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설립요건·관리기전 강화 필요…솜방망이 처벌도 ‘문제’

비영리법인을 이용해 병원을 사고팔거나, 의료생협과 병원 개설 노하우를 전수하는 등 사무장병원을 이용한 범죄가 진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상황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해 사무장병원을 통제할만한 기전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법인 만들어 사무장병원 개설…법인명의 팔기까지

최근 서울고등법원은 비영리법인을 이용해 문어발식 사무장병원을 개설, 운영한 일당들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비영리법인의 명의로 의료기관 개설이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해 D법인을 설립한 A씨는 2006년 1월경 의료기관을 개설, 2008년 4월경까지 운영했으며 이 기간 동안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비용 합계 2억 3166만 7266원을 편취했다.

A씨의 범행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의원을 운영하던 중, 2006년 11월경 D법인 명의로 사무장병원을 하나 더 개설한 것. A씨는 기존 의원을 다른 비의료인에게 보증금 포함 2억원에 병원시설 일체를 양도하면서 D법인의 명의를 빌려주기로 합의했다.

A씨의 아들인 B씨는 2008년 7월경 D법인의 명의로 개설된 요양병원의 원무부장으로 근무했으며, 이 병원 역시 건보공단으로부터 56억원이 넘는 요양급여비용을 편취하는데 공모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와 B씨에게 징역 2년 6월을, C씨에게 징역 1년을, D법인에게는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D법인은 설립 당시 창립총회를 하지 않았고 의료기관 개설이나 회계결산보고 등 법인 운영과 관련된 주요사항에 관해 이사회를 개최한 적이 없다”며 “등록된 법인이사들은 A씨의 부탁을 받아 명의를 빌려줬을 뿐 이사로서 D법인의 업무에 관여한 바 없다”고 밝혔다.

이어 “D법인이 이 사건 각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것과 같은 외관을 형식적으로 만든 뒤, 실질적으로는 A씨의 비용과 책임으로 각 의료기관을 개설했음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며 “A씨가 건보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해 지급받은 행위는 건보공단을 기망해 재물을 교부받은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재판부는 “A씨는 8년이 넘는 기간 동안 주도적으로 여러 의료기관을 개설, 운영했고 수천만원의 대여로를 받고 법인 명의를 대여해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에 가담했다”며 “편취된 요양급여비용이 70억원이 넘고, 이 금원에 대한 환수마저 어려워 상당기간 실형이 불가피하다”면서 징역형을 선고했다.

또 “B씨는 6년 3개월 동안 요양병원 개설, 운영에 관여했고 편취한 요양급여비용이 56억원이 넘으며, 피해가 현존하는 점에서 불법 정도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판결에 불복한 이들은 항소심을 제기했지만 2심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며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의료생협 사무장병원 노하우 전수한 컨설턴트, 전국구 단위로 활동

비영리법인을 이용해 사무장병원을 만들고 사고 판 A씨의 범죄행위와 비슷한 행동을 저지른 사람이 있었다. 이 둘의 차이라면 의료생협을 통해 사무장병원을 만들었고, 많은 사람에게 자신이 병원을 개설한 방법을 전수해 범죄 규모가 전국 단위로 커졌다는 것.

지난 2012년 충주지방법원에서는 비의료인 E씨를 포함한 24명의 비의료인이 사무장병원을 운영하다 의료법 위반, 의료법 위반 방조죄로 덜미를 잡힌 사건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당시 판결을 살펴보면 이들 중 일부는 의료생협 명의를 대여해 사무장병원을 운영하다가 직접 의료생협을 만드는 방식으로 진화했고, 이 과정에서 E씨를 포함한 상당수는 전국을 돌며 불법 의료생협을 설립할 수 있도록 ‘컨설턴트’ 노릇까지 했다.

E씨는 2005년 충북 모처에서 F의료생협을 만들고, 의료생협 명의로 직접 요양병원을 운영했다. 그러던 중 G씨에게 F의료생협 명의를 밀려주는 대가로 보증금 1000만원, 매월 150만원을 받았다.

E씨는 H씨, I씨, J씨에게도 명의를 빌려줘 사무장병원을 개설하도록 했는데, 특히 의사 J씨의 경우는 이혼 및 위자료청구 소송을 당해 본인의 의원이 강제 집행되는 상황에 처하자 F의료생협의 명의를 빌려 분사무소 형태로 의원을 개설했다.

이후 G씨와 H씨는 직접 의료생협을 설립해 독립했다. G씨는 의료생협 명의를 이용해 4개의 사무장병원을 차렸고, 이후 지인의 명의를 빌려 또 하나의 의료생협을 설립해 M씨에게 분양했다.

H씨 역시 의료생협을 만들고 자신 소유의 의원 1개를 개설한 뒤, N씨에게 의료생협 명의를 빌려줬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지 H씨는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려 또 하나의 의료생협을 설립한 후 O씨, P씨가 자신의 의료생협 명의로 사무장병원을 차리도록 했다.

이들이 의료생협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모두 E씨의 도움 덕분이었다. 컨설턴트를 자임한 E씨는 의료생협을 설립할 수 있도록 정관, 창립총회 관련 파일 양식을 제공하고 조언까지 충실히 해줬기 때문이다.

이들의 막장 범죄행각에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범행은 의료기관 개설 자격을 엄격히 제한해 건전한 의료질서를 확립하고 국민건강을 보호하려는 의료법 취지를 위반, 영리를 추구해 죄질이 무거워 엄한 처벌이 마땅하다”고 지적하며 유죄를 선고했다.

특히 재판부는 “E씨, G씨, H씨 등은 의료생협을 설립해 자신들의 범행에 이용한 것 외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한 범행 수법을 알려주고, 범행을 공모하거나 방조해 죄질이 더욱 무거워 실형을 선고한다”고 지적했다.

진화하는 사무장병원, 막을 방법은?

기존의 비영리법인, 의료생협을 이용한 사무장병원은 이들의 명의를 이용해 사무장병원을 개설해 건강보험재정에 악영향을 끼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면서 이들의 범죄행위는 점차 변모하가고 있는데 법인의 명의를 사고파는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터득한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법인을 이용한 사무장병원이 기승을 부리게 된 것은 설립인가를 내리는 과정에서의 정부의 허술한 태도가 문제이다.

A씨는 법인을 설립할 당시 창립총회를 열지 않았고, 의료기관 개설, 회계결산보고 등 법인 운영과 관련한 주요사항에 관해 이사회를 개최한 적도 없었으며, 결산서나 지출결의서, 회계장부 등 법인 업무와 관련한 서류를 작성, 비치하지도 않았다.

여기에다 A씨는 지인들에게 부탁해 형식적인 법인 이사로 등재했으며, 이들 중 일부는 법인의 설립 목적조차 모르고 있었다.

청주지방법원 사건도 마찬가지인데 H씨가 컨설턴트를 해준 Q씨의 경우, 모 클럽 월례회식 사진을 의료생협 발기인대회 사진으로, 결혼식 사진을 창립총회 사진인 것처럼 조작했지만 설립인가를 받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 법무지원실 김준래 변호사는 “비영리법인 사무장병원 사건들을 살펴보면 설립 당시 총회도 하지 않고 회기 결산, 심지어는 이사회도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기전만 있으면 충분히 걸러낼 수 있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걸러내지 못하고 완전히 방치해 놨다”고 지적했다.

또 “사전적인 장치가 마련되면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다”며 “예를 들면 의료기관의 수입이 법인에 귀속되는지, 귀속된 수익이 법인의 목적사업에 쓰였는지, 이사회 결의를 얻었는지 등만 확인하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들 사무장병원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 이들 범죄행각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는 최근 법 개정을 통해 사무장병원 통제기전 마련에 나섰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의료생협 설립 요건을 강화하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개정안을 살펴보면 의료생협 설립에 필요한 설립 동의자 수, 총 출자 금액 요건이 강화되는 한편, 건보공단에 의료생협의 인가와 사후관리 업무를 위탁,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의료법에도 비영리법인에 대한 규정이 새로 신설됐는데 의료기관을 개설하기 위해선 법인의 주무관청이 의료기관 소재지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과 협의를 해야 한다는 의료법 제33조 9항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건보공단도 급여상임이사 직속의 ‘의료기관관리지원단’을 새로 설치, 사무장병원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지원단은 사무장병원을 ▲비영리법인에서 다수 의료기관을 수시 개·폐업하는 기관 ▲중증질환 의료인의 ‘메뚜기’ 개원기관 ▲보험사기 의심기관 등 개설 유형별로 분류해 경찰청, 국세청, 근로복지공단 등 관계기관과 협업해 기획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이처럼 의료기관을 개설하려고 하는 비영리법인, 의료생협에 대해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지만 아직은 기초 단계라는 지적이다. 관련법들이 개정·정비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건보공단의 의료기관관리지원단도 1년간 한시운영 후 조직의 지속 및 확대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만큼 실효성에 물음표가 남아있는 상태.

이와 함께 사무장병원 개설자들에게 내려진 형벌이 가볍다는 것도 문제이다.

D법인을 만들어 70억원이 넘는 요양급여비용을 편취한 A씨나, 마찬가지로 56억원을 불법청구한 B씨에게 내려진 형벌은 징역 2년 6개월에 불과했다.

또 전국 단위로 의료생협 컨설턴트를 해준 E씨와 그 일당에게도 유죄가 선고됐지만 E씨에게 징역 1년 6개월, H씨에게 징역 1년 2개월 등의 형이 내려졌을 뿐 상당수는 벌금형, 집행유예에 그쳤다. 전국 단위로 16개의 불법 의료생협을 만들어지도록 공모한 죄에 비하면 형량이 가볍다는 지적이다.

이에 그는 “법인을 이용한 사무장병원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짧고 처벌 수위도 낮다”며 “저지른 범죄에 비해 처벌 수위가 낮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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