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설•운영 범위 모호, 사무장병원과 동급 처분도 논란…헌재, 3월 공개변론 예정

 

 
의료인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고 명시한 의료법 제33조 제8항을 어떻게 해석할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의사가 의료기관을 여러 장소에 개설•운영할 경우 무리한 환자 유치나 과대투자가 이뤄질 개연성이 커 이를 사전에 방지한다는 취지이지만, 일각에서는 법 규정의 모호성과 과도한 적용으로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사 한 명이 하나의 의료기관만 개설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원칙은 무엇을 뜻하는가. 최신 판례를 중심으로 의료기관 이중개설 금지 규정에서 파생된 쟁점을 짚어봤다.

재활의학과 전문의 K씨와 J씨는 수련병원 선후배 사이다. J씨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봉직의로 근무했던 K씨는 본인 명의로 100억원가량을 대출 받고, J씨로부터 30억원을 투자 받아 2011년 말 경기도 의정부시에 L병원을 열었다.

5층 규모의 재활병원을 운영하는 일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입소문을 타고 차츰 환자가 늘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적자 상태에 허덕이기 일쑤였다. 급기야 원장은 2년 6개월여가 지나 J씨에게 병원 운영에 관한 모든 사항을 위임하는 확약서를 썼다. J씨가 투자금을 바로 회수할 수 없도록 나름대로 명분을 만든 것이었다.

이 문서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의료인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는데, 당시 J씨는 자신의 명의로 된 병원을 이미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확약서에 따르면 J씨는 다른 병원을 개설•운영하고 있었음에도 K씨 명의로 된 해당 병원을 운영키로 한 사람이 된다.

지역 경찰서는 2014년 10월께 K씨와 J씨가 공모해 의료기관을 이중개설•운영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수사결과는 즉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전해졌다. 공단은 해당 병원에 요양급여비용 지급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결정이 신속하게 내려진 배경에는 앞서 그해 7월 나온 네트워크병원 관련 첫 판결의 영향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서울행정법원은 안산T병원 H원장이 건보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병원에 대한 진료비 지급거부 처분이 적법하다"며 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사정은 이렇다. T병원 네트워크의 실질 개설•운영인인 P씨는 2008년부터 안산•일산•대전•안양•제주 등 전국 각지에 병원을 설립, 명의원장을 고용해 월 3000만원선의 급여를 제공하면서 운영을 전담했다. P씨는 H원장을 포함해 계열 병원 7곳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의 진료수입을 순위로 매기고, 병원별 수입 등의 통계를 작성하면서 실적을 관리했다. 병원별 90~100%의 지분도 그의 몫이었다.

지점을 늘리며 승승장구하던 P씨의 발목을 잡은 것은 2012년 8월 개정된 의료법 제33조 8항. "의료인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고 명시한 조항이다. 이 조항으로 P씨에게 유죄가 선고되자, 공단은 "해당 병원은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으로 볼 수 없다"며 진료비 지급을 거부하는 행정처분을 내렸다.

무리한 환자 유치 등 복수개설 부작용 우려

재판부는 "의료인이 복수의 의료기관을 경영하는 것을 금지행위로 규정함으로써, 자신의 면허를 바탕으로 개설된 의료기관에서 이뤄지는 의료행위에 전념하도록 장소적 한계를 설정한 것"이라며 개정 조항의 의의를 밝혔다.

그러면서 "다른 의사의 면허로 의료기관을 여러 장소에 개설•운영할 경우 환자의 무리한 유치, 의료설비와 시설에 대한 과대투자로 장기적인 의료자원 수급의 왜곡 등으로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도 있고 국민 건강에 위해가 발생할 수 있어 사전에 이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진료비 지급 중단은 이미 지급한 급여비용을 전액 환수하는 처분으로도 이어졌다. 수십억원에 달하는 환수비용 부담은 전체 네트워크를 총괄하는 실소유주 대신 명의개설 원장에게 돌아갔다.

H원장은 같은 해 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 취소소송에서도 패소했다. 환수규모는 총 74억원에 달했다. "안산T병원이 의료법에 따라 적법하게 개설된 의료기관이 아니어서 H씨가 지급받은 급여비는 부당이득 징수처분 대상이 된다"는 게 1심 법원의 판단이다.

다시 의정부 L병원 사건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K씨는 결국 공단의 급여지급 중단 이후 3개월 만에 병원 문을 닫았다. 요양급여가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병원에서 당장 자금 유통이 막힌 구조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폐업은 했지만, 100억원에 육박하는 환수처분이 꼬리표처럼 붙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말 K씨가 건보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 취소소송에서 이번에는 공단의 처분이 위법하다며 환수처분을 취소하라고 주문했다. J씨는 병원 설립 당시 자금을 투자했을 뿐, K씨가 실제 병원을 개설•운영했던 정황이 명확하다는 판단에서다.

재판부는 "원고는 이 사건 병원의 원장으로 근무하며 의료행위를 실시했고, 요양급여 비용을 자신의 명의로 개설한 계좌로 지급받으면서 직접 이를 관리했다"면서 "J씨는 이 병원에 거의 방문하지도 않았고, 인력 충원이나 관리 등에 관여한 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이후 병원 운영에 관한 사항을 모두 J씨에게 위임하는 취지의 확약서를 작성하기는 하였으나, 이는 투자금을 곧바로 회수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기 위한 취지에서 작성한 문서에 불과하고 내용이 실제 운영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92억원의 처분을 취소하라고 주문했다. 

"명확성 원칙 위배" vs "문제될 것 없다"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도록 한 의료법 제33조 제8항은 2012년 8월에 등장했다. 이전까지는 '의료인은 하나의 의료기관만 개설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었다.

'어떠한 명목으로도'라는 문구를 삽입하면서까지 1인1개소 원칙을 강화한 취지는, 의료인이 복수의 의료기관을 경영할 경우 환자 유치 등 영리 추구에 골몰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기 때문이다. 유디치과와 대한치과의사협회의 분쟁과정에서 개정안이 통과돼 일명 '반(反) 유디치과법'이라고도 부른다.

그렇다면 현행법상 의료인이 다른 의료기관에 투자하는 것은 괜찮을까? 문제없는 정도의 지분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해답은 오직 복수 의료기관의 개설•운영을 금지한 의료법 제33조 제8조항에 갇혀 있다. 개설•운영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법조계에서도 의견 대립이 첨예한 이유다.

고한경 변호사(유앤아이파트너스)는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는 규정 자체가 모호해 법률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 가령 세법이나 공정거래법을 보면 어느 정도의 경영행위를 할 때 회사를 지배하는 것으로 봐도 되는지, 과점주의 개념은 무엇인지 최소한의 기준을 예시로 들고 있는데, 이 법은 적용에 있어 혼선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의정부 L병원측 소송대리를 담당한 김주성 변호사(법무법인 세승) 또한 "의료기관의 '개설, 운영'이라는 문언은 수많은 당사자의 등장과 그 속에서 이뤄지는 각종의 사실관계의 결합을 의미한다”며 사실 인정에서 나아가 그것이 의료법상 금지된 '개설, 운영'인지 추가적인 법리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1인 1개소법 위반의 환수처분 근거로 공단이 제시하고 있는 법 조항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의료법 제33조 제2항은 사무장병원에서 형성된 법리로, 건보공단에서 이를 그대로 적용해 근거로 삼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는 반응. 비의료인인 사무장이 의료인 명의를 빌려 개설하는 사무장병원과, 의료인이 복수개설한 의료기관의 위법성을 같은 정도로 놓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 김준래 변호사는 "의료인으로서는 더욱 더 자정하고 모범을 보여야 할 입장이 아니겠느냐"고 선을 그었다.

김 변호사는 "구 의료법 때는 개설만 하면 이후부터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운영해도 상관없는 것으로 해석됐으나, 그것을 막기 위해 법이 개정됐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면서 "개설도, 운영도 안 된다는 뜻"이라고 못 박았다. 이어 "이중개설의 본질은 사무장병원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의료인 직업의 자유 침해?…헌재서 가린다

의료기관 이중개설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T병원 사건 항소심은 이달 22일 변론을 마치고 서울고등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으며, 1심에서 승소한 의정부 L병원 사건의 원장과 직원들은 공단의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추가적인 손해배상 소송을 검토 중이다.

1인1개소법과 관련해 오는 3월 10일 열리는 헌법재판소 공개변론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서울동부지법이 2015년 8월 같은 혐의로 기소된 사건을 심리하는 과정에서 직권으로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 이뤄진 것으로, 의료법 제33조 제8항이 의료인들의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등을 집중심리할 예정이다.

담당 재판부는 헌재에 낸 제청 청구서에서 "다른 의료기관에 대한 투자와 경영 참가를 포괄적으로 금지함으로써 정보공유와 공동연구 등 순기능까지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문제가 생긴다"며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어긋나 위헌"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공개변론에는 의정부 L병원 사건 K원장도 보조참가를 신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주성 변호사는 "L병원은 건보공단의 요양급여 지급거부로 3개월 만에 도산했는데, 이는 형사 확정판결이 나기도 전 유죄판결로 인한 모든 불이익을 겪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회복할 수 없는 손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