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 대한 집착 자체가 화근
질병과 공존하는 법 배워야

 1781년 로마의 에스퀼리노 언덕에서 조각상 `원반 던지는 사내`(그림 1, 미론 작, 기원전 5세기경, 로마, 국립 로마 미술관)가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놀랐다. 그것은 돌로 쪼았다고는 보기 힘든 대담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미론은 올림픽 5종 경기의 원반 시합 선수들을 보고 그 아름다운 육체에서 발산되는 건강미를 찬양해서 작품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 조각을 보면 곧 인간의 건강한 모습을 연상케 된다.
 인간의 욕망은 대부분 돈으로 해결될 수 있지만 돈으로도 해결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건강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인간의 욕망을 미끼로 건강을 얻고, 유지하고, 촉진시킨다는 온갖 방법이 앞 다퉈 제창되고 있지만 건강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건강에 대한 욕망은 한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소위 보약과 건강식픔의 선전이 넘치면서 건강염려증(健康念慮症) 환자가 부쩍 늘었다. 아는 게 오히려 병을 만든 셈이다. 좋다는 보약과 영양제는 다 구해먹고 몸에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불안해져 병원을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끝내는 의사의 진단도 믿지 못하고 자신이 진단을 내리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힘을 지닌 권력자들이 영원한 생과 건강을 얻으려고 노력해 왔지만 모두 허사였다. 나이를 더해서 야기되는 가령적(加齡的) 변화인 혈관경화현상을 현 단계의 의료로서는 막을 길이 없다. 즉 나이가 들면서 야기되는 혈관 경화가 결국은 혈액순환장애를 초래하여 노화라는 현상을 몰고 오게 되고 이 변화는 비가역적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설계된 생물로 여겨진다.
 의학은 감염증, 암, 치매와 싸우고 있다. 그러나 의학이 아무리 발전한다 할지라도 모든 병을 정복할 수는 없는 것으로 의학의 노력으로 퇴치 되어 과거의 병으로 여겼던 결핵도 근래에 와서는 저항균이 생겨 병이 증가되고 있는 것으로도 능히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병은 퇴치 되는 것 같지만 새로운 것이 또 생겨나는 형편이다.
 질병 없이 건강하고 완전한 육체와 정신을 지닌 `건강인간`이 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인간은 질병과 공존하며 살아간다는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다. 즉 건강은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사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건강의 기준을 신체에 둔다면 신체의 장애는 끈임 없이 야기 될 수 있기 때문에 불만은 해소될 날이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일상생활이 그리 괴롭지 않고 지낼 수 있는 것에 만족을 하고 그런 육체에 감사하고 지내는 것이 현명 할지 모른다.
 건강이란 삶의 리듬이고 평형상태가 스스로의 균형을 잡아가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즉 음악과 같은 것으로 노래 부르는 가수를 보면 곡을 이해하고 가사를 암기 했다 해도 기력이 없으면 노래할 수가 없으며 노래 부른다는 것은 심신 양면에서의 건강을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를 잘 표현한 것으로 프랑스의 화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가 그린 `카페의 여가수`(그림 2, 캠브리지 매사추세츠, 포그 미술관, 1878)가 있는데 노래 부르는 모습을 상당히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어 그 모습은 야성적이라 할 정도다. 이것이 바로 자연주의인데 화가가 조화로운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빨강, 노랑, 초록의 선들을 사용했으며 뱃속에서 우러나는 소리를 의도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목과 몸이 온통 뒤틀려 있다.
 가수의 노래 부르는 모습을 그리기가 쉬운 것은 아닌데 다른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가수들의 고상한 모습을 뽐내면서 입만 뻥긋하게 그리기가 일쑤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노래 부르는 순간을 위해 그 전에 있었던 일들, 예를 들어 어제 다른 사람과 다투었다든가, 감기에 걸렸었는데 아직 개운치 않다거나 하는 모든 일은 뒷전에 밀어놓고 이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 몸과 마음이 매우 건강해 보인다. 이것이 바로 건강의 모습이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숨쉬고, 소화하고, 잠자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세 가지의 주기적인 이런 현상은 생기와 활력을 얻고 에너지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감추어진 조화는 드러난 조화보다 언제나 강하다"라고 한 그의 유명한 말은 언뜻 이해가 가는 듯 하면서도 많은 것이 그 안에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드가의 그림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음악의 화음에서 오는 기쁨인데 이것은 복잡한 음조가 불협화음에서 협화음으로 전개됨으로써 주어지는 기쁨이다. 또는 마음 속으로 계속 생각하던 어떤 문제의 해결이 섬광처럼 영감이 떠오르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결국 분명한 어떤 것을 깨닫게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인데 그것은 우리가 재발견해야 하는 감춰진 조화로 생각된다. 거기서 우리는 회복의 기적과 건강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해석된다.
 건강이라는 이름의 현대의 병은 건강을 위해서는 죽어도 좋다는 위험한 발상의 동기가 된다. 건강은 스스로를 우리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물론 어떤 사람이 건강의 표준적인 가치기준을 확립하고 시도할 수는 있다. 그러나 건강하기 위해 이런 표준적 가치기준에 맞추려는 시도와 노력은 그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결과를 낳아 하나의 병이 될 것이다. 이것이 건강이라는 이름의 병이 된다.
자기 자신의 적절한 균형과 조화를 유지한다는 것에 건강의 본질이 있다. 다양한 경험적인 자료의 평균을 내서 얻은 표준적 가치기준을 개별적인 사례에 적용해서 건강을 규정한다는 것은 부적절하며 설득력도 떨어진다.
 절대건강을 요구하는 한 의학은 난처해지며 일병식재(一病息災), 즉 무엇인가 어떤 병을 갖고 있을 때 그것으로 인해 몸을 조심하는 계기가 되어 병과 공존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건강이라는 이름의 병을 이기는 방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문국진 박사 약력
△고려대 명예교수 △대한민국 학술원 자연과학부 회장 △대한법의학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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