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만에 최초의 비만 지침서 발표 '2년 동안 공들인 결과는?'

BMI로만 진단하는 시대 ‘끝’…위험요인 함께 평가
지침서는 먼저 비만의 선별척도로 여겨왔던 BMI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여겨선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비만과 관련있는 위험요인도 함께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BMI 25kg/㎡ 이상인 환자 중 비만 관련 위험요인(△고혈압 △포도당 불내성 또는 제2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수면무호흡증 △비알코올성 지방간 △우울증 등)을 1개 이상 동반한 경우 비만 치료 대상군으로 선정토록 했다.
AACE는 오래 전부터 비만 진단기준 및 치료 재정립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2013년 미국내분비학회(ACE)와 공동으로 발표한 프레임워크(framework)를 통해 기존 BMI로만 비만 또는 과체중 여부를 평가한 것에 비만위험요인도 평가대상에 포함시킨 점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반면 미국심장학회(ACC)를 비롯한 기타 학회 생각은 조금 달랐다. 2013년 미국심장학회, 미국심장협회, 비만학회(ACC/AHA/TOS)가 공동으로 발표한 비만관리지침에 따르면 BMI와 허리둘레가 증가할수록 심혈관질환 위험, 제2형 당뇨병 및 전체 사망률이 상승한다는 점을 강조했기 때문.
이를 두고 AACE 진료지침 위원회 W. Timothy Garvey 대표 위원(미국 엘라배마대학 교수)은 "이제까지 비만은 BMI 수치가 절대적으로 반영돼 왔지만, 수년이 지났음에도 비만 유병률은 효과적으로 감소하지 않았다"면서 "비만관리 시스템에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이러한 진료지침 위원회 의지를 담아낸 지침서 치료부분 역시 BMI와 비만위험요인 여부를 함께 평가하는 방식으로 총 4단계로 분류해 단계별로 구성했다. 여기에는 △과체중(BMI 25~29.9kg/㎡, 비만 관련 합병증 없음) △비만 0단계(BMI 30kg/㎡ 이상, 비만 관련 합병증 없음) △비만 1단계(BMI 25kg/㎡ 이상, 경증~중증도 비만 관련 합병증 1개 이상) △비만 2단계(BMI 25kg/㎡ 이상, 중증 비만 관련 합병증 1개 이상)로 나뉜다.
날트렉손ER/부프로피온 금기 대상 많아 ‘주의’
단계별 진단 기준을 토대로 한 본격적인 치료는 영양관리, 운동, 수면활동이 포함된 생활요법(lifestyle therapy)을 주축으로, 약물치료와 필요한 경우 위밴드술, 위소매절제술, 위우회로술 등을 고려토록 했다. 약물에는 날트렉손ER/부프로피온, 올리스탯, 로카세린, 펜타민/토피라메이트 ER, GLP-1 수용체 작용제인 리라글루타이드 등이 거론됐다.
지침서에는 현재까지 시판된 약물 안전성 및 효능을 알아본 데이터를 토대로 비만위험요인 즉 만성질환(만성신부전, 고혈압, 심혈관질환)을 동반한 환자별 약물 처방 'DO & DON’T’ 리스트가 제공됐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들 질환을 동반환 환자에서 '처방 금지 및 주의 판정'을 가장 많이 받은 약물이 ‘날트렉손ER/부프로피온’과 ‘펜타민/토피라메이트ER’이라는 부분이다.
내용을 보면, 고혈압 환자는 올리스탯, 로카세린, 펜타민/토피라메이트 ER, 날트렉손ER/부프로피온 처방을 긍정적으로 내다봤지만,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판단 하에 권고등급을 격하시켰다. 날트렉손ER/부프로피온은 복용 중 혈압 수치가 떨어지거나, 혈압 조절이 안 되는 경우 필히 복용을 중단하도록 했다.
만성심부전도 고혈압과 마찬가지로, 신장장애(eGFR < 30mL/min) 중등도에서 고위험군 환자 모두 날트렉손ER/부프로피온을 비롯한 펜타민/토피라메이트ER, 로카세린 처방을 삼가토록 했다. 더불어 리라글루타이드와 올리스탯도 환자를 엄격하게 선별해 처방하도록 했다.
또한 날트렉손ER/부프로피온을 비롯한 펜타민/토피라메이트ER, 리라글루타이드는 심부정맥 발병 위험을 증가시킬수 있어 처방을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처방 전 환자에게 이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필히 알리도록 했다. 우울증 환자 역시 펜타민/토피라메이트ER, 리라글루타이드 저용량 요법을 권했는데, 특히 펜타민/토피라메이트ER은 최소 3.75㎎ 최대 23㎎, 리라글루타이드는 최소 7.5㎎ 최대 46㎎ 용량을 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권고내용을 두고 대한비만학회 박경희 소아비만분과위원(한림의대 성심병원 가정의학과)은 "날트렉손ER/부프로피온을 비롯한 펜타민/토피라메이트ER 등을 복용할 경우, 부작용 기전 가운데 혈압 상승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데이터들이 나오면서, 이번 권고안 역시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약물 처방에 주의를 권고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부연했다.
비만치료제 안전성·효능 근거 여전히 부족
이 밖에 비만치료제가 심혈관질환 위험성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시행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날트렉손ER/부프로피온, 로카세린 등 총 4가지 약물이 승인돼 비만치료제 선택 폭이 넓어졌지만, 이들 치료제의 안전성 등을 평가한 근거가 전반적으로 부족한 만큼 개별화된 치료제 선택이 여전히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실제로 날트렉손ER/부프로피온은 심혈관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한 대규모 임상시험 2건이 이뤄졌지만 모두 중단된 상태다.
AACE가 만성질환을 동반한 비만 환자를 중심으로 약물 처방 'DO & DON’T’ 구분한 점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개별화된 치료제 선택이 어렵지만, 치료 효과는 극대화시키고 부작용은 최소화하자는 취지에서다.
박 위원은 "여전히 비만치료제 관련 근거가 부족한 가운데 이번 AACE 약물치료 지침서는 약물에 대한 부작용이나 효과를 열거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반질환 여부에 따라 시판된 치료제를 처방 가능·주의·증거불충분 등의 형태로 구분지어, 실제 진료현장에서 무리없이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