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내부 갈등 여전한데 투입 수가 적정성 논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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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의 '만성질환관리 수가 시범사업'이 본격적인 닻을 올렸다. 전국에서 2000여곳이 넘는 의료기관이 시범사업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의협과 복지부는 한껏 고무된 상황. 

의협은 참여를 희망하는 기관을 웬만하면 모두 참여시킬 계획이고, 정부는 관련 수가를 확대해서라도 이를 받아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만관제 시범사업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특히 애초 복지부가 예상했던 참여기관 수보다 약 4배가량 늘면서 이에 투입될 건강보험 재정도 같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자, 과연 해당 시범사업에 투입될 수가가 적정한가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의협-복지부 만관제 시범사업 ‘출항’
지난 2012년부터 부침을 겪어왔던 만성질환관리 사업에 의협이 참여를 공식화하면서 드디어 닻을 올렸다. 

의협에 따르면 만관제 시범사업에 참여를 희망한 곳은 총 1930곳으로 집계됐다. 당초 의협의 발표는 2063곳이었지만 중복접수한 84곳을 제외, 최종 참여 접수 기관 수가 변경됐다. 

진료과목별로는 내과가 827곳으로 42.8%를 차지했고, 이어 일반과 685곳(35.5%), 가정의학과 143곳(7.4%), 외과 91곳(4.7%), 소아청소년과 및 정형외과 각각 45곳(2.3%) 순이었다. 지역별로도 균등하게 참여를 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협에 따르면 시범사업 참여 희망 기관 중 서울에서 약 400곳이 지원했고, 뒤이어 경기도가 300곳에 달했다. 

의료계의 폭발적인 참여에 복지부와 의협은 시범사업 참여 기관 선정 기준을 대폭 완화할 방침이다. 

의협에 따르면 내부 TF서 도출된 '고혈압·당뇨환자 한 달 20명 미만, 100명 이상 진료 기관 제외'라는 골자를 토대로 의·정TF서 세부 선정기준을 마련했다. 고혈압·당뇨환자 100명에 대한 기준을 놓고 의사 1인을 기준으로 할지, 의료기관을 기준으로 할지와 예외조항 및 시범사업에 필요한 의료기기 배분 방식도 논의됐다. 

“저수가 그대로 두고 인센티브로 눈가림”
시범사업 반대 목소리 여전…진료과·지역별로도 온도차

 

의견 수렴 결과?…봉합 안 된 의료계
의협이 만관제 시범사업의 닻을 올렸지만, 의료계 내부 갈등은 여전하다. 전국의사총연합은 의협의 시범사업 공식화에 추무진 회장 탄핵으로 맞대응했고, 일부 지역의사회의 반대도 분명한 상황. 이들은 하나같이 만관제 시범사업이 원격의료의 당위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의총 정성일 대표는 의협이 시범사업 참여를 계기로 결국 정부의 입맛대로 움직이게 될 것을 우려했다.

특히 만관제 시범사업 평가는 이미 '긍정적'이라는 답이 나온 상황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에 필요한 장비를 무료로 지급하는 한편, 환자 본인부담금까지 면제해주는 상황에서 부정적인 결과는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의협에서는 시범사업에 대한 평가도 진행하는 만큼 원격의료 우려는 없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결과는 뻔한 것 아니냐"라며 "환자의 만성질환 호전 여부가 아닌 단순 만족도를 따지는 평가는 이미 긍정적인 답이 나온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전의총은 추 회장 탄핵 서명운동을 지속할 방침이다. 

대한의원협회 윤용선 회장은 "전화상담이 활성화될 경우 대면진료의 가치가 하락하게 될 것"이라며 "더 나아가 진료의 개념 자체가 왜곡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등 전화상담이 원격의료의 당위성을 제공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윤 회장은 "비대면 관리 단계에서 환자가 측정한 정보를 주기적으로 관찰·분석하고 환자의 혈압·혈당 등 정보를 확인하는 과정은 결국 원격모니터링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원격모니터링은 전화상담과 마찬가지로 향후 원격의료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만관제 시범사업 참여 반대 목소리는 지역 의사회에서도 여전하다.

충남도의사회 박상문 회장은 "수가를 준다고 해서 만관제 시범사업에 참여한다면 원격의료를 반대할 명분이 없어진다"며 "의협은 원격의료 가능성을 배제한다고 하지만 결국 눈가리고 아웅에 불과하다. 결과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관제 참여 두고 엇갈린 민심
실제로 만관제 시범사업 참여기관의 통계를 살펴보면 민심에 따라 진료과별, 지역별로 엇갈린 모습이다.

이번 시범사업이 내과와 가정의학과가 주축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가정의학과의 참여는 주춤했다. 

실제로 시범사업에 참여한 내과의 수는 827곳으로, 이는 전국 내과 4387곳의 약 20%에 달하는 수치다. 반면 가정의학과는 전국 804곳 중 143곳이 참여 접수를 신청하는 데 그쳤다. 이는 대한내과의사회가 시범사업에 대해 회원들에게 홍보하고 참여를 적극 독려한 반면,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는 그렇지 않았던 것에 대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는 지역별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의협과 행보를 같이 한 서울시의사회의 영향이었을까? 의협에 따르면 서울은 약 400곳가량이 시범사업 참여를 희망한 것으로 조사된 반면, 그동안 시범사업 참여 반대 목소리를 내왔던 충남의 시범사업 참여 신청은 19곳에 그쳤다. 지역별 의원급 의료기관 분포와 비교할 때 전국에서 다양하고 균등하게 접수됐다며 지역적 불균형은 없을 것이란 의협의 전망과는 사뭇 다른 모습인 것이다. 

또 하나의 특이점은 시범사업 참여 희망기관 중 성형외과나 산부인과 등 만성질환관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진료과도 포함됐다는 것이다. 

의협에 따르면 산부인과 4곳, 성형외과·비뇨기과 각각 1곳, 정신과와 안과도 각각 1곳씩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를 두고 고혈압·당뇨병을 직접적으로 관리해 온 진료과와 거리가 먼 타 과의 경우 만성질환관리가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부터,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 취지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는 상황.

이에 의협은 전문 진료과목을 내건 의사라면 만성질환관리는 충분히 가능하기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의협 김주현 기획이사는 "그동안 만성질환관리를 해오지 않은 진료과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의사라면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은 충분히 진료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김 기획이사는 "일부 성형외과 등 표방하는 진료과목과 달리 실제 일반과로 운영하는 의원도 있다"며 "만일 만성질환 환자 관리를 엉터리로 했다면 평가 결과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진료과목이 시범사업 참여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4배로 늘어난 참여 희망기관…수가 투입 적정성 논란도
만관제 시범사업에 투입될 수가가 적정한지에 대한 지적도 있다. 시범사업 참여기관이 예상과 달리 급증하면서 이에 투입될 수가도 그만큼 늘어나게 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복지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보고 당시 시범사업에 참여할 의료기관 수를 100~300곳으로 예상, 이에 투입될 예산으로 76억원을 추계한 바 있다. 하지만 복지부와 건보공단이 참여 희망기관 접수를 받는 과정에서 희망기관이 급증, 500곳 81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와 함께 혈당·혈압기 구매 등 장비보강에 9억 5000만원이 소요될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도 도출했다. 

그런데 의협이 접수를 받기 시작한 뒤 최종적으로 1930곳이 참여 접수를 하면서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4배가량 늘어났다. 

대략적으로 추산할 때 81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됐던 투입 수가 규모는 320억원으로 늘어나며, 이에 따른 장비 비용 역시 4배 증가해 약 40억원, 총 360억원가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그동안 수가를 신설하거나 인상하는 데 인색했던 정부가 자신들의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무리하게 건강보험 재정을 소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의총 정성일 대표는 "내시경 수가 등 의료계에서 필요로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히 인색한 모습을 보여 왔던 정부가 원격의료 추진을 위해 17조 건강보험 흑자분을 소진하고 있다"면서 "이는 청와대 보여주기식 정책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대략적으로 추계한 약 360억원이라는 수가는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내년도 복지부 예산과 비교할 때 실감할 수 있다. 실제로 복지부는 어린이 독감예방접종 국가지원 예산에 296억원을 책정한 것만 봐도 만관제 시범사업에 투입될 수가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저수가 기조는 그대로 둔 채 인센티브로 이를 보전하려는 행태는 '편법'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원협회 윤용선 회장은 "만관제 시범사업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저수가 진찰료는 그대로 둔 채 인센티브를 주는 형식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며 "이 같은 상황이 고착화되면 저수가는 그대로 둔 채 인센티브로 의료계를 재단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충남도의사회 박상문 회장은 "시범사업에 기존 추계보다 4배 많은 재정을 투입한다면 결국 수가협상에서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라며 "정부는 수가협상에서 네거티브 전략을 위한 카드로 사용하게 되고, 의료계는 정부의 돌려막기에 희생양이 될 게 자명하다"고 비판했다.

한편, 복지부는 시범사업 최종 참여기관을 선정한 후 투입될 수가 규모 추계를 진행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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