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족 학회 극소수" vs "투명한 활동 위해 필요"…대한의학회 "내부적으로 논의할 것"

국민권익위원회가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학술대회의 인정 기준을 강화하면서 학계 내부적으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가 만연했기에 자정작용이 필요했다는 입장과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탁상공론적 행정이라는 입장이 나뉘고 있기 때문이다.

권익위는 지난해 12월 예고한 바와 같이 국내 개최 국제학술대회 인정기준을 강화한 개선안을 지난달 20일 발표했다. 

국제회의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참고해, 권익위는 국제기구나 국제기구에 가입한 기관 또는 법인·단체가 개최하는 회의의 경우 △5개국 이상의 외국인 참가 △회의 참가자가 300명 이상이고 그 중 외국인이 100명 이상 △3일 이상 진행 등의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이를 국제학술대회로 인정했다. 

또 국제기구에 가입하지 않은 기관 또는 법인·단체가 개최하는 회의의 경우 △회의 참가자 중 외국인이 150명 △2일 이상 진행되는 경우에 국제학술대회로 간주했다.

이번 개선안은 국제학술대회 개최 요건 충족이 용이해 국내학술대회 규모를 국제학술대회로 확대 실시하는 부작용이 있어, 이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하는 데 목적을 둔다. 이에 권익위는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가 협회 등이 자율적으로 마련해 준수하고 있는 공정거래규약 등에 이를 반영할 수 있도록 협조 요청을 했다.

"충족할 수 있는 학회 극소수…지나친 규제가 학회 활동 발목 잡아"

권익위의 개선안에 대해 학계에서는 학회 활동을 위축시키는 '탁상공론적' 행정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강화된 국내 개최 국제학술대회 인정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학회는 극소수라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학회 죽이기' 정책이면서 오히려 학술대회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소화기계열 학회 한 관계자는 "권익위가 제시한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학회는 거의 없다"며 "국내 학회 발전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지는 못하면서 오히려 너무 심하게 강화시킨 것 같다. 지나친 규제가 학회 활동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토로했다.

순환기계열 학회 한 관계자는 "개선안으로 전체 학술대회의 수준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를 위해 수많은 변칙이 있을 것이며 숫자를 채우기 위해 관련 없는 사람을 모을 수도 있다"면서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가 남발되는 것은 분명 막아야 하고 자정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학회와 논의하지 않고 우선 던지고 보는 게 문제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지방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가 위축되면서 지역사회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또 다른 순환기계열 학회 한 관계자는 "지방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의 경우 외국인 참석자를 초대하면서 교통편과 숙박 등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국제학술대회로 인정받지 못하면 이들을 초대하기가 더 힘들어진다"며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외국인들에게 지역사회를 알리고 대한민국 문화를 홍보할 수 있다. 국제학술대회가 자꾸 오해를 받으니 학회 활동에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학회 규모 부풀어져…나아가야 할 합리적인 방향"

일각에서는 국내 개최 국제학술대회가 남발되는 것은 해결해야 할 문제였기에 투명한 학술대회 운영을 위해 권익위의 개선안을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소화기계열 학회 또 다른 관계자는 "권익위의 개선안에 따라 지금까지 문제가 없었던 학회는 앞으로도 국제학술대회를 잘 개최하겠지만 일부 학회의 기가 꺾일 수 있다"면서 "그동안 규모가 부풀어졌던 학회가 일부 있었기에 이를 규제하려는 움직임으로 봐야 한다. 다만 해결해야 할 난제가 있기에 의학회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외과계열 학회 한 관계자는 "규정이 까다로워져 학술대회 참석자 수뿐 아니라 국가 수도 맞춰야 하는 등 국제학술대회 개최가 힘들어졌다. 그러나 과거 규정에도 정확하게 맞추지 못해 약간의 변형이 있어 왔다"며 "투명하게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자는 목적이기에 따라가줘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방향이라고 본다. 다만 소규모 학회들이 국제학술대회를 열기 어려워졌는데, 이런 학술대회마저 국제라고 이름을 붙여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대한의학회, 올해 승인한 '12개' 국제학술대회 발표…권익위 결정에는 "내부 논의 필요"

이처럼 국내 개최 국제학술대회가 학계에서 뜨거운 감자인 가운데, 의학회는 권익위 결정에 앞서 '공정경쟁규약 관련 학회 및 학술대회 인정 심사 규정'에 따라 심의해 인정한 국제학술대회 명단을 지난달 발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명단은 공정경쟁규약에서 제시하는 국내 개최 국제학술대회 기준을 준수하면서, 이외에도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했다는 게 의학회 관계자의 전언이다.

현 공정경쟁규약에서 제시하는 국내 개최 국제학술대회란 △5개국 이상에서 보건의료전문가들이 참석하거나 △회의 참가자 중 외국인이 150인 이상이고 2일 이상 진행되는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 규모의 학술대회다. 여기서 보건의료전문가는 발표자, 좌장, 토론자가 아닌 청중으로 참가한 보건의료전문가로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의학회가 승인한 국내 개최 국제학술대회는 △제12차 아시아·태평양 망막학술대회 △대한내분비학회 춘계학술대회 △대한뇌전증학회 국제학술대회 △세계흉벽학회 및 대한흉부외과학회 제32차 춘계통합학술대회 △제14차 한일성형외과학회 △제39차 대한심장학회 심부전연구회 춘계학술대회 △대한남성과학회 제35차 학술대회 및 대한여성성건강연구회 제18차 학술대회 △Hypertension JEJU 2018 △골다공증 2018 국제학술대회 △제12차 국제 최소침습수술 심포지엄 △국제소화기내시경학술대회 △제24차 국제 생화학·분자생물학 연맹 서울국제학술대회 및 15차 아시아·오세아니아 생화학 분자생물학 연맹 및 KSBMB 연례학술대회 등으로 총 12개다.

한편 의학회는 이번 권익위의 개선안에 대해 내부적으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월 '공정경쟁규약 개선을 위한 간담회'를 비공개로 개최하면서 60여곳 학회의 임원과 함께 개선안에 대한 대책 마련에 나섰던 의학회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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