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용어로 정신병을 `psychosis`라고 하는데 그 어원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프시케(Psyche)라는 아름다운 처녀의 이름에서 유래된다. 영어의 psychosis, 독일어의 psychose는 모두 그리스 어원인 Psyche+osis에서 생긴 말이다. 그리스말로 osis는 경과 특히 병적인 경과를 뜻하는 꼬리말로 쓰인다. 그러므로 프시코오제 또는 싸이코시스라는 의학용어는 혼(魂)의 병적상태 즉 정신병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아름다운 처녀 프시케와 사랑의 신 에로스(Eros, 아모르, 큐피드로도 불린다)의 사랑이야기는 기원 2세기경 로마의 시인 `아풀레이우스`가 쓴 것으로 유럽에서는 멀리 가버린 남편이나 애인을 찾아 헤매는 여인을 그리는 대표적인 이야기이다.
 옛날 한 임금에게는 딸이 셋이 있었는데 세 딸 모두 예뻤으나 그 중에서도 막내딸 프시케는 황홀하리만큼 예뻐 어지간히 예쁜 두 언니도 그녀 앞에서는 추해 보일 정도였다.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그녀의 미를 찬미하기 위해 온 나라에서 모여 들어 미의 여신인 비너스(아프로디테)의 신전은 찾아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모욕을 느낀 미의 여신은 복수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렇게 프시케의 아름다움과 비너스 여신의 분노를 잘 표현한 그림을 영국의 화가 로드 레이톤(Lord Fredric Leithon 1830~1896)이 그린 `목욕하는 프시케`(1830, 런던, 테이트 겔라리, 그림 1)이다.
 프시케의 아름다운 몸매 뒤로 검은 휘장 아래 두 마리의 비둘기가 보이는데 비둘기는 비너스의 신조(神鳥)로서 비너스의 질투와 분노를 나타내는 것으로 프시케의 앞날을 예고하는 듯하다.
 여신은 자기 아들 에로스에게 "네 화살로 프시케를 쏘아서, 이 세상에서 가장 못 생긴 남자를 연모하도록 만들어라"고 명령했다. 에로스의 화살에 맞은 사람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에로스는 어머니의 명령대로 프시케를 찾아갔는데 그만 그녀를 보자마자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화살로 자기 가슴을 찌르고 말았다. 그 결과 사랑의 신이 프시케를 연모하게 되어 상사병에 걸리게 되었다.
 한편 프시케의 두 언니들은 행복한 결혼을 해서 왕비가 되었건만 아름다운 프시케만은 누구하나 청혼하는 이가 없었다. 그것은 에로스가 사랑의 화살을 다른 사람에게 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처녀가 돼가는 딸을 안타깝게 생각한 아버지는 아폴론 신에게 신탁을 청했는데 아폴론은 "네 딸에게 예복을 입혀 바위산 꼭대기에 혼자 두면 누군가가 데리고 갈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몸에 날개가 달린 무서운 뱀이니라"는 신탁을 내렸다. 그것은 상사병에 걸린 에로스가 미리 아폴론 신에게 도움을 청해 두었기 때문에 내려진 신탁의 내용이었다.
 신탁의 명령에 따라 프시케는 죽음의 신부로서 음산한 치장을 한 채로 산 정상에 버려졌다. 산위에 홀로 누워있는 프시케의 주위에는 어느덧 땅거미가 내려앉더니 어두워져버렸다. 두려움에 떨며 눈물 흘리고 있던 프시케는 별안간 아주 기분 좋은 서풍이 불어옴을 느끼고 이내 몸이 하늘로 떠 올라감을 느꼈다. 에로스가 품에 안은 것이다.
 이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 화가 부그로(Adolphe William Bouguereau 1825~1905)가 그린 `프시케와 에로스`(1889, 타스마니아, 타스마니아 아트, 그림 2)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과 더불어 에로스가 프시케를 가슴에 안고 하늘로 오르는 장면인데 프시케는 탈진된 상태에서 자기의 몸을 가누지 못하는데 어떻게 보면 황홀해서 무아지경에 빠진 것도 같다. 에로스는 자기의 소원대로 프시케를 얻었으니 만족과 기쁨에 찬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다.
 프시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향기로운 꽃바람이 불어오는 폭신한 풀밭 위였다. 평화로움으로 가득 차고 불안과 공포는 사라졌고,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가 그녀의 몸을 품었는데, 처음 느껴본 황홀감에 도취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는 환한 아침이었다. 살펴보니 맑은 시내가 흐르는 꽃동산 위에는 눈부시게 화려한 큰 성이 있었는데, 사람은 그림자조차 보이질 않는다.
 그때 어디선가 "이제부터는 이 성은 프시케님의 집이고 저희들은 모두 당신의 종들입니다"하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길을 안내했다. 그 목소리를 따라 들어갔더니 성 안에는 호화로운 가구가 가득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며 식탁에는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밤마다 에로스는 프시케를 찾아와 동침하지만, 눈뜨기 전엔 이미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프시케는 행복하기만 했다.
 이렇게 행복한 두 남녀의 모습을 조각으로 표현한 것이 조각가 카노바(Antonio Canova)의 작품 `아모르와 프시케`(1793, 파리, 루브르 박물관, 그림 3)이다.
 두 남녀의 포옹으로 사랑을 표현했으며 지극히 행복한 정도를 강직된 아모르의 날개의 높이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 동생이 잘 사는 것을 보고 시기한 언니들은, "네 남편은 필경 괴물 일테니, 잠자고 있는 틈에 등잔불로 비추어 보아서 괴물이면 단도로 찔러 죽이라"고 충동질을 했다. 마음 약한 프시케는 남편이 절대로 자기 얼굴만은 보지 말라고 타이르던 것을 잊어버리고 남편의 얼굴을 보고야 말았다. 하지만 프시케의 남편은 괴물이기는 커녕 꽃미남 에로스였다.
 남편의 얼굴을 보고 황홀해진 프시케는 그만 들고 있던 등잔불의 기름을 쏟았고 에로스는 몸에 화상을 입었다. 놀라서 깬 에로스는 "어리석은 여인이여, 이제 마지막이다"라는 말만 남기고 날아가 버렸다. 이리하여 프시케는 남편을 찾아 방랑길에 나서게 된다.
 프시케는 절망적으로 남편을 찾아다니다가 어느날 비너스의 성에 도달하게 되었다. 프시케를 본 여신은 "네가 앞으로 내 며느리가 되려면 이제부터 내가 주는 네 가지 과제를 하여야 하며,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죽음만이 너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고 소리쳤다.
 프시케가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대답하자 여신은 하루 사이에 산더미 같이 쌓인 여러 가지 곡물을 보리, 조, 수수 등 종류별로 나누어 갈라 놓을 것, 난폭한 숫 산양의 황금 털을 깎아올 것, 생명수 샘에서 생명수를 받아 올 것, 저승의 왕비 베르세보네에게 가서 미의 상자를 받아 올 것 등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과제들을 주었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과 다른 이들의 도움으로 프시케는 과제를 완수했다.
 그러나 그 과정이 말할 수 없이 힘들어 프시케는 미칠 지경에 달하곤 했다. 물론 프시케라는 말이 정신, 혼, 나비 등의 의미도 지니지만 정신병을 phsycosis라고 하게 된 것은 프시케의 미칠 듯 한 고뇌에서 유래된 것이다.

◇문국진 박사 약력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 학술원 자연과학부 회장 △대한법의학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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