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편성 지침 위반 확인···8년간 6000억 과다 지급
의협 "도둑에게 칼 쥐여준 격"···특사경보다 자정 먼저

국민건강보험공단 인건비 산정 방법 예시.(권익위 제공) (국민권익위원회 제공)
국민건강보험공단 인건비 산정 방법 예시.(권익위 제공) (국민권익위원회 제공)

[메디칼업저버 김지예 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8년간 정부의 인건비 편성 지침을 어기고 6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직원들에게 분배한 사실이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서 밝혀지면서, 그간 누적돼 온 '방만 경영' 비판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 문제가 건보공단의 특별사법경찰(특사경) 도입에 암초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권익위와 복수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건보공단은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약 5995억원에 달하는 인건비를 실제보다 과도하게 편성해 연말에 정규직 임금 인상 명목으로 직원들에게 나눠준 것으로 확인됐다.

핵심은 직급 구조 조작이다. 정원이 비어 있는 4급(고위직) 자리를 마치 모두 채운 것처럼 꾸미고, 그 기준에 따라 인건비를 편성한 뒤 실제 5·6급 직원들에게 4급 기준의 보수를 지급해 예산 차액을 발생시킨 구조였다.  

권익위는 이를 "정원 허수 조작을 통한 예산 부풀리기"로 보고 있다.

건보공단은 "직급 인정 해석에 따른 편성 방식으로, 고의적 편취는 아니며 정부 지침 해석의 오류"라고 해명했지만, 권익위는 이를 명백한 예산운용지침 위반으로 판단했다.

이보다 앞서 2024년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건보공단의 인건비 과다 편성을 적발해 경영평가 등급을 C에서 D로 낮추고, 향후 12년간 인건비를 매년 120억원씩 삭감하기로 한 바 있다.

권익위는 2016~2022년 인건비 4552억원 과다 편성과 관련해서도 제재와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사건을 감독기관에 이첩했다고 밝혔다.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은 "이번 사건은 공공기관이 수년간 법령과 정부 지침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인건비를 집행한 사례"라며 "공공기관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기 위해서는 이번 사건과 같은 유사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번 논란은 정부가 추진하는 건보공단 특사경 도입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사무장병원'과 같은 불법 의료기관으로 인한 수천억원의 재정 누수를 막기 위해 특사경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정부 역시 도입 필요성에 공감을 표하며, 본격적인 제도화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이번 논란으로 의료계는 특사경 반대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7일 성명을 통해 "건보공단의 고질화된 방만 경영이 건보재정의 누수 주범으로 밝혀졌다"며 "수년간 방만 경영과 비윤리 행태로 국민 신뢰를 저버린 기관에 강제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은 도둑에게 칼을 쥐어주는 격"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건보공단은 "이번 권익위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고, 향후 인건비 편성 시 정부 지침을 철저히 준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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