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 혈액종양내과 허대석 교수, "연명의료결정법 병원 현장 몰라"

▲ 서울의대 허대석 교수

오는 2월 4일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이 현장에서 시행된다.

그런데 국내에 이 법을 도입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노력해 온 전문가로 꼽히는 서울의대 허대석 교수(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는 정작 요즘 걱정이 많다고 했다.

연명의료결정법이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우려였다. 

허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의 여러 맹점 중 하나로 환자의 말기와 임종기를 분리했다는 점을 꼽았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이 말기와 임종기를 구분하지 않고 있음에도 우리나라는 말기와 임종기를 구분했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캐나다, 미국, 독일, 호주, 영국 등이 'Terminal'이란 하나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고, 대만은 말기, 일본은 임종기를 사용하고 있다. 

허 교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임종기와 말기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어 현장에서는 무척 혼란스럽다"며 "대장암 등 암환자는 말기 진단이 비교적 쉽지만, 심부전 등의 만성질환 환자는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면서 사망하기 때문에 말기와 임종기를 구분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현장 모르는 탁상행정"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기 위한 법 규정 또한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했다.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위해 반드시 의사 2명이 상주해야 한다는 것과 가족관계증명서 규정이 그것이다.  

허 교수는 "만일 전문의가 퇴근했거나, 늦은 밤에 환자가 갑자기 심장이 멎었을 때 레지던트가 전문의에게 전화로 연락해 연명의료계획서를 받아야 하니 다시 출근하라고 해야 한다. 그 사이 환자 상태가 나빠질 수 있다"며 "앞으로 의사 1명이 연명의료계획서를 받고, 다른 의사 1명은 후향적으로 하는 방법으로 가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 "2인 이상의 가족 진술과 가족관계증명서도 필요하다. 증명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망하는 사례도 있다. 요즘처럼 급격하게 가족이 해체되는 상황에서 가족관계증명서를 고집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본인만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한 점도 현장을 모르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1996년 미국도 우리와 같이 본인만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게 했는데,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이후 보호자 등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POLST제도를 도입한 후 제도가 안착하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허 교수는 "미국은 모든 주에서 가족뿐 아니라 보호자 등 광범위하게 대리결정을 허용하고 있다"며 "본인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없는 상황이 많고,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이 깨진 우리나라에서 본인만 연명의료결정서를 작성하게 하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고 지적했다.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해도 DNR 작성 필요" 

연명의료결정법이 놓치고 있는 또 다른 부분은 생명의 '중단'에 법이 집중돼 '유보'를 허술하게 대응했다는 점이라고 했다.

보라매병원 김 할머니 사건과 같은 상황은 중단에 해당한다고. 그런데 김수환 추기경과  같이 연명의료를 중단하지 않고, 호스피스 등에 갈 때와 같은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점을 꼬집었다. 

허 교수는 "현재 환자의 의사 확인이 불가능한데, 연명의료를 유보해야 하는 사람이 약 15~17만 명이나 된다. 이 사람들은 현행법 어디에서 해당되지 않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며 "결국 의사는 인공호흡을 하지 않으면 처발받는다. 결국 방어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 서울대병원은 법으로 보호받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심폐소생술금지동의서(DNR) 서식을 만들고 이를 받도록 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정부가 앞으로 유보 부분에 대한 시행령 시행규칙을 고쳐야 한다는 게 허 교수의 주장이다. 연명의료에 대한 중단 부분은 엄격하게 해야 하지만, 유보 부분을 복잡하게 하면 연명의료결정법을 제대로 시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연명의료결정법에 있어 원칙만 선언하고 디테일은 현장에 맡겼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법률 2페이지, 의사협회 윤리지침이 45페이지인데, 우리나라는 법률 43페이지, 의사협회 윤리지침이 1페이지라고. 법으로 모든 걸 규정할 수 없는만큼 현장에 있는 의사들을 믿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허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 입장에서 무엇이 최선인지에 얘기해야 한다"며 "임종기에는 보편적 가치를 위해 의료진과 가족이 모여 환자입장에서 어떤 것이 최선일까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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