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 없이 남겨진 '숙제' 혹은 모두 승자가 될 '기회'

[메디칼업저버 김지예 기자] 의료계에서 지난 3주는 그야말로 폭풍 같은 시간이었다. 정부의 각종 유인 카드에도 좀처럼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갑작스럽게 방향을 선회하며 복귀에 잰걸음을 시작한 것이다. 

1년 반 동안 꽉 막혀있던 물꼬가 트이자, 유속은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졌다. 7일 김민석 총리, 8일 보건복지부 이영훈 차관이 연달아 전공의와 의대생을 만났고, 12일 의대생 전격 복귀 발표에 이어 14일에는 전공의들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공식 방문하는 등, 의정 간 대화는 말 그대로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점들이 남아있으나, 이 속도대로라면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복귀는 조만간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들의 복귀를 바라보는 시선은 의료계 내부와 외부에서 극명하게 엇갈린다. 시민들은 이들의 복귀에 화답하는 정부를 보며 "정부가 또 의사들에게 졌다"고 비소하는데, 정작 전공의와 의대생 사이에서는 "결국 얻는 것 없이 맨손으로 항복했다"는 자조가 나온다.

그럼 진짜 이긴 것은 누구일까? '아무도'다. 승패를 논하기엔 아무도 손에 쥔 것이 없다. 그냥 숙제들이 남았을 뿐이다. 수련환경을 현실에 맞게 개선하고, 붕괴 직전의 필수의료와 지방의료에 인력을 공급하며, 미래 의료환경을 예측해 매년 섬세하게 의대 정원을 조절하는 등의 산처럼 거대한 숙제들이다. 

그간 소통을 거부하고 외따로 떨어져 버티기만 하던 젊은 의사들의 행태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모든 것을 그들의 이기심과 아집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기실 이번 의정갈등은 이 숙제를 외면하려는, 혹은 쉽게 덮으려는 관성적인 행태에 젊은 의사들이 튕겨 나간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의대정원이 복구되고, 전공의의 근무시간을 줄이고,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가 만들어졌음에도 갈등이 해소되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이다. 그간 정부는, 그리고 의료계 기성세대마저도 이 숙제를 제대로 마주하고 해결하려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의료환경을 빠르게 변하면서, 이 숙제들을 더 이상 덮어두거나 외면하기는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의료 시스템을 지속하기 위해 큰 수술로 체질을 바꿔야만 하는 시점이 왔다. 

이제 의정은 '의료정상화'를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겠다고 한다. '정상화'라는 말에 사태의 본질이 담겼다. 의정갈등 이전의 상황일지, 혹은 숙제가 해결된 상황일지 '정상화'의 기준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승패가 새롭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 모두 승리하거나 혹은 모두 패배하거나.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