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급여등재 일정 등 적극적 의견 제시...환자 접근성 개선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자료에 따르면 2007년 8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들여온 신약은 240여 개에 이른다. 그러나 보험등재 성공률은 74%로 일부는 환자가 약제비를 부담해야 하는 비급여 출시 상황이다. 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실질적으로 의약품을 처방받는 환자단체의 목소리가 커져 급여결정 등 정부 정책에 조금씩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환자 접근성이 개선된다는 긍정적인 목소리가 있는 반면, 자칫 소외되는 질환과 약물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이른바 '환자운동'이 적극적으로 변모하면서 발생하는 명암을 짚어봤다.환자단체 적극적 움직임…영향력 커졌나?최근 이슈가 된 약제는 화이자의 유방암 치료제 ‘입랜스’다. 국내 호르몬 양성 유방암 환우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400여 명의 환우가 자발적으로 만든 단체인 'Hormone Positive Breast Cancer Forum, Korea'가 입랜스의 가격과 급여과정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공론화했다.해당 단체는 영국은 4주 기준 약가가 420만 원인데 반해 한국은 500~550만 원에 약을 구입하고 있으며, 한국혈액암협회 약제비 지원 대상 의약품이 아닌 데다 회사 측에서도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 비싼 약값을 환자가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고 꼬집었다.이에 한국화이자는 보도자료를 통해 내달 중으로 환자지원 프로그램을 하겠다고 밝혔다. 입랜스 급여 진행과정 중 한시적으로 시행된다며, 치료 접근성 보장을 위해 노력하겠다고도 덧붙였다.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은 환자운동의 시초가 된 노바티스의 불법 리베이트 행위로 급여정지 위기에 처했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급여정지는 일정기간 급여청구를 할 수 없게됨으로써 약값을 환자가 모두 부담하거나 대체 약으로 변경해야 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 표적항암제 글리벡으로 치료받는 대표적인 환우회인 한국백혈병환우회와 한국GIST환우회는 지난달 17일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및 집회를 진행했다. 

이에 한국백혈병환우회는 "글리벡에서 대체 약으로 교체할 경우 돌연변이 유전자 발생으로 내성이 생기는 환자는 드물지만,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고 새로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환자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복지부는 검토 끝에 환자 건강권을 우위에 두고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환자들의 목소리는 면역항암제의 급여등재에도 일정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 3월 심평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를 향해 면역항암제 및 표적항암제 급여화와 신속한 신약 접근권 보장을 촉구했다. 

환자단체는 "면역항암제는 말기 폐암환자들에게 치료효과가 있지만 1000만원에 가까운 약값은 환자들에게 큰 부담"이라며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해 적어도 돈 문제로 숨을 거두는 환자들이 없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와 옵디보(성분명 니볼루맙)는 약평위를 통과해 약가협상 단계에 있다. 

유전적 질환·희귀질환 환자 소외 우려도 

보건의료제도나 치료에서 환자들은 피동적인 수혜자나 다름없었다.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지만 주체적으로 제도나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역할을 부여받지 못했던 셈이다. 

수많은 환자단체가 생겨났지만 비영리단체로 등록된 곳은 5개 정도에 지나지 않고 여전히 제도권 보건의료 영역의 문밖을 서성일 뿐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온라인에서만 급여문제로 전전긍긍하고 불만을 제기하는 등 소극적으로 움직였다면 최근 일부 환자단체는 기자회견을 하거나 정부 측에 의견을 개진하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변화했다. 

환자 접근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제약사와 정부 입장에서는 이들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다. 반면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환자들이 속한 단체가 소외를 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희귀질환 치료제는 항암제만큼이나 비싼 약물이지만 환자 수가 적거나 유전적인 영향으로 드러내길 꺼리는 질환이기 때문에 환자들의 응집력이 약하다는 시선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환우회나 환자단체 위주로 조직적인 활동이 이뤄지는 질환이 있는 반면, 결속력이 약한 질환이 있다"며 "유전적 질환이라면 더욱 드러나길 꺼려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떤 질환은 환우회 소속 회원이 1명뿐인 경우도 있는데 상대적으로 소외되면서 박탈감을 가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회사가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급여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경제성 평가, 환자 규모, 약가 등을 고려해 출시를 포기하기도 한다"며 "작년에 통과된 희귀질환관리법은 희귀질환자의 등록, 통계 등 인프라 구축에 집중돼 있고 환자들에게 필요한 치료제 보험급여 지원을 위한 절차, 제도 개선은 고려되지 않았다.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라고 전했다.

'양날의 검' 같은 역할…발전적 관계 설정 필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환자단체 영향으로 급여시기가 앞당겨지거나 급여정지 위기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제약사 입장에서 득이겠지만 반대로 환자단체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다국적제약사 관계자는 "대부분 환자를 위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결정되지만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도 더러 있다"라며 "한국에서의 가격 결정 문제 등이 그 예다. 환자의 치료 접근성 향상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상호 발전적인 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환자단체도 바람직한 관계 설정에 동의한다. 환자단체 관계자는 "영향력이 높아졌다기보다 환자들이 이제서야 목소리를 낼 줄 알게 된 것"이라며 "질환과 약물 정보를 습득하고 제약사는 물론 보건의료 관계자들에게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환자단체들이 역량을 더 키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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