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정진엽 신임 복지부 장관 취임...소통강화 '기대'-원격의료 '우려'

▲정진엽 신임 보건복지부 장관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정진엽 전 분당서울대병원장이 8월 27일 보건복지부 장관에 공식 취임했다. 의사출신 복지부 장관이 나온 것은 17년 만에 처음. 하지만 적지 않은 의사가 정 장관의 등장에 '순수한 환호'를 보내지 않고 있다. 의사출신 장관에 대한 기대감 못지 않게, 각종 정책추진을 둘러싼 갈등 상황을 걱정하는 까닭이다.

정진엽 장관 취임…보건행정 수장 '트로이카' 완성 

"임명권자께서 저를 내정하신 이유는 아마도 메르스와 같은 신종감염병에 대비한 국가방역체계 개편과 감염에 취약한 의료환경 개선 등 당면 현안을 잘 해결해 나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 서면답변)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 27일 공식 취임했다. 

정진엽 장관은 1980년 서울의대를 졸업한 뒤 30여 년간 진료와 의료교육 현장에 몸담아왔다. 서울대병원을 거쳐 분당서울대병원에서 교육연구실장과 정형외과장, 원장을 지냈으며 대한병원협회 재무위원장, 기획이사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복지부 장관에 의사가 임명된 것은 주양자 전 장관 이후 17년 만의 일.

건국 이후 1960년대까지 초기 행정부에서는 대대로 의사가 보건부 장관을 맡아왔으나, 이후 정치인·관료 장관이 등장하면서 그 명맥이 끊겼다. 1988년 권이혁 전 장관의 취임으로 의사 장관이 다시 부활했지만 같은 해 문태준 전 장관, 1993년 박양실 전 장관을 거쳐 1998년 주양자 전 장관을 끝으로 또 한 번 막을 내렸다.

정진엽 장관을 발탁한 배경으로는 '메르스' 사태가 꼽힌다. 메르스 사태 이후 정부 내 보건의료 전문성 부족을 질책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것이 의사 장관 임용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실제 메르스 사태를 전후 해 의료계 안팎에서는 복지부의 전문성 부족이 메르스 초기 방역 실패를 불렀다는 지적과 함께, 보건의료 전문성 강화를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복수차관제 도입과 보건부 독립 등 복지부 조직개편 요구도 거세게 일었다.

정진엽 장관 자신도 취임 후 제1 과제로 메르스 사태 후속대책 마련을 들고 있다.

정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국민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 메르스 사태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향후 감염병 위협을 최소화하도록 국가 방역체계를 개편하며 감염에 취약한 의료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정책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정진엽 장관의 취임으로 보건행정분야 3대 기관의 수장을 모두 의사들이 맡게 됐다는 점도 관심을 끈다. 현재 건강보험공단을 이끌고 있는 성상철 이사장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수장인 손명세 원장도 모두 의사 출신이다.

 ▲의사출신 장관 누가 있었나  ©메디칼업저버 김수지

기대와 우려, 정 장관을 바라보는 두 시선

"(노인환자 외래본인부담금 정액제 상한을 1만5000원에서 2만원까지 인상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현실적으로 맞다고 본다. 추가되는 예산 상황 등을 검토해보겠다."(24일 국회 인사청문회, 노인 정액제 상한 인상을 주장한 새누리당 김제식 의원의 질의에)

17년 만에 의사장관 탄생 소식에 의료계는 일단 기대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보건의료정책의 문제점과 의료기관들의 아픔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의사가 보건의료 정책분야를 관장하는 복지부의 최고 수장에 오른 만큼, 팍팍한 의료환경이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인 출신이라서가 아니라 보건의료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장관이 임명될 경우, 의정간 소통이 원활해지고 이를 바탕으로 산적한 의료현안을 해결하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며 "환영한다"고 밝혔다.

각종 의료현안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노인환자 외래 본인부담금 정액제도 개선 등 의정협의의 이행.

의료계는 노인외래 정액제 상한선이 15년째 1만 5000원으로 동결되면서 제도 취지와 달리 상당수 노인환자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데다, 진료비 지불을 두고 의료기관과 환자 간 불필요한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며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해 온 바 있다.

정진엽 장관은 2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노인정액제 적용 상한선을 인상해야 한다는 새누리당 김제식 의원의 질의에 공식적으로 공감을 표해, 의료계의 기대감을 높였다.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 대해서도 긍적적인 신호를 줬다.

정 장관은 전공의 수련기관 관리기구 독립에 대한 견해를 묻는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의 질의에 "법안(일명 전공의 특별법)이 발의된 것으로 안다. 전공의들의 열악한 조건에서 수련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며 "의료계 단체들과 긴밀한 협조와 협의를 통해 풀어나가야 하는 문제"라고 밝혔다.

의료계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 '원격의료'

"원격의료는 공공의료 발전을 위해 매우 좋은 수단이며, 의료세계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의사의 진단과 처방은 대면진료를 우선하는 것이 원칙이나, 도서벽지 등에서는 환자의 편의를 제고할 수 있다. 원격진료의 근본목적이 의료접근성 제고에 있는 만큼, 대도시에서까지 원격의료를 할 필요는 없다. (원격의료 확대 여부는) 현재 2차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며 그 결과를 보고 더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24일 국회 인사청문회, 원격의료 허용에 대한 입장을 묻는 의원들의 질의에)

그럼에도 의료계 표정이 마냥 밝지만은 않다. 의사출신 장관 임명은 물론 반가운 일이지만, 의료계가 맞닥뜨린 시대적 상황과 정진엽 장관의 지난 '행보'를 비교해 봤을 때 이를 단순히 아군의 등장으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는 복잡한 속내다. 그 핵심에는 원격의료가 있다.

실제 정 장관 내정 이후 의료계 안팎에서는 "정부가 원격의료 도입을 둘러싼 의료계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의료인 출신이자 원격의료 전문가인 정진엽 원장을 장관으로 임명하려는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정진엽 장관이 원격진료 서비스 시스템 방법 특허를 가지고 있고, 분당서울대병원 재임 시설 국내 최초로 클라우드 기반의 모바일 진료정보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분당서울대병원의 디지털병원 운영사례가 창조경제 현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같은 우려를 더욱 부채질했다.

정 장관 또한 원격의료 확대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두고 있다. 인사청문 과정에서 대도시까지 원격진료를 실시할 필요는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원격의료 자체에 대해서는 "공공의료 발전을 위해 매우 좋은 수단이며, 의료세계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소신을 밝혔고, 정책 재검토 요구에 대해서는 "2차 시범사업 결과를 보고 더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의료계의 고민이 시작되는 것도 이 지점이다.

대한의사협회는 26일 공식논평을 통해 "의료분야 전문가의 장관 임명을 환영한다"면서도, 일각의 우려대로 원격의료 추진이 현실화된다면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의사협회 김주현 기획이사 겸 대변인은 "17년 만에 의사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되는 데 대해 환영한다. 의료현실을 잘 알고 있는 의료계의 주장을 잘 전달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의사협회가 원격의료 추진에 반대한다는 입장은 변하지 않는다. 제도가 추진된다면 원칙대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사에서 장관으로'…풀어야 할 숙제는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장관이 된다면 의사라는 신분을 떠나 의료분야 전문가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모든 직역과 대화하고 의견을 수용해가며 합리적인 방향으로 일을 해결하겠다." (24일 국회 인사청문회, 의료계 입장만 대변하는 로비통로가 되는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는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의 지적에)

의료계와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가느냐는 정진엽 장관에게도 가장 큰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메르스 사태 후속대책을 논의함에 있어 의료계의 협조가 필수적인 상황이고, 박근혜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국제의료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의료계가 해 줄 몫이 크다. 자칫 관계 설정이 질못 이뤄질 경우 박근혜 정부의 후반기 국정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의사가 아닌 장관의 자리에서 보건의료 정책방향의 우선순위가 국민에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늘 상대가 있는 보건의료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국민과 의료계, 의사와 타직역 간의 갈등상황을 해소하는 합리적 방안을 찾는 일도 이제 정 장관의 몫이 됐다.

여당 복지위원회 관계자는 "의료인 출신이라는 것이 정 장관의 가장 큰 이점이 될 수도, 가장 큰 단점이 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논란 등에서 보듯 의료계 현안들은 대부분 위험한 외줄타기와 같다"며 "치우침 없이 이해 당사자들과의 협의를 통해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인 답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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