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항당뇨병제 시장 1위였으나 '아반디아 사건'으로 추락
"다양한 항당뇨병제 등장했어도 TZD 장점 따라올 수 없어"
[메디칼업저버 박선혜 기자] 평탄한 삶의 이야기보단 고난을 딛고 다시 일어난 이야기가 큰 울림을 준다. 사람들은 역경을 극복하며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주인공을 기억한다. 티아졸리딘디온(TZD) 계열 약제는 2형 당뇨병(이하 당뇨병) 치료 분야에서 시련을 겪은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TZD는 핵전사인자인 PPAR-γ의 선택적 리간드로 간의 인슐린 민감성을 높이고 간 내 지방량을 줄여 혈당 생성을 억제하며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TZD는 2000년대 항당뇨병제 시장의 1위를 고수하며 뜨거운 전성기를 보냈다.
하지만 이른바 '아반디아 사건'이라 불리는 로시글리타존(제품명 아반디아)의 심혈관 안전성 이슈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는 모든 항당뇨병제를 심혈관 안전성 도마 위에 올리는 등 파급력이 컸다. 이후 TZD는 대규모 연구로 심혈관에 위험하다는 오명을 벗었다. 그러나 TZD가 안전성 논란에 휩싸이는 동안 DPP-4 억제제와 GLP-1 수용체 작용제(GLP-1 제제), SGLT-2 억제제 등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이는 진료현장에서 TZD 처방을 주저하는 요인이 됐다.
TZD를 오랫동안 사용한 의료진들은 혈당을 관리하면서 합병증도 막을 수 있는 항당뇨병제가 등장했지만, TZD만의 장점을 따라올 수 없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TZD만의 치료 혜택을 기반으로 제2의 전성기가 올 것으로 기대한다.
본지는 창간 23주년을 맞아 TZD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TZD가 다시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 취재했다.
올드드럭 TZD, 유일한 인슐린 저항성 개선 약제
'글리타존'이라고도 불리는 TZD는 허가받은 지 약 25년 된 올드드럭이다. 혈당을 조절하면서 항당뇨병제 중 유일하게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한다.
TZD는 지방조직에서 지방합성을 증가시켜 혈중 유리지방산 농도를 낮추고 피하지방조직과 체중을 증가시키며 작용한다. 또 지방조직 내 아디포넥틴 발현을 증가시켜 간의 인슐린 민감성을 높이고 간 내 지방량을 줄여 혈당 생성을 억제한다. 이와 함께 다양한 염증매개 인자들과 혈전 관련 인자들의 감소 및 혈중 지질에 영향을 미쳐 죽상동맥경화증과 심혈관질환 위험인자에 다면발현효과를 보인다.
1999년 미국식품의약국(FDA)은 TZD 계열 약제인 로시글리타존을 당뇨병 환자의 혈당 조절을 위한 약제로 허가했다. 같은 해 FDA는 또 다른 TZD 계열 약제인 피오글리타존(액토스)을 승인했다. 피오글리타존은 PPAR-γ뿐 아니라 부분적으로 PPAR-α를 활성화시킨다. 현재 국내에서는 피오글리타존과 종근당이 개발한 로베글리타존(듀비에)이 허가받아 사용되고 있다.
전체 항당뇨병제를 심혈관 안전성 심판대 위에 올린 '로시글리타존'
TZD는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하고 췌장 베타세포 기능을 유지한다는 특징을 기반으로 당뇨병 치료의 새바람을 일으켰다.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해 심혈관 합병증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2000년대에는 항당뇨병제 시장에서 1위를 고수하며 시대를 풍미했다.
그러나 2007년 발표된 로시글리타존의 42개 논문을 후향적으로 메타분석한 연구에서 로시글리타존이 심근경색 위험을 1.43배, 심혈관질환에 의한 사망 위험을 1.64배 높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반디아 사건'의 파장은 미국 정부에도 영향을 미쳐 로시글리타존의 안전성 문제를 두고 청문회가 열리기도 했다.
FDA는 면밀한 분석을 통해 공식 입장을 밝히겠다는 이례적 행보를 보였다. 6개월 동안 FDA 자문위원회 논의를 거쳐 같은 해 로시글리타존 약제 정보에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등 허혈성 심질환 위험을 알리는 박스경고문을 삽입하도록 결정했다. 초대형 품목으로 성장했던 로시글리타존은 심혈관 안전성 우려로 매출이 급감했다.
로시글리타존의 심혈관 위험 논란은 다른 항당뇨병제에까지 불똥이 튀었다. 2008년 FDA는 모든 항당뇨병제를 대상으로 심혈관계 영향 연구(CVOT)를 진행해 심혈관 안전성을 확인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로시글리타존의 심혈관 안전성에 대한 답을 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RECORD 연구 결과가 2009년 발표됐다. 결과에 따르면, 로시글리타존은 다른 항당뇨병제 대비 전반적인 심혈관계 사건 위험을 높이지 않았다. 다만 심부전 발생 위험은 로시글리타존이 높았고, 로시글리타존의 심근경색 위험 증가 가능성을 배제하기엔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2010년은 로시글리타존에게 쓰디쓴 해로 기억된다. FDA 자문위 패널 총 33명이 로시글리타존 생사를 두고 논의를 진행한 결과 20명이 시장 잔류를, 12명이 퇴출을 권고했다. FDA는 다른 항당뇨병제로 치료되지 않는 환자에게만 로시글리타존을 사용하도록 사용 범위를 제한한다는 위험평가 및 완화전략(REMS) 방침을 발표하며 사실상 로시글리타존을 미국 시장에서 퇴출시켰다. 같은 해 유럽의약품청(EMA)은 로시글리타존의 안전성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심혈관질환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결론 내리고 퇴출을 결정했다.
이후 2013년 6월 FDA 자문위는 로시글리타존의 심혈관 안전성에 관한 재논의에 돌입했고, 11월 '로시글리타존의 처방과 사용에 대한 특정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발표하며 시장에서 다시 처방될 수 있도록 했다. RECORD 연구를 재보정해 분석한 결과를 기반으로 로시글리타존은 심근경색 위험을 높이지 않는다는 방향으로 최종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어 2015년 FDA는 로시글리타존에 대한 REMS를 최종 해제했다. 심혈관 안전성 논란 약 8년 만에 로시글리타존은 심혈관에 위험하다는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누명은 벗었지만 개발사인 GSK는 2015년 로시글리타존의 허가를 자진취하하며 시장에서 철수했다.
로시글리타존의 심혈관 안전성 문제로 TZD 계열 약제들이 어려움을 겪던 가운데, 피오글리타존은 긍정적인 결과를 기반으로 같은 계열일지라도 로시글리타존과 다른 약제임을 입증하기 위해 힘써왔다.
2005년 발표된 PROactive 연구에서 피오글리타존은 대혈관질환이 있는 당뇨병 환자의 대혈관 합병증 2차 예방 효과를 입증했다. 또 로시글리타존의 심혈관 안전성 논란 이후 2016년 발표된 IRIS 연구에서 피오글리타존은 심혈관 예후 개선 효과를 확인했다. 이 연구를 통해 피오글리타존은 SGLT-2 억제제인 엠파글리플로진(자디앙) 이후 심혈관질환 예방 효과를 입증한 항당뇨병제로 자리매김했다.
처방 경험 적어 TZD 선택 주저하는 의료진
로시글리타존의 심혈관 안전성 논란은 의료진의 TZD 선택을 주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누명은 벗었지만 재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다.
2022년 대한당뇨병학회 팩트시트의 국내 항당뇨병제 성분별 처방 패턴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02~2019년 TZD 처방량은 큰 증가 없이 10% 내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2002년 7.1%, 2019년 11.6%로 조사됐고, 처방량이 가장 낮았던 시기는 2013년 6.6%, 가장 높았던 시기는 2009년 13.1%였다.
반면 DPP-4 억제제는 2008년 0.3%에서 2019년 63.9%로 급증했고 SGLT-2 억제제와 GLP-1 제제도 크지 않지만 처방이 늘고 있다.
이 같은 경향은 로시글리타존의 심혈관 안전성 논란으로 의료진의 TZD 처방 경험이 많지 않아 다른 항당뇨병제를 선택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강북삼성병원 이은정 교수(내분비내과)는 "로시글리타존이 처음 등장했을 때 처방이 많이 이뤄졌으나 심혈관 안전성 논란을 겪으며 처방이 급감했다"며 "당시 수련받던 의료진은 심혈관 안전성 논란으로 TZD 처방 경험이 없어 이제 와 TZD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피오글리타존은 로시글리타존과 달리 심혈관질환 위험을 낮춘다는 연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TZD 계열 약제라는 이유로 묻혀버린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세브란스병원 차봉수 교수(내분비내과)는 "TZD를 보유한 제약사의 마케팅 활동이 거의 없어 젊은 의료진들은 TZD를 잘 모른다고 봐도 된다"면서 "DPP-4 억제제, GLP-1 제제, SGLT-2 억제제 등 새로운 항당뇨병제가 계속 등장한 가운데 TZD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도 대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