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백씨 사망진단서 수정해야 ... 사망진단서 작성 전공의 잠적

 

고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병사로 표기한 서울대병원의 결정이 모두가 'YES'라고 하는 상황에도 혼자 'NO'라고 하는 곤궁한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서울대병원이 백 씨의 사망 원인을 병사로 표기한 날부터 서울의대생, 서울의대 동문회, 일부 의사, 시민단체 등에서 계속 문제를 제기해 왔다. 4일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대두됐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감에서 백씨의 사망진단서에 관해 소견을 물었다. 

이에 대해 성 이사장은 "근본적인 판단은 객관적인 자료와 과학적 판단에 근거해 결정해야 할 사항으로, 여타 다른 영향이 개입되면 안 된다"면서도 "그간의 상황을 미뤄볼 때 외인사로 판단하는 게 상식적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손 원장 역시 "백 씨의 사인은 외인사로 추정되지만, 실제 주치의가 결정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바뀌는 게 쉽지 않다"며 "외인사가 맞을 것 같지만 주치의의 주장이 있다면 이에 대한 확인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6일에는 그동안 입장을 밝히는 데 조심스러웠던 대한의사협회도 서울대병원이 작성한 사망진단서는 잘못됐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혼란에 빠져 있는 이 문제에 관해 의협이 나서 '진실'을 말하는 게 필요했다는 것. 

의협 "백씨 사망진단서 수정해야"
의협 김주현 대변인은 "백씨의 직접 사인을 '심폐정지'로, 사망의 종류를 '병사'로 기재한 것은 틀렸다"며 "서울대병원 특별위원회에서 지적했음에도 '주치의의 재량권'이라는 말 하나로 특위의 결정을 뒤엎은 일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또 "사망진단서에서 가장 흔한 오류 가운데 하나는 직접사인으로 죽음의 현상을 기재하는 것"이라며 "사망하면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은 사망의 증세라 할 수 없고, 절대로 사망원인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사망의 종류를 병사로 기재한 점도 문제 삼았다. 사망의 종류는 직접적인 사인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선행 사인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의협의 진단서 등 작성·교부지침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김 대변인은 "백 씨의 경우 선행사인이 급성 경막하 출혈인데 사망의 종류는 병사로 기재돼 있다"며 "외상성요인으로 발생한 급성 경막하 출혈과 병사는 서로 충돌되는 개념"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사망원인은 왜 사망했는가에 해당하고, 의학적인 이유"라며 "사망원인에 해당하는 진단명은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를 따라야 한다. WHO에서도 사망원인은 사망을 유발했거나 사망에 영향을 미친 모든 질병, 병태, 손상, 손상을 유발한 사고 또는 폭력 상황으로 정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의협은 백 씨의 사망진단서를 수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김 대변인은 "공식 입장을 발표하기까지 주치의의 재량권이 우선이라는 의견부터 시작해 치열하게 내부 논의를 거쳤다"면서 "협회의 지침에 따라 병사라고 표기한 사망진단서는 수정돼야 한다는 게 공식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사건을 통해 의료현장의 각종 진단서가 공정하고 충실한 근거를 갖추길 바란다"며 "무엇보다도 진실을 바탕으로 작성돼야 한다는 기본 원칙이 충실히 지켜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위 발표, 프레임 전환 의도?
일각에서는 서울대병원이 지난 3일 구성한 특별조사위원회를 통해 프레임을 바꾸려는 의도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기도 한다. 이날 특위 위원장이었던 서울의대 법의학교실 이윤성 교수는 "나라면 외인사라고 썼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백선하 교수와 배치되는 주장을 했다. 

이 교수는 "백씨의 머리 손상과 사망 사이에 300일이 넘는 기간이 있었지만 인과관계 단절되지 않았다면 머리손상이 원 사망 원인이고. 사망종류는 외인사였다고 본다"라고 주장했다.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하며 한발 더 나아가 "내가 만일 뇌수술을 받으면 백선하 교수에게 수술을 받겠지만 사망진단서를 맡기지는 않을 것"이라며 '외인사'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 교수는 외인사라 주장하면서도 사망진단서를 병사로 표기한 주치의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밝혀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이 교수는 "특위에 참가한 대다수 교수가 외인사라고 생각했지만 주치의인 백 교수가 고칠 생각이 없다면 강제할 수 없다. 사망진단서는 담당의가 아니면 책임질 수 없다"라고 말했다. 또 "서울대병원 입장은 외인사, 백선하 교수 입장은 병사다"라고 말해 프레임을 이 교수 대 백 교수의 대립으로 몰고 갔다. 
이런 이 교수의 태도는 서울대병원에는 면죄부를 주고, 백 교수 개인의 문제로 한정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결국 백씨 사망진단서에 관한 논란은 전혀 해결되지 않은 채 논란만 키웠다는 것이다. 또 이 교수는 주치의인 백 교수의 의사를 존중해 사망진단서를 병사로 바꿀 수 없다고 밝혀 이럴 것이었다면 왜 특위를 구성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병사 결정은 바뀌지 않을 듯
의사 단체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의협이 사망진단서를 수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지만 서울대병원의 병사 결정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전문가 즉 의사로서의 판단을 넘어서는 정치적 문제로 번졌기 때문에 서울대병원이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란 분석이 그 이유다. 

사망진단서 작성 당시 신경외과 3년차 전공의 권씨는 의무기록지에 백선하 교수, 신찬수 부원장 등과 상의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며칠 전부터 전화번호도 바꾼 상태로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그가 영화 매트릭스의 장면을 올려 놓아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 꼬마가 주인공이 "숟가락을 휘게 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오직 진실만을 깨달으려 하세요"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주인공이 현실에서 보던 숟가락이 아니고, 실제로 존재하는 자들에 의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허상'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곤 한다. 

몇몇 의사는 고 백씨의 사망진단서 논란이 많은 의사에게 치명타를 안겼다고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낸다. 한 내과의사는 "그동안 의사들이 존중받지는 못해도 전문성에 대한 비판은 크게 받지 않았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은 믿을 수 있는 의사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병사와 외인사를 변경할 수 있는 집단이라 인식할 것이다. 엄청난 것을 잃은 것"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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