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피부건강 위해 달려온 60년

1945년은 이땅의 피부과학을 하는 의사들에게 매우 기념비적인 해이다. 바로 오늘의 대한피부과학회가 탄생한 해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60년간 대한피부과학회는 한결같이 국민의 피부 건강을 위해 달려 왔다. 대한피부과학회는 지난 60년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는 사진 전시회를 갖는 등 보다 세계화된 피부과학을 위해 다양한 행사를 가졌다. 이에 본지는 대한피부과학회가 걸어 온 60주년의 어제와 오늘을 조명해 본다. 편집자

 1917년 5월14일 한국인 의사로는 처음으로 오긍선씨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피부 비뇨기과 초대 과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우리나라의 피부과학은 여명의 역사를 갖게 된다. 그리고 당시 오긍선 과장은 34년까지 이 직을 수행하면서 국내 피부과학을 뿌리 내리는데 앞장 서고 이영준(1934~1942년), 이학송(1943~1946년)에게 그 바통을 넘겨 주며 보다 견실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이때 박주풍, 이면식, 이하원, 이창종, 최재유, 윤중호, 김두영, 김상은, 윤만중 등도 조수로 재직하며 우리나라 피부과학의 틀 마련에 큰 몫을 담당한다.
 대한피부과학회의 역사는 해방 직후인 45년 10월 27일 당시 경성의학전문학교 재직 중인 오원석 교수와 경성제대 최재위 교수, 경성의학전문학교 및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김성환 전 교수, 세브란스 의전 이학송 교수 등이 의기 투합해 조선피부비뇨기과학회 창립 발기인 대회를 가짐으로써 시작된다.
 이들은 같은 해 10월 31일과 11월 9일 두번에 걸친 준비위원회 회의를 통해 11월 10일 48명이 참여하는 대한피부비뇨기과학회 창립 총회에서 오원석 경성의학전문학교 교수를 초대 회장으로 선출, 오늘날 대한피부과학회 태동의 주춧돌을 놓았다. 이날 부회장에는 최재위 경성제대 교수를 선출한다.
 그 다음해인 1946년 10월 서울의대가 처음으로 피부과와 비뇨기과를 분리, 독립된 피부과학 강좌를 마련하는 등 피부과학의 독립된 영역을 마련, 보다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의학의 한 분야를 보다 확고히 개척하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종합병원 등은 피부비뇨기과를 표방은 하지만 피부과와 비뇨기과 두 부분으로 나눠 진료를 하는 시스템으로 서서히 전환하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루기 시작한다.
 조선피부비뇨기과학회는 54년 6월 20일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피부과와 비뇨기과를 각각 분리해 독립된 학회로 새 출발하기로 결정한다. 바야흐로 대한피부과학회가 태동된 것이다.
 이날 대한피부과학회는 회칙을 통과시키고 1기 임원진을 뽑았다. 회장에 오원석 대한피부비뇨기과 초대 회장을 임명했으며 부회장에 김성환 경성여전 전 교수를 선임했다.
 이들 임원진들은 시대적 어려움의 극복과 의료의 발전을 도모함은 물론 피부과학의 성장을 위해 58년 6월 11일 정부로부터 정기 간행물 허가를 받아 60년 1월에 대한피부과학회 잡지 창간호를 발간한다. 이를 계기로 학술 연구 활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등 효과를 나타내며 발전 일로를 걷게 된다. 이 잡지는 그 이후 원고 모집과 자금 등의 문제로 폐간 위기를 접했지만 찬조금의 활성화를 통해 72년 연 2회에서 4회로 증간되는 성공을 거두며 오늘날 피부과학을 견인해 오고 있다.
 특히 63년에 개최된 15차 총회에서 총무부와 학술부, 재무부를 신설하고 평의원제를 도입하는 등 회무의 확장을 꾀하고 회원들을 위한 다양한 회무를 전개하는데 힘쓴다.
 대한피부과학회는 68년 당시 전남의대 김영표 교수가 도안한 로고를 공모를 통해 선발하고 이를 학회지와 회원증에 사용하며 의료계 내외적으로 피부과학의 이미지를 알리는데 주력, 피부과 의사들이 이미지 향상에 회무를 기울여 오고 있다.
 이에 앞서 대한피부과학회는 61년 전문의 시험에서 피부과와 비뇨기과로 완전 분리돼 실시됨에 따라 각 수련병원이 피부과와 비뇨기과를 각각 독립 운영하도록 촉구하고 해당 전문의에게는 양 과목 중 하나를 택하도록 권유하며 피부과학의 전문화를 더욱 견고히 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부과와 비뇨기과의 완전 분리는 70년 이후에야 성취되며 확실한 독자적 길을 걸는다. 70년대 이전에는 피부과와 비뇨기과의 회원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웠으나 7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개별적인 명단을 갖게 된 것.
 피부과학은 55년 4월에 이화의대 피부과학 교실을 개설하고 차영록 교수를 초대 과장으로 발령낸 후 61년과 63년 국립의료원 김재준 교수와 성모병원 장진요 교수를 피부과장으로 임명하면서 각 수련병원이 피부과를 신설, 70년 이후 피부과학이 독립된 전문 영역으로 우뚝 선 것이다.
 그리고 대한피부과학회는 국내에서 학회가 자리를 잡고 정착함에 따라 71년 열린 23차 총회에서 이사장제를 도입하고 초대 이사장으로 장진요 가톨릭의대 교수를 선출한다. 국내 피부과학의 세계화를 일구기 위해 특히 73년 국제 피부과 연맹회의 가입국이 된다.
 무엇보다도 학회는 79년 3월26일 임시총회를 열고 약사위원회, 간행위원회, 학술위원회, 의료보험위원회, 국제관계위원회, 재정운영위원회, 수련고시위원회 등 학회 조직을 발전적으로 개편한다. 77년부터는 그동안 대한피부과학회 잡지를 제호로 사용해 오던 것을 대한피부과학회지로 개명하고 78년부터는 격월로 발간 횟수를 조정, 풍성한 회원들의 연구 논문을 개재해 오고 있다.
 창립부터 개최해 오고 있는 학술대회는 70년대에 들어오면서 발표 논문수가 급격히 증가하며 우리나라 피부 과학의 발전상을 여실히 보여줬는데 78년 열린 30차 학술대회에서는 포스터 발표가 새로이 추가돼 회원들의 학구욕을 높였다. 79년부터는 회원들의 신상을 담은 대한피부과학회 요람도 발간, 회원간 단합과 화합을 과시하고 있다.
 피부과학 교과서도 피부과학 학술 활동이 왕성해 진 79년 9월30일 발간되며 우리나라 피부과학 발전에 커다란 획을 긋는다. 같은해 우리나라 회원들로만 학술대회를 개최하던 것을 발전시켜 10월13일과 14일 양일간에 걸쳐 한일피부과학 학술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기시작한다. 그 결과 10년 뒤인 89년 1월 영문 잡지인 Annls of Dermatology 1권 1호를 발행하게 된다. 이 영문 잡지는 95년 1월부터는 연 4회로 증회된다. 뿐만 아니라 82년 5월에는 피부과학 용어집 초간본이 발행되고 다음해 초판이 나오게 된다.
 또 75년에 10월11일 동아 학술상을 제정하는 것을 비롯해 82년 동국제약 학술상(전신 78년 4월 제정 UEC 학술상), 78년 쌍용 학술상, 82년 인봉 장학금 등 다양한 학술상을 제정해 피부과 의사들의 학술 연구 활동을 활성화시키고 이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99년에는 학회지를 다시 한번 증간해 월 1회 발간하는 등 학문적 발전을 꾀하게 되고 2003년에는 국민들에게 잘못된 피부과학 상식을 바로잡는 등 피부과학에 대한 계몽을 목적으로 5월 둘째주를 피부 건강 주간으로 제정, 매년 이를 개최하며 국민과 함께하는 대국민 의사상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피부과학회는 발전을 거듭해 오고는 있지만 72년 1월25일 학회 사무실이 위치해 있던 서울의대 부속병원 건물 화재로 인해 해방전부터 보관해 온 모든 기록이 담긴 서류와 참고 자료가 잿더미가 되는 등 크고 작은 불운과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대한피부과학회는 40년대와 50년대 태동을 알리며 60년대 독자적 영역 확보 노력, 70년대 확실한 정착 및 학술 연구 활동 주력, 80년대 피부과학 세계화, 90년대 완전 정착의 시기를 거쳐 2000년대 세계화된 국내 피부과학으로의 발전 등을 도모하며 60년을 걸어온 것이다.
하장수 기자 jsha@kimson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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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향해 달려간다
창립 60주년 맞아 세계도약 다짐

 대한피부과학회는 창립 60주년 기념 행사를 다양하게 개최하고 세계적인 학회로 발전하기 위한 재도약을 다짐했다.
 대한피부과학회는 지난 8일 올림픽 공원에서 단합과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회원과 가족 등이 참여한 창립 60주년 기념 단합 걷기대회를 가졌다.
 또 대한피부과학회는 지난 18일 창립 60주년 기념 행사 전야제 행사를 갖고 학회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세계로의 도약을 위해 모든 피부과 의사와 한마음 한 뜻으로 함께 한다는 결의를 다졌다.
 이날 전야제는 창립 60주년을 기념하는 케이크 컷팅과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동영상 상영, 원로 의사들의 축하 메시지 순으로 진행됐다.
 19일과 20일에도 코엑스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대한피부과학회 발자취를 보여주는 사진전시회를 포함해 회원 작품 , 피부약, 학회지, 학술대회 초록집, 교과서, 산하학회와 지부회 간행물 등의 전시를 통해 우리나라 피부의학이 걸어 온 60년을 되짚어 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번 창립 60주년 행사에서 박윤기 회장은 񓞹년 조선피부비뇨기과학회가 창립, 오늘처럼 기쁜 날이 있는 것은 그동안 학회 발전을 위해 힘써 온 역대 회장과 이사장을 비롯해 모든 회원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이제 1100여명이 회원으로 있는 거대 학회로 성장한 만큼 이에 걸맞는 학회 운영으로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대표 학회로 거듭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다.
 김형욱 이사장도 "피부과학회는 아시아 피부과학회 등 국제 학회를 유치하는 등 이제 궤도에 오른만큼 보다 학문적 탐구에 열정을 보이면서 대국민, 대정부 홍보 활동 등에 비중을 둬 지적 수준을 갖춤은 물론 도덕성을 겸비한 학회로 널리 인식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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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이사장 김광중 교수 인준
노병인 회장·임철완 차기회장 선출

 대한피부과학회는 지난 19일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57차 정기총회 및 학술대회를 갖고 한림의대 김광중 교수를 새 이사장으로 인준했다. 또 회장 및 차기 회장으로 중앙의대 노병인 교수와 전북의대 임철완 교수를 각각 선출했다.
 부회장은 윤재일 서울의대 교수와 이주석 계명의대 교수, 이주봉 피부과 의원장을 각각 뽑았으며 감사로는 방동식 연세의대 교수와 김양제 피부과 의원장을 선임했다.
 특히 대한피부과학회는 이날 아토피 피부염 환자에서 Tacrolimus 연고가 Substance P, Nerve Growth Factor와 Neurotrophin-3 발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박천욱 한림의대 교수에게 제6회 스티펠상을 수여한 것을 비롯해 김수찬 연세의대 교수와 박영민 가톨릭의대 교수에게 한국 P&G 연구비를 지급했다.
 한국 노바티스 연구비는 이원주 경북 의대 교수에게, 제10회 한국얀센 연구비는 이동윤 성균관의대 교수와 김상태 고신의대 교수에게 전달했다.
 제21회 대한피부과학회 연구비와 제5회 한미약품 연구비는 피부병리학회와 대한미용피부외과학회, 접촉피부염 및 피부알레르기학회에 전달했다. 제31회 동아 학술상은 이애영 동국의대 교수와 서기범 충남의대 교수가, 제4회 인봉학술상은 김유찬 아주의대 교수가 수상했다.
 이외에 스티펠 장학금과 태평양 장학금은 각각 최광성 인하의대생과 정의창 을지의대생, 박현정 가톨릭의대생에게 돌아갔으며 MSD 학술연구상 장학금과 AAD 장학금은 최정철 인제의대생과 최유원 이화의대생, 조소연 서울의대생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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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연구활동 이끌어 가길"
한일영 27대 회장 (1975~1976)




"감회가 깊습니다. 대한피부과학회가 회갑연을 맞고 후배의사들과 이를 축하하는 자리에 함께하니 기쁘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나라 피부과학은 세계로의 도전만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세월 많은 발전을 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믿습니다."
 창립 60주년 기념 행사 전야제에 참석한 한일영 27대 전 회장(84세)의 소감이다.
 ඓ년과 76년 2년에 걸쳐 회장직을 역임했었습니다. 그 당시는 우리나라 피부과학이 과도기를 거쳐 발전을 거듭하면서 학문적 활동이 왕성했던 때로 오늘의 피부과학의 기틀을 마련하는 시기였죠. 저도 임원진들과 서로 합심해 피부과학의 선진화를 위해 동분서주했던 기억이 납니다. 후배 의사들도 선배 의사들의 희생과 봉사 정신을 이어 받아 피부과 학회의 자랑인 인화 단결을 지켜 내고 이로인해 발전의 모티브를 만들어가기를 부탁드립니다."
 특히 그는 "최근 모 방송사 인터뷰에서 아이의 아토피 피부염을 치료하기 위해 외국으로 원정 치료를 간다는 한 국민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 피부과학이 선진국 못지 않은데 어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한숨을 토해 냈다.
 또 그는 피부과 의사를 그만 둔 지 10년이 됐다고 말하고 피부과 의사로서의 마지막 진료날에도 120명의 환자를 볼 정도로 분주하게 보낸 기억이 나는데 요즘 병의원은 경영 조차 어렵다는 목소리가 들려 안타깝다며 조속히 이에 대한 대책이 세워져야 국민이 건강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후배들에게는 창립 60주년을 계기로 세계속의 우리나라 피부과학이 아닌 세계의 피부과학을 선도하는 위치로 발돋움하도록 맡은 바 역할과 책무에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하장수 기자 jsha@kimson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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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전 초심으로 일할 것"
김광중 신임 이사장



"창립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선배들의 순수했던 열정을 되새기며, 또다른 번영의 60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초석을 다지고자 합니다. 더불어 갈수록 어려워지는 진료환경 속에 고군분투하고 있는 회원들의 권익증대는 물론 국민건강 증진을 제1과제로 삼아 회원 및 국민들과 늘 함께하는, 이들로부터 인정받는 학회가 되겠습니다. 최고수준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피부과학 분야의 역량을 바탕으로 대한피부과학회가 세계적 학회로 자리매김하는데도 매진할 것입니다."
 김광중 신임 이사장에 대한 주위의 관심과 기대가 높다. 새로운 번영의 초석이라는 원대한 포부를 밝힌 김 이사장의 중·단기적 목표는 ▲회원권익 증대 ▲국민건강 증진 ▲세계적 학회로의 성장이라는 3가지 핵심으로 요약된다.
 "회원의 권익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것이 국민과 함께 하는 의사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듯한 왜곡된 이미지를 타파하고, 국민 속으로 파고 들어가 그들의 건강증진에 기여하는 의사 본연의 책무에 전력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매년 개최되는 `피부 건강의 날` 행사를 더욱 발전시켜 피부건강을 위한 대국민 홍보를 확대·강화하고 친밀한 피부과 의사의 이미지를 전파하는 것은 물론, 진료시 발생하는 부적절한 관행의 자체개선 노력을 펼쳐 국민들로부터의 신뢰를 넓혀 나갈 것입니다."
 회원권익을 위해서는 대한의학회가 실시중인 세부전문의 제도를 학회차원에서 건선·여드름·아토피 등의 분야에 적용, 학회가 주관이 돼 회원들을 교육하고 활용 가능한 인증서를 교부키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등 전문적인 세부영역의 개척으로 새로운 활로를 열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는 계획이다. 2008년 제8차 아시아피부과학회의 서울유치에도 기여한 김 이사장은 2011년 세계피부과학회 유치와 더불어 한·일피부과학회 및 한·중피부과학회의 확대를 통해 세계적 학회로의 성장을 이뤄내겠다며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이상돈 기자 sdlee@kimson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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