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혼, 눈에서 멀어지면 정신건강만 나빠져
졸혼, 눈에서 멀어지면 정신건강만 나빠져
  • 전홍진 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17.04.28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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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대한 통제 잃고 우울감과 불안, 알코올 중독, 배우자에 대한 의심을 강화시켜
▲ 전홍진 성균관의대 교수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졸혼(卒婚). 말 그대로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이다. 

이혼과 달리 졸혼은 결혼 계약은 유지한 채 각자 싱글 라이프를 즐긴다. 일본어로는 '소츠콘'이라고 하며, 일본 저널리스트 스기야마 유미코가 2004년에 쓴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에서 처음 언급했다. 

부부가 사이가 좋지 않아 따로 떨어져 산다는 점에서 별거와 비슷해 보이지만, 별거의 부정적 의미는 희석하고 각자의 독립적인 삶을 능동적으로 택했다는 의미를 더해서 만든 신조어다.

'졸혼을 권함'이 나왔을 때만 해도 졸혼은 생소한 개념이었다. 하지만 2013년 일본의 유명 개그맨 시미즈 아키라가 "노년에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며 '졸혼 선언'을 한 뒤부터 일반인 사이에서도 졸혼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고령화로 인해 결혼 기간 자체가 길어진 데다, 인생 후반부까지 '부부'라는 관계에 얽매여 평생 소망했던 일들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는 인식이 영향을 준 것이다.

이처럼 실제 혼인관계는 유지하면서, 이혼도 별거도 아닌 새로운 풍속이 일본에서 인기를 끌자, 미국 뉴스채널 CNN이 '졸혼'을 소개하기도 했다. CNN은 가정과 남편을 위해 희생해 온 중·장년층 아내들이 졸혼에 찬성하는 분위기라고 전하며, "남편은 나를 하녀 정도로 생각하지만 더 나이가 들거나 병이 생겼을 때 외로울 것 같아서 굳이 이혼까지는 하고 싶지 않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우 백일섭씨가 졸혼하고 혼자 살아가는 모습이 방영되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혼술·혼밥' 같은 트렌드가 나타날 정도로 개인의 삶과 자유롭게 지내는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진 한국 사회에서, 이처럼 졸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졸혼이 오히려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졸혼의 직접적 대상이 되는 연령인 한국 중년 부부의 삶은 무척이나 바쁘다. 직장 내에서는 책임자가 되는 나이이며, 한창 학업에 치이는 자녀들을 뒷받침해야 하는 시기다. 이처럼 여유 없는 삶을 살다보면 가족, 특히 부부 간 이해와 소통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황혼기에 은퇴한 부부가 집에서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되면 부부 사이를 복원해보려 하지만, 잘 되지 않고 서로 부담이 커지기도 한다. 부인이 삼시세끼를 챙겨줘야 하는 은퇴한 노년 남성을 '삼식이'라고 부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졸혼은 감정적 유대 관계는 그대로 지켜가면서 서로의 사생활과 자유를 존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지내다보면 서로의 존재감과 가치를 느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년기는 질병과 외로움으로 부부 간 도움이 더 필요한 시기다. 

옆에서 잔소리하는 배우자를 피해, 내 자유를 위해 택했던 졸혼이 오히려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통제를 잃고 우울감과 불안, 알코올 중독, 배우자에 대한 의심을 강화시켜 정신건강에 지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옛 속담에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부부의 유대 관계는 점점 약해지고 결국 별거와 마찬가지인 관계가 될 수 있다. 결혼 생활로의 재결합을 전제로 하지 않는 졸혼은 결국 새로운 형태의 가족 해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갈등을 수면 아래에 묻어두는 생활로는 각자의 진심을 느끼기 어렵다. 

졸혼을 생각하기 전에, 자신이 과연 가족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하며 살아왔는지, 배우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본 적은 있는지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오늘부터라도 부부간에 마음을 나누는 대화에 시동을 걸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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