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의료원 연동건·상현지 교수팀, GLP-1 제제 자살충동 연관성 관찰되지 않아
美연구팀, 세마글루타이드 자살충동 위험 높아…리라글루타이드는 연관성 없어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2형 당뇨병(이하 당뇨병)과 비만 치료에 활용되는 GLP-1 수용체 작용제(GLP-1 제제) 계열 약제의 자살충동 위험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경희의료원 연동건 교수(디지털헬스센터)·상현지 교수(내분비대사내과) 연구팀이 세계보건기구(WHO)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한 결과, GLP-1 제제와 자살충동 간 연관성은 관찰되지 않았다. 이 연구 결과는 Diabetes, Obesity and Metabolism 8월 19일자 온라인판에 실렸다.
문제는 GLP-1 제제 계열 약제별 분석에서 나타났다.
미국 연구팀이 JAMA Network Open 8월 20일자 온라인판을 통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GLP-1 제제 계열 약제인 세마글루타이드에서 자살충동 위험 신호가 감지됐다. 세마글루타이드 성분 약제는 항당뇨병제인 오젬픽, 리벨서스와 비만치료제인 위고비 등이 있다.
반면 리라글루타이드는 자살충동과 연관성이 관찰되지 않았다. 리라글루타이드 성분 약제는 항당뇨병제인 빅토자, 비만치료제인 삭센다가 시장에 도입됐다.
이에 미국 연구팀은 세마글루타이드의 자살충동 징후에 관한 긴급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국내 연구팀, GLP-1 제제-자살충동 간 인과관계 불분명
"자살충동 위험은 중요한 안전성 문제가 아닐 것"
경희의료원 연동건·상현지 교수 연구팀은 1967~2023년 170개국 1억 3125만여명의 약물 이상반응 보고를 포함한 세계보건기구(WHO) 약물감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GLP-1 제제와 자살충동 간 연관성을 조사했다.
이번 연구는 그동안 발표된 GLP-1 제제의 자살충동 위험을 분석한 연구 결과들이 상충됐다는 점에서 이뤄졌다. 대규모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조사 결과, GLP-1 제제 관련 자살충동 보고는 2005~2023년 점진적으로 증가했고 332명에게서 확인됐다.
그러나 GLP-1 제제와 자살충동 간 유의한 연관성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같은 결과는 당뇨병 또는 비만 치료에 GLP-1 제제를 사용했는지와 관계없이 일관되게 관찰됐다.
상현지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당뇨병 또는 비만 정도가 심한 환자는 우울증과 심혈관질환을 포함한 합병증 위험이 높고, 치료제로 주로 GLP-1 제제를 선호한다"며 "임상 경험에 비춰봤을 때 논란이 됐던 GLP-1 제제의 자살충동 위험은 약제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연구가 이 같은 추정을 뒷받침하는 근거"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연구를 포함해 현재까지 보고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GLP-1 제제와 자살충동 위험 간 인과관계는 불분명하다"면서 "GLP-1 제제 투약 시 자살충동 위험을 고려하는 것은 중요한 안전성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세마글루타이드, 자살충동 위험 1.45배↑
이런 가운데 미국 저커힐사이드병원 Georgios Schoretsanitis 박사 연구팀은 GLP-1 제제 계열 약제인 세마글루타이드의 자살충동 위험을 경고했다.
연구팀은 2023년 8월 30일까지 추정되는 약물이상반응(ADR)을 보고하는 데이터베이스인 WHO의 VigiBase를 이용해 세마글루타이드와 리라글루타이드의 자살충동 및 자해 보고를 확인했다.
2000년 11월~2023년 8월 자살충동 또는 자해 ADR 사례는 세마글루타이드 107건, 리라글루타이드 162건 보고됐다.
이를 토대로 분석한 자살충동 위험은 세마글루타이드에서만 1.45배 유의하게 높았다(ROR 1.45; 95% CI 1.17~1.77).
반면, 리라글루타이드는 자살충동 위험과 의미 있게 연관되지 않았다(ROR 1.04; 95% CI 0.87~1.25). 특히 세마글루타이드의 자살충동 위험은 항우울제(ROR 4.45; 95% CI 2.52~7.86) 또는 벤조디아제핀(ROR 4.07; 95% CI 1.69~9.82)을 함께 투약한 경우 4배 이상 상승했다.
아울러 다른 약제와 비교해 세마글루타이드의 자살충동 위험은 다파글리플로진 대비 5.56배(ROR 5.56; 95% CI 3.23~9.60), 메트포르민 대비 3.86배(ROR 3.86; 95% CI 2.91~5.12), 오르리스타트 대비 4.24배(ROR 4.24; 95% CI 2.69~6.69) 의미 있게 높았다.
Schoretsanitis 박사는 "이번 연구에서 세마글루타이드와 자살충동 간 연관성과 함께 위험을 보고할 가능성이 높은 하위군을 확인했다"며 "연구에서 세마글루타이드의 자살충동 신호가 확인된 만큼 이에 대한 긴급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이번 결과를 바탕으로 세마글루타이드를 처방하는 의료진은 환자에게 약물의 자살충동 위험성을 알려야 한다"면서 "또 세마글루타이드 치료를 시작하기 전 환자의 정신건강 상태와 정신과적 병력을 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만 세마글루타이드가 중증도가 심한 환자에게 주로 처방되므로, 계열이 아닌 특정 약제 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 교수는 "세마글루타이드는 다른 GLP-1 제제 계열 약제보다 우울증이나 합병증 위험이 높은 중증 당뇨병 또는 비만 환자에게 많이 처방되고 있다. 게다가 미국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아 임상에 도입된 기간도 길지 않아 데이터가 많지 않다"며 "세마글루타이드만 문제일지는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데이터가 더 쌓이고 분석이 이뤄져야 명확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