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응책은커녕 인식수준 낮아…정부 종합지원체계 마련돼야

생물자원 전쟁의 시작이라고 불리는 '나고야의정서(ABS, 유전 자원의 접근 및 이익 공유)'의 발효 시기가 10월 12일로 확정됐지만 제약업계는 아직 피부에 와닿지 않는 모양새다.

 

제약사가 생물자원에 대한 로열티를 각자 얼마나 지불해야 하는지 품목별, 자원별로 다르고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변수가 많아 업계로서는 피해 추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인지는 하지만 대책은 막연한 경우가 많고 천연물신약 제조업체와 일부 제약사만 대응 팀을 꾸리거나 법률적 자문을 구하는 상황이다.

이에 전체적인 업계의 상황과 발빠르게 움직이는 제약사의 행보는 어떤지, 산업을 돕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지 짚어봤다.

"아직 내용 파악하는 단계"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최근 리베이트 투아웃제와 사용량 약가연동제 등 산적한 현안들이 많아 나고야의정서에는 크게 신경쓰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아직 회사 차원의 특별한 움직임은 없다"고 밝혔다.

다른 제약사들도 아직까지 적극적으로 대응을 준비하는 곳은 드물었다. 한국바이오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나고야의정서에 대해 일부 인지는 하고 있지만 알고 있는 부분은 20% 미만이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제약협회도 본격적으로 나서지는 않은 상황이다. 제약협회 엄승인 의약품정책실장은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회원사들과 본격적으로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며 빠른 시일 내에 회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나고야의정서가 발효되면 국내 기업들이 해외 생물유전자원의 이용에 따라 행정적, 금전적 부담이 최소화 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며 대책 마련의 필요성은 공감했다.

동아쏘시오 등 일부 업체만 잰걸음

대응 준비에 적극적인 제약사도 있다. 동아쏘시오홀딩스는 표준운영절차(Standard Operating Procedure, SOP) 마련과 정부에 대한 의견 개진도 피력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동아쏘시오홀딩스 관계자는 "나고야의정서는 개별 계약으로서 각 경우마다 이익공유 방식과 규모가 천차만별일 수 있어 품목별로 차별화 된 대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동아ST의 천연물의약품인 스티렌과 모티리톤 등을 포커스로 한 나고야의정서 SOP 확립을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CBD(the 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 생물다양성협약) 관련 업무 주무부처인 환경부와 국립생물자원관을 중심으로 표준계약서 확립 등 대응전략 수립을 활발히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정부기관이 주최하는 회의 및 공청회는 물론 나고야의정서 포럼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해 진행 경과를 주시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다른 상위제약사 관계자는 "회사에서 팀을 꾸려 나고야의정서와 관련된 내용을 파악 중"이라며 "중국 등 자원 부국의 법령 진행 현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한편 환경부 등 국내 기관들을 통해 관련 전문가가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팀을 꾸리지는 않았더라도 천연물신약이 있거나 관련 있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비슷하게 대응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 그러나 아직 비준국 간에 본격적인 회의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전 정보는 부족한 편"이라고 밝혔다.

한편 몇몇 전문가는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우리나라는 대부분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입장이고, 제약산업은 많은 부분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기에 정보를 확보하고 미리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나고야의정서' 준비 어떻게?

이화여대 최원목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기업은 나고야의정서를 하나의 분명한 추가적인 비용으로 인정하고, 체계적으로 대비하는 등 전체적인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 전반에 걸쳐 이익을 공유해야 하는 만큼 생산·연구개발·마케팅 비용의 조절이 필요하며, 기업을 이끄는 입장에서도 새로운 세계적 흐름을 인지하고 적응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자원을 다수 보유한 개발도상국들이 일종의 기업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하는 등 판로에 집단적인 제재가 있을 수 있고 국가와 기업에 대해 유전자원을 '도적질'하는 곳이라는 부정적인 인식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제약·바이오산업이 다국적화되는 상황이며 앞으로 여러 나라에 수출을 확대해야 하는데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장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면 장기적으로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전체를 보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제 완전히 변했구나'라는 인식을 갖고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당부했다.

경희대학교 이태후 교수(천연물 의약소재 개발 및 표준화 지원 사업단장)는 "원료를 구매하는 것이 원가에 반영되기에 부담은 있을 것"이라며 "협상을 잘해 최대한 원가부담을 줄이며 끌고 가거나 총 약가를 올리거나, 원료가 아니라 판매관리비나 다른 부분에서 조절을 하는 등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바람직한 것은 국내산 신품종을 갖고 개발해 외국으로 가는 것"이라며 "영진약품이 국내원료로 FDA 1상에 진입한 것이 있는데, 이처럼 연구개발 초기단계부터 국내산의 야생식물과 자원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시스템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또 약을 만드는 데 필요한 A물질이 특정 국가에서만 생산되는 경우 다른 회피전략을 모색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부연했다.

환경부 지구환경담당관실 박성돈 사무관은 "나고야의정서 발효 이후로 외국의 유전자원을 가져오려면 일정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며 "일단 사전승인을 받고 제공국과 이용국 간 MAT(상호합의조건)를 체결하는 등 절차가 있기에 법에 대한 숙지는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또 "아직까지 피부에 와닿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환경부도 홍보를 하고, 지속적으로 산업계의 역량 강화를 위해 지원하는 부분이 있다. 나고야의정서에 대한 의문이 있으면 환경부 산하 국립생물자원관 생물다양성센터 등으로 문의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정부 종합지원체계 필요

그렇다면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이태후 교수는 "나고야의정서 관련 부처는 환경부지만 돈도, 힘도 없어 겉도는 게 있다"고 주장했다.

개발과 관련된 것은 산업부, 의약품은 복지부와 식약처가 하고, 원료 생산과 관련된 것은 농림부 등 역할분담이 있는데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환경부가 감당할 수는 없다는 것.

이에 환경부는 국내·해외 품종 등에서 제도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부분에 주력하는 등 고유업무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국바이오협회 이승규 본부장은 "가장 큰 문제는 종합지원체계가 없는 것"이라며 "환경부, 미래부, 산업부, 농림부 모두 따로 접근하고 있으니 범부처 정책협의체 등이 구성돼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각국의 내부 법령이나 정책을 파악해야 하는데 이를 업체가 알기는 불가능하고, 이런 정보를 한 곳에 모아 산업계에 전파하며 시나리오를 짜고 컨설팅하는 범부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

이에 "지금이라도 유관 정부기관이 하나의 팀을 꾸려 정보를 업체에 제시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원목 교수도 "우리나라 자원이 외국계 기업에 수탈당하지 않도록 어떤 자원이 어느 기업에서 쓰이는지 파악해야 하며, 외국에서 업자나 자원보유국이 부당한 이익 공유를 요구할 수 있는데 국가차원에서 표준 이익공유 모델이라든지 국제 사례 등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환경부 관계자는 "나고야의정서 발효가 결정됨에 따라 우리나라의 비준 여부와 상관없이 산업계에 바로 영향을 미치게 됐다"며 "현재 이행법률을 제정 중이며, 관련 부처와 산업계 간 지속적인 협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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