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통증의 하나 `헤르페스`
맨처음 병명 붙인 틀프박사
렘브란트 `해부학 강의…`
그림 주인공으로 더 유명해져




임상적으로 가장 심한 통증을 느끼게 하는 질병으로는 헤르페스(herpes zoster 帶狀疱疹), 통풍(痛風), 담석통(膽石痛)을 3대 극심 통증 질환으로 들게 된다. 물론 사람에 따라 개인적 차는 있을 수 있겠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술한 3대 통증 질환에 걸리면 격렬한 통증 때문에 진통제 없이는 지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대상포진의 원인은 바이러스의 감염에 의한 것인데 수두(水痘)의 원인 바이러스와 같은 바이러스로서 처음 감염되면 수두가 생기게 되며 이때 감염되었던 바이러스가 죽지 않고 척수의 신경절(神經節) 등에 살아남아 지내다가 그 사람이 피로해 지거나 정신적인 충격, 고민, 악성종양, 당뇨병 등으로 몸이 쇠약해지고 면역상태가 저하되면 그 틈을 타서 발병하게 되는데 신경을 따라 피부에 발적(發赤)과 수포가 대상(帶狀)으로 나타나며 말할 수 없는 통증을 호소하게 된다. 나타나는 부위는 주로 가슴이나 옆구리 특히 혁대를 띠는 부위에 잘 나타나며 얼굴이나 성기에도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손을 써서 일을 하여야 하는 미술가, 작가, 악기를 다루는 음악가 등은 이 병이 발병하면 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 특히 어떤 작품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다가 막판에 몸에 피로를 느끼면서 일의 완성을 위해 무리를 감행하면 잘 발병하기 때문에 예술가나 문필가와 같이 작품 활동을 하는 분들에게도 잘 나타나는 질환이다.
 헤르페스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점막성 질환으로 성기 헤르페스(Herpes progenitalis) 라는 것이 있는데 감염 후 음부에 다수의 군집된 수포가 발생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성 활동이 왕성한 사춘기 이후에 흔히 감염되는 성병 중 하나로 성기 점막을 통한 일차 감염 후 주로 척추 신경절에 잠복 감염되어 이후 재발성(이차 감염) 음부포진 및 자궁 경부염, 질염 등을 일으키게 된다.
 음부포진이 처음 생길 경우 이를 제 1차 감염이라고 말한다. 이 1차 발병은 음부뿐만 아니라 전신증상도 동반하게 되는데, 남성에서는 약 40%, 여성의 경우는 약 70%에서 발열, 두통, 전신의 불쾌감, 근육통이 대표적 전신증상이며, 이러한 증상은 나타난지 8~9일 만에 사라진다.
 성행위 등을 통해 최초로 감염된 환자는 3~7일간의 잠복기를 거쳐 음부에 수포발생 수분 내지 수 시간 전에 국소 소양감(가려움 증) 및 작열감(灼熱感)이 발생한 후에 홍반(紅斑) 위에 단독 혹은 군집된 양상의 수포가 발생한다. 이때부터 음부 통증과 소양감은 지속되며, 수일 내에 수포는 터져 미란(짓무름)을 형성한 후 약 7~10일에 통증은 최고가 되며, 약 2주 내에 딱지가 생기면서 통증과 소양증은 소실된다.
 그리고 잠복기를 거치다가 다시 재발하게 되는데 이때는 배뇨통 및 질이나 요도의 분비물이 보이는 수가 있으며 전술한 음부증상은 역시 심한 통증이 동반되며, 이러한 통증은 음부증상이 시작 된지 9~13일 후에나 사라지게 된다. 자주 반복되는 2차 감염(증상의 재현)이 대표적인 합병증이며 만일 감염자가 임신부이고, 자연분만을 원할 때 질에 헤르페스성 수포(감염력이 강한 때)가 있다면, 태아의 감염 위험이 있어 이런 경우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
 또 임신성 포진(herpes gestationis)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임신 3개월 무렵부터 작은 수표를 중심으로 하여 발생하는 다양성 피진(皮疹)으로 분만 후 급속히 없어진다. 임신 중의 호르몬 변화상태가 하나의 원인이라고 생각되며 나이가 많은 임신부의 경우에 많고 대부분 임신 때마다 반복하여 발생한다.
 이렇듯 헤르페스라는 병은 여러 형태로 그 증상을 보이며 심한 통증을 동반할 뿐만 아니라 후유증으로 신경통이 남아서 두고두고 재발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심술궂은 질환인 동시에 그 뒷이야기도 많다.
 우선 이 질환에 헤르페스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붙인 의사는 네덜란드의 틀프(Nikolass Tulpius 1543~1674)인데 그의 이름을 단순하게 틀프(Tulp)라고 부르는 것은 그의 집 앞이 튤립의 구군(球根) 경매장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틀프 박사라고 불었다고 한다.
 이 질환이 피부 위를 마치 벌래가 기어가는 것 같이 퍼져나간다는 뜻에서 희랍어의 `기어간다`는 의미의 herpes를 사용하였다는 것이며 실은 이 질환이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으로 오는 것이라는 것은 1950년대에 들어서서 바이러스가 증명되고 나서의 일이다. 그러니까 이 질환은 그 병명이 붙어지고 나서도 약 280년간은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가운데 사람들은 아주 무섭고 지긋지긋한 병으로 취급되어 온 셈이다.
 이 병의 이름을 붙인 틀프 박사는 해부학자이면서도 임상에 조예가 깊었던 것으로 1652년에는 각기병(脚氣病)에 대한 논문을 발표해 유명해졌는데 그 보다 더 유명해 진 것은 같은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 (Harmensz van Rijn Rembrandt 1606~1669)가 그린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1632·사진)라는 그림의 주인공이 된 것 때문이었다. 그 그림은 모든 해부학 교과서에서 해부학의 시작 및 발달을 기술할 때는 반드시 이 그림이 활용되어 틀프 박사가 마치 해부학의 시조가 된 것 같이 보인다. 이 그림이 유명해 진 사연을 살펴보기로 한다.
 중세의 교회는 종교적인 이유에서 시체에 대한 해부를 엄격히 금지하였다. 그러나 수도원에서는 순수 학문적 동기에서라면 가끔 해부가 실시되었다고 한다. 이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시체에 손을 대는 것을 꺼렸으므로 시체의 배를 가르는 것은 신분이 천한 사람들에게 맡겼다.
 그러던 것이 점차 사람들의 해부학에 대한 태도가 달라져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화가는 손수 10대 이상의 시체를 직접 해부하였다고 하는데,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개화된 이탈리아의 사람들조차도 그가 `마법사`가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서는 사정이 달라져 해부학은 마법이나 주술이 아니라 만인을 위한 건전한 교양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렘브란트는 여러 장의 해부학 강의 장면을 그렸는데 그것은 바로크 시대에 있어서 교양이 있는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해부학적 지식을 지녀야 하는 필수적인 지식이 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화가는 집단 초상화를 자기 나름대로 묘사하여 대담한 극적 구성과 강한 명암 그리고 색채의 독창성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는 `틀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의 그림에서도 화가 나름대로의 독창성을 발휘하였다.
 즉, 시체의 발 아래쪽에 펼쳐진 커다란 책이 보이는데 이것은 그 유명했던 베살리우스(Vesallius)의 `해부학 교본`이다. 이 책은 당시 널리 읽혀졌던 교양서적이었고, 웬만큼 교양적 지식이 있고 돈이 있는 사람들은 집에다 개인적으로 해부실을 갖추어놓고 있었으며, 시체를 앞에 놓고 진행하는 해부학 강의는 마치 지금의 동네 축제처럼 온 동네 사람들이 관람하는 공동 행사였다고 한다.
 그림에 등장한 사람들은 고개를 내밀고 툴프 박사의 강의와 그가 지시하는 손의 방향을 주시하고 있어 당시의 인체 해부에 대한 지식을 얼마나 중요시 하였었는가는 이 그림을 통해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틀프 박사는 그의 의학적인 업적보다도 렘브란트 그림의 주인공이 된 것이 후세에 오래오래 전해지게 되어 더 유명해 졌다.

◇문국진 박사 약력
△고려대 명예교수
△대한민국 학술원 자연과학부 회장
△대한법의학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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