우이기 때문에 표현되지 않았으나 고개를 떨 그고 양 손은 시신에 대고 있는 자세로 비통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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