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진료과별 위기와 기회 상반된 상황
필수 진료과 소방서 개념 도입해 일정 수준 유지할 생태계 구축해야
[메디칼업저버 신형주 기자] 이미 10여 년 전부터 흉부외과, 산부인과, 비뇨의학과는 필수 진료과지만, 전공의의 지원 기피와 개원가의 경영 악화 등으로 존폐 위기에 처해 있다. 그동안 정부는 다양한 지원 정책을 추진했지만, 결과는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소아청소년과와 이비인후과 등도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소아청소년과는 진료과목 폐과까지 우려되면서 정부의 특단의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나마 산부인과와 비뇨의학과는 PCR 검사와 초음파 검사의 급여화로 진료비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메디칼업저버는 창간 20주년을 맞아 위기의 진료과들이 생존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지 진단해 봤다. -편집자-
비뇨의학과, 초음파·PCR 검사 급여화 경영 도움 돼
산부인과와 함께 전통적인 위기의 진료과였던 비뇨의학과는 전립선 비대증 관련 초음파 검사 및 PCR 검사 급여화에 힘입어 숨통이 조금씩 틔기 시작했다.
지난해 진료비 청구액이 정신건강의학과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소청과와 이비인후과 등 다른 진료과에 비해 코로나19 영향을 덜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인구 고령화와 비뇨기질환 인식변화에 따라 비뇨의학과를 찾는 환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대한비뇨의학과의사회 이종진 회장은 그동안 비급여였던 전립선 초음파 검사가 급여화되면서 산술적으로 진료비 청구가 증가했다며, 환자들의 초음파 검사 접근성이 높아져 경영적으로 나아진 면이 있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하지만 숨통이 조금 트였다고 해서 비뇨의학과가 타 진료과보다 잘 나간다고 할 수 없다"며 "여전히 다른 진료과에 비해 경영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비뇨의학과가 소생하고 있다고 관측되는 시그널은 전공의 수급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회장은 "이제까지 비뇨의학과 전공의 지원율은 최하위권이었지만,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며 "비뇨의학과 전공의 정원은 50명이지만, 지난해까지 30명에서 38명 수준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40명을 넘길 것으로 보이고, 낙관적으로 기대한다면 정원을 채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즉, 전공의들도 비뇨의학과를 지원할 경우 우려했던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비뇨의학과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지만, 여전히 개선돼야 할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우선 상급종합병원 100개 경증질환 분류가 개원가와 상급종합병원 간 갈등을 유발하고 있어 세밀한 분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전립선 비대증에 대한 다양한 코드를 어떻게 경증과 중증으로 나눌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
수술이 필요한 전립선 비대증 질환인지, 약물로 치료 가능한지에 대한 컨센서스가 확립되지 않아, 상급종병은 업코딩을 통해 경증질환을 중증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경증과 중증질환에 대한 학술적 재분류가 필요하다"며 "학계와 개원가가 심도있는 논의를 진행해야 하고, 정부가 의견 수렴 중재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비뇨의학과 전문병원 지정에 대해서도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비뇨의학과 활성화를 위해 전문병원 제도 카드를 제시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전문병원으로 전환하기 위한 이득보다 규제가 많다"며 "전문병원의 최소 조건인 30병상을 만드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대학병원조차 비뇨의학과의 입원환자 병상이 30병상을 넘기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30병상 이상의 전문병원을 설립해도 유지가 어렵다는 것. 이 회장은 무엇보다 수직적 의료전달체계와 함께 수평적 의료전달체계 개편도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회장은 "대부분의 개원의가 전문의인 상황에서 전문의 간 수평적 의료전달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며 "내과에서 고혈압, 당뇨병 환자를 진료하던 중 방광염 및 전립선의 문제를 확인했다면 내과에서 비뇨의학과로 전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전문의 간 수평적 의뢰와 회송을 위한 수가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의료계도 전문의 간 수평적 의뢰와 회송이 환자 뺏기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환자에게 더 좋은 진료를 제공하고, 의료가 의료다운 모습을 만들 수 있도록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부인과, 소청과 등 필수의료에 소방서 개념 도입해야
인구 감소에 따른 산부인과와 소청과 등 위기의 진료과를 위한 정부 지원 정책이 시급한 가운데, 보건의료전문가는 단순한 수가 인상만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워 필수의료 지원에 대한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시하고 있다.
필수의료에 대해서는 소방서 개념을 도입해 필수 진료과들이 생존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려대의대 예방의학과 윤석준 교수는 인구 감소에 따른 산부인과 분만 감소와 소아청소년 환자 감소 문제를 단기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두 진료과가 생존할 수 있도록 정부가 소방서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산부인과와 소청과는 지역별로 출생한 신생아에 대해 1대 1 매칭을 통한 종합적인 건강관리를 할 수 있도록 진찰료 수가 이외 건강관리료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즉, 신생아 1명과 산부인과 및 소청과 각 1곳이 서로 연결돼 신생아부터 소아청소년기까지의 건강관리를 위한 별도 수가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산부인과 및 소청과 등 필수의료분야 지원은 건강보험 재정으로 한계가 있다"며 "이제는 정부가 시장경제 원리가 아닌 건강보험 재정 이외 국고를 투자하는 등 강제적 개입으로 필수의료 분야가 일정 수준 이상 운영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수의료 유지 위한 정부 개입 필요
보건복지부도 산부인과 및 비뇨의학과, 소청과 등 필수의료 분야의 진료과 회생을 위한 정부 개입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정책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큰 틀에서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고 전공의 근무 여건을 개선하면서 전공의들이 꿈을 갖고 전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피 진료과 문제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구상하고 있는 단계다.
유정민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보건의료혁신 TF 팀장은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의료환경 변화에 따른 산부인과와 소청과 등의 위기를 정부도 인식하고 있다"며 "하지만 아직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정책은 수립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분야의 위기가 오랫동안 지속됐고 전공의 지원과도 연계돼 있어 다양한 지원 정책을 추진했지만, 여전히 회생이 어렵다"며 "위기의 진료과 및 의료취약지, 공공의료 등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전했다. 또 "큰 틀에서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면서 전공의 근무 여건을 개선하는 것으로 정책방향을 잡고 있다"며 "전공의들이 꿈을 갖고 전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위기의 진료과 문제를 해소하고, 의사들이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에 정책 방향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 팀장은 필수진료과 및 의료취약지에 대한 소방서 개념 도입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있다며, 의료취약지에 의사들이 근무해 의료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가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유 팀장은 특히 소청과의 경우 소아청소년들이 아프지 않도록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1차의료 활성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으며, 인구 집단별로 보상체계를 구현하는 방안도 모색해 보겠다고 설명했다.
유 팀장은 "산부인과, 소청과, 비뇨의학과, 흉부외과 등 필수의료분야에 대한 의료계 의견을 담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의료진들이 환자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방안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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