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병원 김진철 교수팀, 네트워크 메타분석 결과 발표
17p/TP53가 갈라놓은 맞춤 치료 전략···자누브루티닙·베네토클락스+리툭시맙 우위 확인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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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업저버 양영구 기자] 재발성/불응성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R/R CLL) 치료 전략이 환자의 유전자 위험도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전적 이상에 따라 최적의 약물 선택 전략이 개인 맞춤형으로 바뀌면서 국내 진료와 급여, 분자진단 체계 전반의 재점검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인하대병원 김진철 교수(혈액종양내과) 연구팀은 대한혈액학회가 발간하는 국제학술지 'Blood Research'에 이 같은 네트워크 메타분석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팀은 2023년 12월까지 보고된 R/R CLL 무작위배정연구(RCT) 12건에서 총 4437명의 환자 데이터를 통합 분석했다.

특히 1세대 BTK 억제제 얀센 임브루비카(성분명 이브루티닙)을 기준으로 삼아 BTK 억제제 아스트라제네카 칼퀸스(아칼라브루티닙), 베이진 브루킨사(자누브루티닙)와 BCL-2 억제제 기반 애브비 벤클렉스타(베네토클락스)+로슈 맙테라(리툭시맙), PI3K 억제제, 항 CD-20 항체 등 총 13개 치료 전략의 상대적 효능을 비교했다.

연구팀은 베이지안 네트워크 메타분석과 SUCRA(Surface Under the Cumulative Ranging curve) 지표를 활용해 각 요법의 우선순위를 도축했다. 핵심 평가변수는 무진행생존(PFS)으로 설정했다.
 

고위험군은 '브루킨사', 비고위험군 '벤클렉스타+맙테라'

인하대병원 김진철 교수(혈액종양내과)
인하대병원 김진철 교수(혈액종양내과)

치료 전략은 환자의 유전자 위험도에 따라 달라졌다.

우선 17p 결실 또는 TP53 변이를 보유한 고위험 하위군의 경우 브루킨사가 임브루비카 대비 유의미한 PFS 개선을 보이며 최상위 치료옵션으로 제시됐다. 그동안 17p 결실 또는 TP53 변이를 보유한 환자들은 기존 치료에 반응률이 극히 낮아 난치성으로 분류돼왔는데, 브루킨사가 이를 극복한 것이다.

이는 고위험 분자 이상 환자에게 BTK 억제제를 선호하는 기존 가이드라인의 방향성을 뒷받침하면서도 개별 BTK 억제제 중에서는 브루킨사의 우위를 통합적 근거로 확립했다는 점에서 의료진의 약물 선택에 직접적인 잣대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고위험군, 즉 17p 결실 또는 TP53 변이가 없는 환자에서는 벤클렉스타+맙테라 병용요법이 임브루비카 대비 더 나은 PFS를 보이며 최상위 치료옵션으로 부상했다.

브루킨사 역시 경쟁력 있는 결과를 보였지만, 벤클렉스타+맙테라 병용요법보다는 한 단계 아래에 위치했다.

벤클렉스타+맙테라 병용요법은 고정기간 치료요법임에도 PFS에서 이점을 보였고, 전체생존(OS)에서도 우호적인 신호가 관찰됐다.

이는 BTK 억제제를 무기한 사용하는 단독요법 중심의 기존 치료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사례로, 비고위험군에서는 벤클렉스타+맙테라 병용요법을 통해 장기적인 독성 관리와 비용 효율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는 R/R CLL 치료전략이 모든 환자에게 동일한 BTK 억제제가 아니라 유전자 위험도에 기반한 이원화 구조로 재정렬해야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급여와 약가, 분자진단체계 재설계 필요성↑

이번 메타분석 결과에 따라 국내에서의 건강보험 급여와 약가 구조, 분자진단 체계의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건강보험 급여와 약가구조의 재편이 필요하다. 이번 메타분석 결과가 제시하는 방향성은 브루킨사와 벤클렉스타+맙테라 병용요법이 치료 실패 후 구제요법으로 사용하는 비싼 신약이 아니라 처음부터 분자 위험도에 맞춰 선제적으로 배치해야 최대 효용을 낼 수 있는 치료옵션이라는 데 가깝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고위험군에서 브루킨사 사용을 앞당기고 비고위험군에서 고정기간 벤클렉스타+맙테라 병용요법 전략을 통해 장기 비용과 독성을 관리하는 시나리오를 고려할 경우 R/R CLL 전체 치료 경로에서 비용효과성 재평가를 요구하는 논점으로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분자진단 체계의 정합성도 필요하다. 17p 결실 또는 TP53 변이, IGHV 변이 등 핵심 예후인자가 치료 전략을 가르는 기준으로 작동하는 만큼, R/R CLL 환자의 유전자 검사가 의무적으로 시행되지 않는다면 최적의 약물 선택이라는 논의 자체가 공허해진다는 지적이다.

연구팀은 "유전자 위험도 평가 없이 처방이 이뤄지는 관행이 여전히 존재한다면 이는 최신 근거와의 괴리를 키울 수밖에 없다"며 "실제 국내 검사 시행률, 재발 시 재검사 비율, 건강보험 적용 범위 등을 시급하게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네트워크 메타분석은 R/R CLL 치료가 유전적 이상 중심의 맞춤형 전략으로 나아가야 할 과학적 근거를 제공했다"며 "남은 과제는 한국의 진료 인프라와 건강보험 급여 기준이 얼마나 빠르고 정교하게 수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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