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사실상 개설·운영한 주체 따져봐야" 환수처분 취소 주문

재활의학과 전문의인 K씨는 2011년 11월 경기도 의정부시에 5층 규모의 재활병원을 열었다. 100억 원 가량을 대출 받고, 수련병원 선후배 사이인 J씨로부터 30억 원을 빌려 개원 비용을 마련했다.

전문적인 재활치료를 제공하는 콘셉트로 차츰 환자가 늘었지만, 병원 운영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좀처럼 흑자구조로 돌아서지 않는 상황으로 인해 J씨가 투자금을 회수해 갈까 불안해진 원장은 개원 2년 6개월여가 지나 "병원 운영에 관한 모든 사항을 위임한다"는 확약서를 썼다. J씨가 발을 빼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약 100억원에 달하는 환수 폭탄이 떨어진 것은 그로부터 다시 1년 6개월가량이 지난 2014년 말. 공단은 해당 병원에 대한 요양급여비 지급을 거부하고, 그간 지급받은 급여비를 환수하는 처분을 내렸다.

당시 J씨가 일산에서 다른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의료인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고 규정한 의료법 제33조 제8항이 근거조항으로 적용됐다.

병원 운영을 위임받은 문서는 있지만 실제로는 투자자에 불과했던 J씨. 이 경우 그를 이중개설자라고 볼 수 있을까?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K원장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 취소소송에서 공단의 처분이 위법하다며 원장의 손을 들어줬다. J씨는 병원 설립 당시 자금을 투자했을 뿐, K씨가 실제 병원을 개설·운영했던 정황이 명확하다는 판단에서다. 

재판부는 "원고는 이 사건 병원의 원장으로 근무하며 의료행위를 실시했고, 요양급여비용을 자신의 명의로 개설한 계좌로 지급 받으면서 직접 이를 관리했다"면서 "J씨는 이 병원에 거의 방문하지도 않았고, 인력 충원이나 관리 등에 관여한 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이후 병원 운영에 관한 사항을 모두 J씨에게 위임하는 취지의 확약서를 작성하기는 하였으나, 이는 투자금을 곧바로 회수하지는 않을 것을 약속하기 위한 취지에서 작성한 문서에 불과하고 내용이 실제 운영상황을 반영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처분을 취소하라고 주문했다.

K씨는 현재 병원 문을 닫고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 채무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처분에 불복해 송사 끝에 승소했지만 '상처뿐인 영광'이 된 셈이다.     

원고측 소송대리를 담당한 김주성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의료기관의 '개설, 운영'이라는 문언 자체가 수많은 당사자의 등장과 그 속에서 이뤄지는 각종의 사실관계의 결합을 의미하므로, 사실 인정에서 나아가 그것이 의료법상 금지된 '개설, 운영'인지 추가적인 법리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수사기관도 아닌 건보에서 형사법원의 확정판결이 있기도 전 이를 유죄로 단정해 요양급여를 지급거부하거나 환수처분할 것이 결코 아니다"며 "공단의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추가적인 손해배상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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