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활동 보장 못받아…평생 노하우 아깝게 묻혀

임상분야는 진료 활동 다양…후학 유치 걸림돌

 이달말 33명의 의과대학교수들이 정년을 맞아 교단을 떠난다.
 청운의 꿈을 안고 20세 전후 의과대학에 입학한 이래 45년 정도를 학교·병원·연구소에서 교육과 연구 그리고 질병 퇴치를 위해 한 길을 걸은 그들이 이제 후학들에게 그 역할을 넘기고 제 2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한창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고 의욕과 능력이 있다면 `법적 정년`으로 손을 떼게 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평생의 노하우를 활용하는 시스템을 갖춰 보자는 적극적인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대의 한 교수는 "연구나 진료 등에 있어 제역할을 못하는 50대 의학자보다 활동이 왕성한 60대가 있다면 정년은 50대가 되어야 한다"며, 능력 정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5년전 정년한 한 외과의사도 "미국의 경우처럼 능력이 있다면 계속 기회를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으며, 조만간 은퇴할 울산의대의 모교수도 `정년 65세`라는 숫자에 얽매이면 60대의 상당수는 매너리즘에 빠지고 결국 교실에서 소외되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고 밝혔다.
 물론 취재중 만난 교수들은 지금과 같이 정년을 정하여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새로운 인식과 사고로 변화와 발전을 계속 이어가도록 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더 많았음을 기자는 기억한다.

13명은 의업 계속

 올해 정년을 맞은 교수들은 임상 28명, 기초 5명이다. 이중 서울의대 최국진(이대목동병원 근무), 김노경(국립암센터 촉탁의), 가톨릭의대 선희식(개원)·정규원(2006년 2월 정년, 이대목동병원), 고려의대 황정웅(개원), 이화의대 권성원(강남차병원), 울산의대 목정은·김우건·이명종(서울아산병원), 경희의대 김명재(경희대 거점병원 예정), 가천의대 최유덕(길병원 촉탁의), 중앙의대 김춘길(중앙대병원), 계명의대 김중강(대구 가원어린이 청각센터) 13명의 임상교수들은 새자리에서 보금자리를 틀거나 개원, 또는 현직장에서 자문의 역할로 진료만 하는 것으로 의업을 이어간다. 다른 15명의 임상교수들은 봉사활동을 계획중이거나 당분간 쉬고 싶다고 한다.
 기초는 경희의대 생화학과 조용호 교수가 명예교수로 강의를 계속할 뿐 다른 교수들은 교육·연구와 관련 뚜렷한 계획이 없다.
 임상의사는 명성이 높거나 경영능력이 뛰어나면 새로운 기관의 스카우트나 소속기관에서 진료활동을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 또 계속 진료활동을 위해 개원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초의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설자리가 없다. 게다가 기초의학교실의 교수정원을 대폭 늘리지 않는 한 정년후 진로나 신규 의학도의 진입은 더욱 어려워 기초의학 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년 이후에도 기초분야 전공자가 설 땅이 없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교수정원을 늘리고 교육·연구 등 역할을 분담하고 정년후 계속 일할 수 있다는 환경을 조성한다면 젊은 의학도들의 발길을 기초학으로 돌리는 하나의 유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말부터 7월초까지 독일 린다우에서 열린 `Meeting of Nobel Prize Winners in Lindau`를 방문한 서울의대 해부학교실 주경민 조교는 노벨상 수상자들과 젊은 과학도들이 한자리에서 강의를 듣고 토론하는 기회를 가졌는데, 수상자들은 꾸준히 자신의 연구를 계속했고 그 결과 노벨상을 수상했으며, 수상후에도 열심히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1982년 Zinc Finger Protein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Sir Aaron Klug교수의 경우 같은 연구를 20년 이상 지속하여 지난해 질병치료에 이용하도록 했다며, 연구를 계속 하도록 하는 환경이 중요함을 깨닫게 됐다고 덧붙였다.
 정년이라는 법적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껏 연구를 했다는 것이다.

기초의학 침체 한 요인

 반면 우리나라 기초의학 연구는 크게 침체돼 있다. 이미 기초의학 활성화 방안이 이슈가 될만큼 문제가 심각하다.
 임상의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전공의들도 위험성이 적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임상과를 선호하기에 더욱 절망적이다.이는 현 의료제도에서 돈을 못벌고 위험많은 분야는 발전은 커녕 존폐까지도 걱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년이후 갈 곳 없는 기초의학은 더더욱 최악이다.
 새로운 연구인력이 샘솟듯 밀려들어야 좋은 연구가 계속되는데 연구자가 찾지않으니 별 뾰족한 수가 없다. 결국 해답은 기초의학을 전공하고 있는 의학자들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왕재 서울의대 연구부학장은 "기초의학 내·외부의 문제가 크지만 학문적 업적이 세계의 유수 석학들과 비교해서 손색이 없게 될 때 기초의학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부학장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줄기세포연구에 전념한 황우석 교수에겐 연구소가 설립되고 연구비가 몰려들고 있다. 외국의 경우에서도 훌륭한 연구업적을 가진 학자들은 임상 교수들 못지않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 때가 되면 `65세 정년`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정년을 맞은 교수님께 진심으로 "그동안 큰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새 일터에서의 힘찬 발걸음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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