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정훈용 교수 ... "낮은 내시경 수가, 경직된 정부 태도 문제"

▲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정훈용 교수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우리나라 내시경을 하는 의사들의 실력은 세계 최고라 알려졌다. 내시경 시술 건수는 물론 시술 이후 성적도 그 어떤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수준이 세계적 단계에 오르도록 견인한 사람으로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정훈용 교수를 꼽는다. 30년 동안 내시경 분야를 개척해 온 베테랑인 것은 물론 지금도 서울아산병원 소화기 내시경센터를 맡아 세계 두 번째 규모의 센터에서 하루 400여 명의 소화기질환자를 진료하며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서글픈 세계 최고? 

정 교수는 세계 최고의 내시경 실력, 수만 건의 내시경 기록 등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내시경을 하는 의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다고 강조한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 의사들은 손기술이 매우 뛰어나다. 이를 바탕으로 내시경을 많이 해야 하는 국내 상황이 겹쳐지다 보니 더 내시경 실력이 더 좋아진 측면이 있다"며 "턱없이 낮은 수가 때문에 내시경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이러니하게도 의사들의 경쟁력을 높였다는 웃지 못할 분석도 있다"고 말한다.  

또 "수십번 혹은 수백 번 내시경을 경험한 의사의 아웃컴이 좋은 건 당연한 일이다. 이런 면에서 환자에게 좋은 측면은 있다"며 "정부가 낮은 수가로 고생하는 의료진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도 내시경 발전에 한몫했다고 분석한다.

일본은 1. 2차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는 대부분 치료 내시경을 하지 않는다. 만일 치료 내시경이 필요하면 3차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가 1. 2차 병원에 가서 치료 내시경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3차 병원은 물론 1, 2차 병원 의사 가릴 것 없이 모두 치료 내시경을 하는 상황이라 의사들의 내시경 실력이 발전한다는 건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정 교수는 "내시경 실력에 어떤 힘이 작용했든 우리나라 의사의 내시경 실력은 최고"라며 "진단 내시경은 물론 치료내시경 등에서도 내시경 종주국이라 할만한 자격을 갖췄다. 최근에는 조기 발견하면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내시경 점막절제술(EMR), 내시경점막하박리술(ESD) 등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고 말한다. 

위암치료 성적 일본 앞서   

얼마 전까지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위암치료에서 몇 발자국 앞서 있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역전됐다.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소화기암 심포지엄(ASCO)에서 일본 국립암센터 아베 박사가 국가별 위암 발생률 대비 사망률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31%, 일본 41%, 아시아 태평양 국가의 평균은 74%였다. 위암 관련 최고 모범국가인 일본을 앞선 결과로 모두 깜짝 놀랐다고. 

정 교수는 이 같은 결과를 내시경과 상부위장관조영술(UGI)의 차이라고 분석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위암을 진단하는 데 있어 UGI는매우 중요한 검사법이었고, 이 검사법에 앞서 있던 일본의 치료 성적 또한 좋았다고. 

또 "내시경은 위암을 스크리닝하는 데 뛰어나다. 아직도 국가 건강검진 프로그램에서 UGI를 고집하는 일본은 국가 검진에서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며 "지난해 가이드라인도 내시경 하나만 하는 것으로 변경됐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위암은 얼마나 조기에 발견하느냐가 핵심인데, UGI로는 위암을 조기 진단하기 어렵다. UGI는 위암의 두 번째 단계를 발견하는 데 좋은 도구"라며 "일본 의사들은 자신들도 UGI는 믿지 않는다고 하고, 영상의학과는 UGI를 버렸다고 할 정도"라고 말한다.

"소모품 가격만 25만 원 넘어가는데" 

인터뷰 끝자락 정 교수는 내시경 수가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의사들이 내시경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음에도 여전히 4만 5천원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서움함이었다. 또 내시경점막하박리술을 할 때 소모품만 해도 25만원이 넘어가는데 지금과 같은 수가 체계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했다.  

정부의 경직된 태도도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혔다. 기존의 내시경 치료와 전혀 다른 치료법임에도 내시경을 활용하면 내시경 수가를 근거로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국내 의료기기업체들이 내시경 장비를 개발할 꿈을 못 꾸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정 교수는 "내시경 시술에 사용되는 의료기기는 모두 일본이나 독일 제품이다. 우리나라는 인프라, 정부 지원, 인력 등이 없어 도전하기조차 힘든 상황인데, 수가조차 낮아서 당분간 국내 제품은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