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박선혜 기자.
편집국 박선혜 기자.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정부가 이런 정책을 발표하면 나는 지금 이 아이를 어떻게 낳고 또 둘째는 가져도 괜찮은 거야?"

사석에서 만난 출산을 앞둔 지인이 토로한 말이다. 어리지 않은 나이에 곧 첫 아이를 출산할 예정이다 보니 제왕절개도 고려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제왕절개 이후 무통주사와 함께 사용하는 페인버스터 사용에 제제를 거는 정책을 발표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제왕절개는 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 통증이 심해 통증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때 무통주사라 불리는 자가통증조절장치와 함께 빠르고 강력하게 통증을 완화할 수 있는 국소마취제인 페인버스터를 사용한다. 그동안 본인부담률 80%의 선별급여 항목으로 적용됐다.

그런데 지난 5월 보건복지부는 무통주사를 맞을 수 없는 등 경우를 제외하고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를 함께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 일부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이 같은 예고안이 나온 이유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이 지난해 페인버스터의 '병행 사용 비권고' 판정을 내렸기 때문에다. NECA는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를 같이 사용해도 무통주사만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과 통증 완화 차이가 크지 않고, 페인버스터에 무통주사보다 마취제가 6배 이상 들어가기 때문에 병용을 권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발표 직후 진료현장에서는 출산을 앞둔 산모들의 공포가 커졌고, 의료진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직선제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 등은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했고, 현장에서는 통증 조절을 위해 오랫동안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를 함께 사용했으며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했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후 정부는 "현장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겠다"며 입장을 바꾸고 진화에 나섰다. 그리고 최근 복지부는 페인버스터 본인부담률을 현행 80%에서 환자 본인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비급여로 최종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정부가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 병용 금지를 추진했다가 사실상 정책을 번복한 것이다. 

페인버스터를 무통주사와 계속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환자가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산모에게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정책임은 분명하다. 

급속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부는 고심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하지만 정작 진료현장의 의료진과 산모의 목소리는 배제하고 정책을 내놓고 있다. 게다가 반발이 있으면 '안되면 말고' 식 태도를 보이며 정책을 뒤집고 있다. 

출산율 저하가 중요한 사회적 문제라면, 산모들의 고통을 줄이고 산모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됐어야 했다. 그리고 그 정책에는 질 높은 수준의 근거들을 검토하면서 실제 진료현장의 목소리가 담겨야 했다. 하지만 지금 정부 정책은 여성이 출산을 긍정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고심의 흔적이 엿보이지 않는다. 

현장 의견을 듣지 않고 내놓는 정부 정책은 저출산 위기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출산율이 수직낙하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저출산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진정성이 의심된다. 이번 일에 대해 누군가는 말한다. "아이 안 낳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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