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 내리기 위해 더 많은 항고혈압제 필요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고혈압 치료 시에 적용하는 목표혈압의 기준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하향을 거듭하고 있는 목표혈압을 달성하기 위한 보다 빠르고 보다 강력한 항고혈압제 치료에 대한 요구도 점차 증가하는 형국이다. 특히 목표혈압의 변화와 연동해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데, 이 중에서도 순응도를 고려해 여러 항고혈압제를 하나의 정제로 혼합한 단일제형복합제(single pill combination)가 새로운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낮아지는 목표혈압

2017년 미국심장학회(ACC)와 심장협회(AHA)의 고혈압 가이드라인에서 크게 주목받은 대목은 혈압조절 목표치였다. 혈압을 어디까지 낮출 것인가의 문제로, 양 학회는 고혈압 기준을 130/80mmHg 이상으로 강화하면서 고혈압 환자의 혈압을 전반적으로 130/80mmHg 미만까지 낮추도록 권고했다.

ACC와 AHA는 “심혈관질환 병력자 또는 10년내 ASCVD 발생위험이 10% 이상인 성인 고혈압 환자에서 목표혈압은 130/80mmHg 미만으로 권고된다”고 밝혔다. 추가적인 심혈관질환 위험인자가 있는 고혈압 환자에서도 (심혈관질환 1차예방을 위해) 130/80mmHg 미만으로 조절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SPRINT의 파급력

미국이 이렇게 고혈압 환자 전반에 강력한 혈압강하를 주문할 수 있었던 것은 SPRINT 연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ACC와 AHA는 이 연구결과에 근거해 고혈압 환자 전반의 수축기혈압 목표치를 130mmHg 미만으로 조절하도록 권고했다. 연구에서는 수축기혈압 120mmHg 미만 목표치 그룹(집중치료, 평균 항고혈압제 3개)과 140mmHg 미만 그룹(표준치료, 평균 항고혈압제 2개)을 비교한 결과, 심근경색증·여타 관상동맥질환·뇌졸중·심부전·심혈관 원인 사망의 복합빈도가 연간 1.65% 대 2.19%로 집중조절군의 상대위험도가 25% 유의하게 감소했다(hazard ratio 0.75, P<0.001).

한국도 하향세에 동참

대한고혈압학회도 2018년 새로운 고혈압 진료지침을 발간하면서 미국발 목표혈압 강화 움직임에 동참했다. 학회는 새 고혈압 진료지침에서 목표혈압과 관련해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주문했다. 학회 측은 단순 고혈압 환자의 혈압을 140/90mmHg 미만으로 조절하도록 권고하면서도 환자(특성)에 따라 더 낮은 수위까지 낮출 수 있다고 언급했다.

“통상 140/90mmHg 미만조절 권고는 수축기혈압을 130~139mmHg 범위에서 혈압을 유지해도 괜찮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도 “이번 진료지침에서는 심뇌혈관질환 위험도가 높은 환자들에 대한 최근 연구결과를 반영해 140/90mmHg 미만으로 혈압을 조절하더라도 130/80mmHg까지 혈압을 최대한 낮추도록 권고했다”며 보다 낮은 구체적인 강압수치를 적시했다.

한편 심혈관질환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고혈압 환자에게는 130/80mmHg 미만의 적극적인 혈압조절을 권장했다. 단순 고혈압 환자에게는 140/90mmHg 미만조절을 권고한 반면 당뇨병 동반 고혈압 환자에게 140/85mmHg(심혈관질환 無) 또는 130/80mmHg(심혈관질환 有) 미만조절을 권고했다.

심혈관질환 고위험군과 병력자에게는 130/80mmHg 미만, 알부민뇨가 동반된 만성 신장질환 환자도 130/80mmHg 미만으로 혈압을 조절하도록 했다. 노인 고혈압 환자에는 기존 수축기혈압을 140~150mmHg로 조절하도록 했던 것을 140mmHg 미만으로 권고한 것도 보다 적극적인 혈압조절의 기조를 반영한 결과다.

목표혈압의 역사

고혈압 환자의 혈압강하 치료가 심뇌혈관합병증 위험을 감소시킨다는 것이 명백해지면서 혈압은 안전선까지 최대한 낮춰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됐다. 고혈압 환자의 심혈관질환 예방에 있어 혈압강하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 만큼 크다 할 수 있다.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혈압강하를 최대한 이뤄내자는 생각, 즉 ‘The Lower, The Better’ 개념이 고혈압 치료를 지배해 왔다. 당시 일련의 관찰연구에 대한 메타분석에서 수축기혈압 115mmHg를 초과하면서부터 심혈관질환 위험이 상승하는 것으로 보고되면서(Lancet 2002), 임상연구를 통해 심혈관 임상혜택이 확인된 140mmHg을 상한선으로 두고 정상혈압(120/80mmHg)에 가깝게 최대한 강압하는 것이 대세였다.

당시의 고혈압 가이드라인 대부분이 140/90mmHg 미만을 고혈압 환자 전반의 혈압 목표치로 적용하면서도, 당뇨병·신장질환·심혈관질환 병력자들에게는 130/80mmHg 미만의 보다 적극적인 혈압강하를 주문했다. 이들 동반질환 고혈압 환자의 심혈관사건 위험이 매우 높은 만큼, 혈압을 낮추면 낮출수록 심혈관질환 위험감소의 폭이 크다는 ‘The Lower, The Better’접근법을 적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후 심장학계는 ‘수축기 또는 이완기혈압을 지나치게 낮추면 어느 시점부터 심혈관사건 및 사망률이 증가한다’는 ‘J-curve Hypothesis(J-곡선 가설)’와 조우하게 된다. ONTARGET(NEJM 2008), INVEST(JAMA 2003) 연구의 사후분석에서 과도한 강압에 의해 심혈관 사망률이 증가하는 ‘J-curve Hypothesis’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더불어 ACCORD-BP(NEJM 2010) 연구에서 보다 낮게 혈압(수축기혈압<120mmHg)을 유지한 당뇨병 환자에서 기존 140mmHg 미만군과 비교해 이득이 관찰되지 않음으로써 심혈관질환 고위험 환자군에 대한 강력한 강압의 이론적인 근거가 흔들리게 됐다.

이에 따라 2012년 발표된 ESC의 심혈관질환 예방 가이드라인부터 당뇨병 환자의 혈압 목표치를 140/80mmHg 미만으로 조정해 권고하기 시작했고, 심혈관질환 고위험군의 혈압조절 강도의 변화가 수면 위로 공식 부상했다. ESC와 ESH는 2013년판 고혈압 관리 가이드라인에서 심혈관질환 위험이 경증 ~ 중증에 이르는 전반적인 고혈압 환자들의 혈압 목표치를 140/90mmHg 미만으로 통일시켜 적용했다.

더 중요한 대목은 당뇨병·심혈관질환·신장질환 환자 등 심혈관 고위험군 고혈압 환자의 수축기혈압 목표치를 130mmHg에서 140mmHg 미만으로 완화해 권고했다는 점이다. 2013 미국 고혈압 가이드라인(JNC 8차 보고서), 2014 미국당뇨병학회(ADA) 가이드라인, 2013 대한고혈압학회 고혈압 진료지침 모두 심혈관질환 고위험군 혈압조절과 관련해 수축기혈압 130mmHg 미만의 부재를 알렸다.

SPRINT, 목표혈압 끌어내리다

이 흐름을 단번에 뒤집어 버린 의학사의 수레바퀴가 바로 SPRINT 연구다. 수축기혈압 120mmHg 미만 목표치 그룹(집중치료, 평균 항고혈압제 3개)과 140mmHg 미만 그룹(표준치료, 평균 항고혈압제 2개)을 비교한 결과, 심근경색증·여타 관상동맥질환·뇌졸중·심부전·심혈관 원인 사망의 복합빈도가 연간 1.65% 대 2.19%로 집중조절군의 상대위험도가 25% 유의하게 감소했다.

SPRINT라는 새로운 근거를 맞이한 심장학계는 기존보다 공격적인 혈압강하 쪽으로 방향타를 틀게 된다. 이에 따라 조기에 혈압을 최대한 강압시키고자, 초기부터 항고혈압제 병용 또는 복합제 요법을 적용하는 전략이 새로운 수단으로 채용됐다.

The Lower BP

SPRINT 연구의 목적은 수축기혈압 목표치를 120mmHg 미만으로 가정하고, 이 수준까지 낮췄을 때 기존 140mmHg 미만과 비교해 임상혜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는 것이었다. 연구결과를 도출해 내기 위해서는 심혈관질환 고위험군인 시험군 환자들의 혈압을 120mmHg 미만으로 낮추는 것이 과제였다.

연구등록 시점에서 시험군(집중조절)과 대조군(표준조절)의 수축기혈압은 132mmHg 이상이 34% 대 33%, 133~144mmHg이 32% 대 33%, 145mmHg 이상이 동일하게 34%를 차지했다. 흥미로운 점은 연구시작 시점 양 그룹에서 사용된 항고혈압제의 수가 모두 1.8개였다는 것이다.

치료관찰 과정에서 120mmHg 미만을 목표로 하는 집중 혈압조절군의 경우, 평균 3개의 항고혈압제를 사용했다. 140mmHg 미만을 목표로 하는 표준치료군 역시 혈압강하에 사용된 항고혈압제가 평균 2개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치료 항고혈압제 수가 2개인 경우는 집중과 표준조절군에서 각각 30.5%와 33.3%, 3개는 31.8%와 17.2%, 4개 이상인 경우는 24.3%와 6.9%에 달했다.

The More Antihypertensives

주목해야 할 대목은 집중조절군에서 2제병용과 더불어 3제·4제병용까지 더 많은 항고혈압제가 투여됐다는 점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집중조절군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환자가 2개 이상의 항고혈압제로 치료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The Lower(더 낮은)’ 혈압조절을 위해서는 ‘The More(더 많은)’ 항고혈압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왜 병용요법인가?

미국고혈압학회(ASH)에 따르면, 단일성분 항고혈압제의 평균 강압효과는 9.1/5.6mmHg 정도에 머문다. 환자의 혈압이 140mmHg 이상이라고 가정한다면 항고혈압제 단독요법으로 120mmHg 미만의 목표치를 달성하기는 어렵다. 한 가지 루트만 표적으로 공략하는 항고혈압제 단일요법으로는 혈압을 정상화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혈압 목표치가 정상혈압에 더 가까운 쪽으로 낮게 잡힌다면, 항고혈압제 단독요법의 실효성은 떨어지게 되고 부득불 2제 이상의 병용요법을 적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대부분의 고혈압 가이드라인이 혈압 160/100mmHg 이상이거나 목표혈압보다 20/10mmHg 이상 높은 경우에 강압효과를 극대화하고 혈압을 신속하게 조절하기 위해 처음부터 항고혈압제를 병용투여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다.

유효성·안전성·순응도

고혈압 환자에서 항고혈압제 병용, 특히 고정용량 병용요법의 복합제를 조기적용하는 흐름은 이미 대세를 이루고 있다. 단독약제로 혈압이 조절되지 않는 경우, 더블도즈(double dose) 용량이나 다른 약제로의 전환보다는 신속하게 추가적인 약물을 더하도록 패러다임 자체를 병용요법 쪽으로 가져간다.

고혈압 치료에서 병용요법이 핵심으로 부상한 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다. 약물치료의 유효성·안전성·순응도를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고혈압제의 병용은 단일요법과 비교해 혈압강하력을 더 높일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서로 차별화된 기전을 통해 혈압상승의 원인이 되는 여러 다른 타깃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ASH는 “일반적으로 상호보완 작용이 있는 계열의 약물을 병용할 경우 단일약제의 용량을 증가시키는 것에 비해 5배 정도의 강압효과를 거둘 수 있다(Am J Med 2009;122:290-300)”고 밝혔다.

전반적인 내약성 개선 역시 병용처방을 선택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일반적으로 약제를 늘리면 부작용 위험이 상승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약제 간 상호보완 작용으로 인해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추가되는 항고혈압제의 약물학적 특성으로 인해 초기 단일약제의 부작용 위험을 상쇄시킬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저용량 초기 단일약제에 또 다른 항고혈압제를 추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순응도는 항고혈압제의 임상적 유용성을 평가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된다. 같은 혈압강하력의 두 항고혈압제를 놓고도, 순응도에 따라 효과의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순응도를 놓고 본다면 두 가지 이상 항고혈압제를 하나의 정제에 혼합한 복합제가 선호된다. 치료를 간편화시키고 알약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ASH는 복합제와 이를 구성하는 개별 약물을 비교한 9개 임상시험의 메타분석 결과를 인용, 복합제를 통해 약물 순응도를 26%까지 개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병용해법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의 적용시기를 앞당겨 권고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는 ACC·AHA의 고혈압 가이드라인이다. 미국발 고혈압 치료 권고안을 임상에 적용할 경우, 우리나라의 고혈압1단계부터 병용요법을 적용할 수 있게 된다. ACC와 AHA는 새롭게 정의한 고혈압2단계(140/90mmHg 이상)의 환자, 그리고 목표혈압보다 20/10mmHg를 상회하는 경우에 서로 다른 기전의 2개 약제(2제병용 또는 고정용량복합제)로 치료를 시작하도록 권고했다.

ACC와 AHA의 입장에서는 고혈압 2단계이지만, 우리나라로 따지면 1기 고혈압인 140/90mmHg 이상부터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가이드라인에서 고혈압1단계는 130~139/80~89mmHg 구간이다. 더불어 양 학회는 “대부분의 고혈압 환자에서 처음부터 2개 이상의 약제를 적용하는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이 최선의 치료일 수 있다”며 병용요법으로 치료를 시작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유럽도 “처음부터 병용”

유럽 심장학계 역시 가이드라인을 통해 병용요법의 조기적용을 강조했다. 유럽심장학회(ESC)와 고혈압학회(ESH)는 2018년 가이드라인에서 대부분의 환자에게 2제 병용요법을 권고했고, 순응도를 고려해 단일제형복합제 적용을 우선하도록 당부했다. 즉 약물치료는 2제병용으로 시작하도록 장려하는 동시에 가급적이면 단일제형복합제를 쓰도록 권고한 것이다.

단 쇠약한(frail)환자, 80세 이상 고령, 심혈관 위험도가 낮은 환자, 수축기혈압이 150mmHg 미만인 1단계고혈압 환자에게는 2제 병용요법을 피하도록 제한을 뒀다. 한편 ESC와 ESH는 병용치료 시에 1차선택할 수 있는 조합으로 △ACEI(안지오텐신전환효소억제제) 또는 ARB(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와 칼슘길항제(CCB) △ACEI 또는 ARB와 이뇨제를 권고했다.

韓 “SPC 고려할수도”

우리나라 역시 항고혈압제 병용요법을 치료초기부터 적용하는데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대한고혈압학회는 2018년 고혈압 진료지침에서 “혈압이 160/100mmHg 이상이거나 목표혈압보다 20/10mmHg 이상 높은 고위험군에서는 강압효과를 극대화하고 혈압을 빠르게 조절하기 위해 처음부터 항고혈압제를 병용투여할 수 있다”고 권고했다. 학회는 “고혈압 환자의 3분의 2 이상이 한 가지 항고혈압제로 혈압조절이 되지 않고 서로 다른 기전의 두 가지 이상의 항고혈압제가 필요하다”며 병용요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특히 “병용요법의 경우에는 약물 순응도를 개선한다는 측면에서 초치료에 단일제형복합제(SPC, single pill combination)를 고려해볼 수 있다”며 순응도 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 복합제 전략에 무게를 뒀다.[메디칼업저버 이상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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