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공단, 약가협상지침 개정으로 사용범위 확대 시 약가인하 기전 강화
정부 “건보재정 건전화 위해 업계도 부담 지어야” VS 업계 “연구개발 의지 저하”

 

최근 몇 년간, 그리고 앞으로도 제약업계의 가장 큰 이슈는 약가제도일 것이다. 

오랜 기간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신약을 개발해도 정부가 제값을 쳐주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전반적 평가다. 

우여곡절 끝에 신약을 개발해 보험약가를 받아도 문제였다. 과거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에서는 약의 급여 범위가 확대될 경우 예상 추가 청구액과 청구액 증가율에 해당하는 인하율을 적용, 상한금액을 사전인하 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 9월 약가제도 개편을 통해 약제 사용범위 확대로 급여 청구 증가 예상액이 일정 금액 이상일 경우 상한금액 및 예상 청구금액을 다시 협상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약가제도에 대한 업계의 불만은 여전하다. 지속적인 약가인하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약가 사후관리 제도를 재정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업계는 여전히 '반신반의'하고 있다.

복지부·공단, 약가 사후관리 개편 "건보재정 건전화 위해"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 기준에 관한 규칙과 이에 따른 약가협상지침을 개정, 지난달 18일 시행에 들어갔다.

개정된 규칙에는 약제의 사용범위(급여기준) 확대로 인한 약제 상한금액 직권조정 시 재정 영향이 클 경우 건보공단과 협상을 거칠 수 있도록 개선, 관련 내용을 신설했다.  

이에 따라 건보공단은 약제의 사용범위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약제, 이에 따른 요양급여비용 예상 청구금액이 사용범위 확대 예상 이전 예상 청구금액보다 100억원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약제에 대해 해당 업체와 상한금액 및 예상 청구금액을 다시 협상할 수 있다. 

요약하면, 약제 급여범위 확대로 급여비용 청구 증가 예상액이 100억원 이상일 경우 건보공단과의 협상을 통해 상한금액과 예상 청구금액 조정이 가능하다는 것. 

과거 약가협상지침과 비교할 때 무엇이 달라졌을까. 

과거에는 사용범위 확대로 인한 청구금액 증가가 3억원 이상으로 예측되는 의약품을 대상으로 예상 추가 청구금액과 청구액 증가율에 해당하는 인하율을 적용, 상한 금액을 최저 1%에서 최대 5%까지 사전 인하해왔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해당 제도는 급여범위가 확대되면서 약제의 사용량, 이에 따른 건보재정 부담이 증가하면서 약가를 미리 인하하자는 취지"라며 "하지만 최근 재정에 큰 부담을 주는 약제가 늘면서 한계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A라는 약제의 급여기준이 확대되면서 예상 추가 청구금액이 100억원 이상이거나, 청구액 증가율이 100% 이상이어도 최대 5%까지만 인하가 가능하기에 건보재정 부담을 줄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기존 최대 5%라는 사전 약가인하 비율은 사라지는 대신 건보공단과의 협상을 통해 인하율을 조정해 최대 사전인하율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것. 

정부 측은 지속가능한 건보재정과 재정 건전성을 고려할 때 제약사의 부담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업계 입장에서는 부담이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업계나 보험자, 정부를 떠나 재정에 부담을 주는 품목은 부담을 더하자는 합리적인 취지"라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약가협상지침 개정이 업계에 큰 부담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 관계자는 "예상 추가 청구금액이 3억원 미만인 약제의 경우 과거에는 사전인하가 됐지만, 지침이 개정되면서 해당 기준을 15억원 미만으로 상향시켰다"며 "제약사는 이윤을 얻되, 가입자의 부담을 미리 분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윈윈’하겠다지만…"여전히 업계 부담 클 것"

제약업계는 약가협상지침 개정을 정부와 업계가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계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재정 영향이 적은 품목에 대한 약가인하가 면제됨에 따라 제약사 입장에서는 소형 품목에 대한 약가 우위를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면서 "정부도 건보 재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형 품목에 대한 약가 인하를 확대 시행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재정 부담을 덜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재정 부담에 큰 영향을 미치는 품목과 관련해서 과거 제약사가 자진해서 약가를 인하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이번 약가협상지침 개정을 통해 관련 법적 절차가 마련됨에 따라 행정 절차가 간소화되고 명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국내사 관계자는 "그동안 관련 규정이 국내사에 미친 영향이 미미해 개정에 따른 변화를 예측하지 못하겠다"면서도 "규정이 명확해짐에 따라 정당한 협상을 통한 약가인하 등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의 지배적인 생각은 다르다. 업계는 약가협상지침 개정이 향후 약가인하 기전으로 계속 작용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정부 측은 이번 약가협상지침 개정이 업계에 부담을 크게 주지 않으리라 예상하지만, 약가인하에 따른 부담은 여전하다는 게 업계의 생각이다. 그동안 사전 약가인하를 통해 부담을 져왔던 것도 업계다. 

사용범위 확대로 약가인하를 경험한 대표적 의약품은 일양약품의 놀텍(일라프라졸)이다. 

14번째 국산신약인 PPI제제 놀텍은 2008년 11월 위산분비를 억제해 십이지장궤양을 치료하는 효능을 입증하며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시판 허가를 받았다.  

이후 1년여 만인 2009년 12월 1405원의 보험약가를 받고 시장에 선을 보였지만, 지금까지 네 차례 약가가 인하됐다. 특히 2013년에는 환자 수가 많은 역류성식도염 관련 적응증이 추가되자 사용범위가 확대, 판매량 증가가 예상된다는 이유로 기존 약가의 3.99%를 사전에 인하하기도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어찌됐든 정부 측 기조는 약가인하를 통한 건보재정 건전화 아니겠느냐"라며 "업계 입장에서는 연구개발과 판매 노력 등에 대한 의지를 저하시키는 정책이 될 것으로 본다.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고 전했다. 

국내사 한 관계자는 "복지부뿐만 아니라 건보공단과의 협상이 별도로 필요하다는 점, 이에 따라 60일 이상의 협상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은 업계의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다른 국가선 '사후인하' 한다는데…

약가협상지침이 개정됐지만, 정부의 사전인하 기조는 여전하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어떨까. 실제 같은 제도를 시행하는 국가 가운데 호주만 사전인하 기조일 뿐 대만과 일본은 사후에 일정 조건에 부합할 경우 가격을 인하하는 기조를 취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대만은 제약사의 재정 추계를 근거로 급여범위 확대로 인한 추가 지출이 연간 1억 대만달러(TWD) 이상인 품목에 대해 사용량-약가 연동 협상의 형태로 가격인하, 리베이트, 환급 등 다양한 계약을 체결해 재정에 대한 위험을 분담하고 있다. 

대만은 제약사의 과소 재정추계로 인한 제도 회피 방지를 위한 규정을 운영하고 있지만, 공급자의 의견을 중요하게 반영하고 있는 게 특징 중 하나다. 

일본은 신약으로 등재된 약제 중 적응증 등의 추가로 인해 예상 연간 판매액이 2배 이상 증가하고, 연간 판매액이 150억엔 이상인 품목에 대해 최대 15%까지 인하한다. 

다만, 약가개정 시 소아용 효능효과의 추가, 희귀질환 효능효과가 추가된 의약품의 경우 해당 약제의 가치상승을 가격에 반영, 환자의 의약품 접근성 향상 및 제약사의 적응증 추가 연구 개발을 장려하고 있다. 

반면 호주는 급여범위 확대로 인해 재정영향이 매우 클 것으로 예측되는 의약품에 대해 협상을 통해 약가를 사전에 인하하고 있다. 

제약업계는 적응증 추가로 인한 급여범위 확대를 보험재정이 추가로 소요된다는 관점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새로운 적응증을 추가하려면 경우에 따라 대규모의 R&D 투자가 필요하다"며 "급여범위 확대는 의약품의 가치가 상승할 뿐 아니라 환자의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키기에 장려할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적응증 추가 시 약가인하 면제해줘야”

한편, 업계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을 없애려면 이 같은 제도를 면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적응증 추가 시 사용범위 확대에 따른 약가인하를 면제해주는 방안을 마련해줄 것을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며 "적응증을 추가할 때 소요되는 연구개발비용, 새로운 치료법에 해당 약제가 옵션으로 자리 잡는 것에 대한 인정 등이 그 이유"라고 말했다. 

반면, 정부 측은 보험재정의 건전화를 위해서는 약가인하를 위한 기전 마련에 계속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 측 관계자는 "문재인 케어 시행에 따라 건보재정 지출이 늘어날 예정인 만큼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관련된 고민은 계속될 것"이라며 "과거도 현재도, 앞으로도 약가 사후관리 체계 개정은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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