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시 되는 황혼육아, 관계로 인한 우울증에 시달려

▲ 전홍진 성균관의대 교수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출근길 거리를 둘러보면 등교하는 손주의 손을 잡고 걷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조부모가 손자 양육을 도맡는 것을 '황혼육아(黃昏育兒)'라고 한다. 최근 황혼육아는 직장을 다니는 딸이나 며느리를 둔 어머니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역할처럼 자리 잡고 있다.

2015년 육아정책연구소가 영유아 손자를 돌보는 조부모 500가정을 조사한 결과, 평균적으로 60세의 조부모가 3세의 손자를 주당 42.53시간씩 21개월 동안 돌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큰딸의 아이를 어느 정도 기르고 나면 다시 둘째네 아이를 돌봐줘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일반 근로자의 노동시간인 주 40시간과 맞먹는 노동 강도로 몇 년에 걸쳐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60대 여성은 심리적·신체적으로 자신의 자녀를 기르던 때와는 다른 상황에 처해있다.

나이가 들면 찾아오게 마련인 고혈압이나 당뇨, 고지혈증, 근골격계질환, 퇴행성관절염 등의 질환으로 여러 종류의 약을 복용하기도 한다. 육아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쉽게 심신이 지치고 우울해지기 쉽다.

우울증이 발생하면 육아를 더 힘들어하고 화내는 횟수가 많아진다. 기억력이 떨어지면서 손주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을 잊어버린다든지 하는, 예전 같으면 절대 하지 않을 사소한 실수를 하다 보면 더 우울해진다.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관계로 인한 우울도 찾아온다. 20~30여년 전 자녀를 키웠던 경험과 소신에 따라 손주를 돌보다가 자녀들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

양육방식 탓하는 자녀와 다투다 결국 손자 손녀들에게 악영향

아이가 건강이 나빠지거나 좋지 않은 행동을 하면, '할머니가 오냐오냐 키웠다'거나 '아이를 꼼꼼하게 챙기지 않았다'며 양육방식을 탓하는 자녀들과 다투게 된다.

이럴 경우 부모·조부모와의 애착을 통해 성장하고 사회성을 배워야 할 아이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남편과의 갈등이 우울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60대의 아버지는 대개 퇴직한 상태고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진다.

가부장적인 측면이 많이 남은 이 세대 남성은 황혼육아를 하는 부인을 돕기보다는 오히려 부담이 되는 경우가 많다. 손자녀를 돌보며 신체·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느낄 할머니들에게 자녀, 그리고 남편과의 관계의 갈등까지 더해지면 더 큰 우울을 느낄 수 있다.

손주들이 자라 할머니의 손을 떠난다면 황혼육아로 인한 우울감이 줄어들까?

역으로 조부모가 분리불안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보통 분리불안은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는 것에 불안을 느껴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조부모가 오랜 시간 동안 아이를 돌보며 정이 들어서, 육아를 그만 둘 때 우울증이나 불면증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특히 할머니·할아버지가 자신의 사생활을 뒤로 하고 종일 육아에만 몰입했다면, 육아가 끝난 뒤 심한 '빈 둥지 증후군'을 호소할 수 있다.

손주를 기르는 동안 멀어진 친구들과 다시 가까워지기가 쉽지 않고, 마치 내 역할이 모두 끝난 것 같은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황혼육아는 쉽지 않다. 60대 조부모에게는 신체적·정신적으로 고된 일이다.

그럴수록 육아에만 전념하기보다는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고, 친구들과의 교류를 지속해야 한다. 육아에서 벗어나 운동도 하고 취미활동 등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황혼육아를 하는 가정이라면 '소통과 이해', '역할 분담과 존중', '고립감의 해소와 자신의 생활의 병행'이라는 원칙을 세우자. 아이는 즐거운 조부모와 부모 밑에서 클 때 세상이 즐겁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조부모가 아이에게 전달하는 정이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는 자양분이 되고, 조부모간 역할 분담을 통해 노부부 사이에 새로운 정이 쌓이고, 부모와 조부모간의 대화를 통해 세대 간 갈등이 해소되는 쪽으로 간다면 황혼육아의 부담이 덜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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