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응급실에 켜진 빨간불 ... 수가 낮아 적자 눈덩이

소아는 성인과는 다른 공간에서 응급 진료를 받아야 함에도 많은 병원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2010년 4월 전국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134곳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급실에서 소아 구역을 구분하지 않고 운영하는 곳이 33.3%나 됐다.
또 소아중환자를 입원시킬 수 없는 병원이 16%였고, 야간에 소아진료를 할 수 없는 곳도 16%나 됐다. 응급실과 소아과 등은 병원에서 대표적으로 적자를 기록하는 진료과다. 이 두 가지 조건이 함께 있는 소아응급실은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다.
서울의 모 대학병원 교수는 "24시간 소아응급실을 운영하려면 의사와 간호사 인력 배치를 비롯해 시설, 장비 등을 갖춰야 한다. 매년 수십억 적자를 기록하는 입장이라 경영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소아응급실까지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배짱 좋은 의사들은 많지 않다"고 토로했다.
소아응급실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수가라는 현실적인 이유에 발목이 잡혀서다. 현재 성인 채혈과 소아 채혈이 거의 비슷한 수가로 책정돼 있다. 소아에서 채혈하려면 성인의 몇 배에 달하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모 대학병원 소아응급센터 한 교수는 "소아를 진정시킬 때 수가가 아직 책정돼 있지 않고, 마취과가 아닌 경우 급여가 불가하다"며 "수면내시경의 전신마취 급여처럼 소아응급환자 진정치료 시 전신마취료의 보험 수가를 인정하거나 혹은 인정 비급여로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아응급실에서 일할 의사를 구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소아응급실에 근무할 수 있는 의사는 소아청소년과나 응급의학을 전공한 사람이어야 한다.
모 소아응급실 교수는 "소아과 의사 중 응급실에서 근무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응급실에서 소아 환자는 진료하기 어렵고 까다롭다. 심지어 응급의학과 의사도 소아 환자를 꺼린다"며 "소아응급실은 낮에 진료하고, 야간에 당직을 서야 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근무하길 원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한다.
또 "근무 여건이 나빠지면 의사들이 이직하고, 남아 있는 의사들은 더욱 힘들어진다"며 "근무할 의사를 구하기 힘들어지고, 그러면 몸값은 더욱 올라간다. 경영진은 더욱 꺼리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소아전문응급센터 정착 기대"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2010~2012년까지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순천향대 천안병원 등 10곳을 대상으로 '소아전용응급센터'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시설투자 등에 1억 4000만원 정도를 투자했다.
전문가들은 의도는 좋았지만 체계적이고 총체적인 계획이 부족했다고 꼬집는다.
한 교수는 "이 사업이 시설과 장비 지원에 집중돼 소아응급전문 인력을 규정하거나 지원하는 데 허술했다"며 "중환자나 긴급수술이 필요한 소아 환자를 대처할 수 없었고, 평가나 질관리 프로그램도 부재했다"고 지적했다.
또 "소아응급실이 정착하려면 국가인증 소아응급실과 광역소아응급실 등 환자의 중증도와 특수한 술기 요구 충족 여부에 따라 구분해야 한다"며 "국가인증 소아응급실에서는 소아응급환자의 전반적인 치료와 초기 안정화, 위급상황 환자 프로토콜 등을 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권역 소아응급센터는 위급한 상황의 소아환자 최종 진료와 소아중환자 입원치료, 지역 내 이송 프로그램 등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복지부는 소아전문응급센터 운영을 선언했다. 화상, 중독, 외상 등으로 응급전문센터를 지정하려던 기존 계획에서 소아를 추가해 소아전문응급센터를 운영하겠다고 한 것.
서울대병원 소아응급센터 한 교수는 "복지부가 제시한 응급실 인력기준 등이 너무 엄격해 지방에 있는 병원들이 가능할지 걱정"이라며 "권역별로 1개 정도 선정할 듯하다. 제대로 된 제도로 정착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