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上] 커지는 '법과 현실의 괴리'...반복되는 가치 충돌, 찬반 넘어 현실적 해법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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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 논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논쟁의 도화선이 된 것은 청와대에 접수된 한통의 청원.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이 청원에 한달만에 23만명 이상이 지지를 표하면서 낙태죄 폐지 요구가 다시 사회적 주목을 받게 됐다.

낙태죄 폐지·미프진 허용에 쏟아진 지지...'2호 국민청원' 선정

지난 9월 30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해당 청원은 "원치않는 출산은 당사자와 태어나는 아이, 그리고 국가 모두에 비극"이며 "현행법은 여성에게만 죄를 묻고 처벌하고 있으나, 여성에게만 독박책임을 물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청원인은 아울러 "현재 119개국에서 합법으로 인정하는 자연유산 유도약 미피진을 국내에서도 합법으로 인정하면,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구제할 수 있을 것"이라며 미프진의 국내 시판 허용도 요청했다.

이 청원은 한달 만에 무려 23만 5372명의 지지를 얻으며, 소년법 폐지에 이어 2번째 국민청원이 됐다. 

청와대는 '한달간 20만명 이상의 국민이 추천한 청원에 대해서는 정부나 청와대가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는다'는 원칙에 따라, 조만간 최초 제안된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한 입장을 내놓을 예정이다.

헌법재판소도 낙태죄 위헌여부에 대한 재심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논쟁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중절 사유 70%는 '법적 허용범위 일탈'...멀어진 간극 

낙태죄는 형법 '낙태의 죄'에 근거한다. 

모자보건법의 허용범위를 넘어 임신한 여성이 낙태를 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 부녀의 촉탁이나 승낙을 받아 낙태시술을 한 의사는 2년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모자보건법이 허용하는, 합법적 낙태의 범위는 모두 5가지다.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실제 인공임신중절술 사유의 70% 이상은 이같은 법적 허용한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2015년 보건복지부 국민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공임신중절술 경험이 있는 여성 43.2%가 원치 않는 임신으로 중절을 받았다고 답했다. 경제적 사유 혹은 주변의 시선을 이유로 중절술을 택했다는 응답도 각각 14.2%, 7.9%로 집계됐다.

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꽤나 크다는 얘기다.

반복되는 가치 충돌, 찬반양론 넘어 현실적 해법 찾아야 

낙태죄 폐지 논쟁은 수십년간 이어져 온 문제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쪽은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낙태죄 유지를 주장하는 쪽은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맞선다.

이 둘 모두 쉽사리 져버릴 수 없는 가치이기에 충돌만 반복되어 왔다. 

전문가들은 수십년간 이어져온 찬반논쟁을 넘어, 법과 현실사이에서 방황하는 여성과 의료인들을 구제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무조건적인 규제보다는 인공임신중절의 범위와 절차를 구체화하는 방법으로 법고 현실의 괴리를 줄여나가야 한다는 주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인공임신중절 허용범위를 정한 모자보건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외국의 사례를 참고해 임신 주수별로 위법 적용 여부를 달리하거나, 인정범위를 일부 확대하는 방안이 해법이 될 수 있다는 밝혔다.

일례로 미국과 독일의 경우 임신 12주 이내에 인신부의 동의 하에 의사가 실시하는 인공임신중절술에 대해서는 처벌을 하지 않고 있다. 네덜란드와 스웨덴의 경우에도 각각 임신 초기 본인이 요청한 경우에는 임신중절이 가능하다.

독일과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의무적 상담제도를 두어 시술전 3~8일 가량의 숙려기간을 갖도록 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임신초기중절술을 허용하고 있음에도 낙태율은 오히려 우리보다 낮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김형수 연구조정실장은 "현실적으로 수용가능한 법과 제도, 문화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며 "인공임신중절술을 선택하는 배경은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띈다. 의학적 사유와 윤리적, 사회경제적 사유 등 다양한 관점에서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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