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의사회 "법원이 의료진과 가해자를 동일하게 취급"
판결대로면 복통 환자 치료 전에 4000가지 가능성 설명해야

이미지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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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김지예 기자] 데이트폭력 피해자가 응급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사망하자, 법원이 가해자와 더불어 의료진과 병원에도 공동 책임을 물었다. 이를 두고 의료계는 법원의 잘못된 판결로 응급의료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며 분개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7일 성명을 내고 법원이 폭력 가해자와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한 의료진을 동일한 범죄자로 취급했다며 비난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데이트폭력 피해자의 사망사건에 대한 2심에서 응급수술을 위해 치료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의료진을 폭력 가해자와 동일한 범죄자로 취급한 이번 판결에 심각한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며 "향후 이러한 응급조치와 응급수술을 위축시켜 생기는 모든 피해는 이번 판결을 주도한 법원의 잘못이다"고 못 박았다. 

이어 "폭행으로 응급수술에 들어갈 정도의 뇌출혈 환자는 당연히 사망 가능성이 있는 중증환자이며, 이를 초래한 것은 당연히 가해자"라며 "응급처치와 수술을 준비한 의료진에도 피해자 사망 책임을 같이 묻겠다면, 의료진을 만나지 않았다면 살았을 것이라는 전제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중심정맥 삽입은 혈압이 불안정한 환자에 반드시 필요한 술기로, 모든 술기에는 위험성이 존재하지만 이를 감안하고라도 필요한 경우 시행하는 것"이라며 "법원의 논리대로라면 중심정맥을 잡지 않아 수술 중 혈압이 떨어져 사망한 경우에도 역시 똑같이 의료진에 책임을 물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법원이 언급한 '설명의 의무'에 대해서도 "그들만의 애매한 잣대"라며 "설명 의무를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응급실의 복통환자는 사망 가능성부터 4000가지의 병명을 설명해야만 할 것"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로 응급실에서는 향후 중심정맥을 잡아야 하는 환자에게 소극적으로 임하게 될 것이며 중심정맥 삽입이 필요한 중증 환자 수용과 진료를 더욱 꺼리게 될 것"이라며 "어쩔 수 없이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법원이 처벌하겠다고 한다면, 향후 위험하고 합병증이 예상되는 모든 환자는 어떤 의료기관에서도 치료를 거부당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비전문가인 법원이 의료의 적절성에 판결의 칼날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은 응급의료와 중증환자 치료의 포기를 종용하는 지름길"이라며 "보건복지부와 정부는 더 이상 구경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법적 리스크 해결을 위한 대안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광주고등법원 제3민사부는 최근 피해자 A씨의 유족이 가해자 B씨와 전남대학교병원, 담당 의료진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피해자 A씨는 2017년 10월 B씨의 데이트폭력으로 머리를 심하게 다쳐 전남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응급수술을 위해 의료진이 중심정맥관을 삽입하는 과정에서 동맥에 미세한 관통상이 발생,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사망이 의료 과실과 객관적 관련 공동성이 있다"며 B씨와 의료진, 병원이 공동으로 4억 4000만원과 지연 이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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