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질환관리제로 노인 의료비 잡겠다는 정부… 현실적 수가 인상 요구하는 의료계

 

"앞에 답을 두고 일부러 헤매고 있는 꼴이다."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 급증에 대해 미온적인 정부와 의료계의 태도를 두고 전문가들이 하는 지적이다.

정부와 의료계가 서로 논의해 최선의 답을 찾을 수 있지만 각자의 주장만을 고집하면서 건강보험재정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비판이다.

노인 진료비 증가로 인한 문제는 갑자기 등장한 이슈가 아니다. 그런데 여전히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정부는 의료계 탓, 의료계는 정부 탓을 하고 있다.

서로의 탓을 하는 사이 또다시 노인 진료비가 급증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간한 2014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2014년 노인 진료비는 19조 9687억으로 전체 진료비(54조4272억원)의 36.7%를 차지했다. 2008년 처음으로 30%를 돌파한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

2014년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600만 5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1.9%를 차지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 비중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노인 의료비 증가가 점차 보건의료계의 이슈 중심으로 들어오는 이유는 고령화와 맞물려 사회적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 이 문제는 세대 간 갈등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불씨를 안고 있다. 그런 이유로 미국, 일본 등 전 세계 국가가 노인 진료비를 낮추기 위한 묘수를 짜는 데 분주하다.

정부 해법으로 내놓은 만성질환관리제

우리나라 정부도 노인진료비 감소를 위해 대안을 짜고 있다. 건강증진 및 예방 서비스 강화, 방문간호 서비스 활성화, 1차 의료활성화, 주치의 의사제도 등이 그것이다. 건강증진 및 예방 활동과 관련된 움직임으로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건강백세운동교실'을 꼽을 수 있다. 건강노인백세운동의 주 목적은 노인들에게 운동이나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노인의료비를 절감하려는 것이다.

건보공단 건강증진실 한 관계자는 "노인 의료비 급증은 사회적으로 큰 부담이다. 따라서 어르신에게 운동을 시킴으로써 치료에서 예방 목적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며 "그동안은 경로당 중심으로 하다 보니 한계에 봉착했다. 그래서 새로 시작하는 것이 대한노인회, 지자체 등 지역 봉사단체와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사업이 중복되지 않도록 2014년부터 노인건강 마일리지 시범사업을 펼쳐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건보공단은 지난해 3곳에서 올해 6곳으로 넓히고 있고, 내년은 18곳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또 대도시, 중소도시, 군도시로 구분하고, 생활실천을 촉진시키기 위해 운동프로그램 등에 참여하면 마일리지를 부여하는 방식도 시행하고 있다.

그는 "노인들이 일정량 운동을 하면 건강상품 등을 제공하는 제도와 스스로 운동할 기회 제공 등을 연중사업으로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노인 진료비 증가라는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다루면서 운동교실 운영이라는 소극적인 방법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겠냐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방문간호서비스 활성화와 1차 의료 활성화, 주치의제도 등도 제자리걸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의지는 굳건하다.

건보공단 한 고위관계자는 "현재와 같은 체계에서는 의료이용과 의료비용이 계속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 정부는 만성질환자들이 1차 의료기관을 찾도록 지속해서 제도적인 노력을 할 것"이라며 "경증의 노인 및 만성질환자가 지역 의원에서 진료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의협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만성질환관리제를 지금보다는 더 활성화 해야 한다"며 "1차 의료활성화는 노인들에게 적합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동시에 의료비 지출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방안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계, 저수가 해결 없인 ‘모래성’

1차 의료 활성화 등 정부의 제안에 의료계도 전반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세부 사업에 들어가면 정부와 의료계의 생각은 서로 갈라진다. 대표적인 것이 1차 의료 활성화를 위한 만성질환관리제다.

 

정부는 의료계가 1차 의료기관 활성화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만성질환관리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건보공단 한 고위 관계자는 "노인 진료비 증가를 해결할 방법은 1차 의료 활성화다.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가진 노인을 관리하는 만성질환관리제도의 일환으로 진행하려는 것"이라며 "대한의사협회도 뜻에는 동의하면서 사업에 미온적인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의협은 생각이 다르다. 정부가 만성질환관리제 효과로 1차 의료 활성화를 언급하지만 이는 명분일 뿐 재정절감이 목적이라고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의협측 관계자는 "정부가 1차 의료를 활성화하려면 만성질환관리제나 고혈압•당뇨병 등록관리사업을 할 것이 아니라 1차 의료의 저수가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며 "최근엔 정부가 비만사업까지 넣어 보건소 중심의 건강생활센터를 만들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그 의도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건보재정이 남으면 시범사업들을 벌여 재정을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1차 의료의 저수가를 해결해 환자치료와 관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1월부터 대형병원 본인부담금 인상

의료계와 몇몇 곳에서 불협화음이 있지만 정부는 1차 의료를 활성화시켜 의료계가 안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오는 11월부터 경증으로 대형병원을 찾았을 때 본인부담금을 더 내도록 한 것도 궤를 같이하는 조치다.

복지부는 "오는 11월 1일부터 경증 의료급여 환자도 대형병원을 이용할 때 약제비 본인부담금을 더 내야 한다"며 "비교적 가벼운 질병의 경우 의원 또는 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 의료급여기관이 종별로 본연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드시 풀어야 하는 노인 진료비 증가와 1차 의료 활성화 문제를 정부와 의료계가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해지는 시기다.

이웃나라 일본도 노인 의료비로 골머리

70세 이상 본인 부담률 30%로 인상
대기업•공무원 조합에 부담 늘려

일본은 지난 2006년 10월부터 현역세대 수준의 소득이 있는 70세 이상 노인 본인부담률을 10%에서 30%로 인상한 바 있다.

또 국민건강보험의 재정난을 덜기 위해 올해 3월 3일 2018년 운영 주체를 시정촌에서 도도부현으로 전환하는 의료보험개혁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의 핵심은 소득이 높은 대기업 사원들이 가입하는 건강보험조합과 공무원 공제조합의 부담을 늘려 고령인구의 의료비를 부담하는 구조로 만든 것이다. 일본이 국민건강보험의 운영주체를 전환한 것은 지난 1958년 이후 60년 만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법을 바꿨지만 증가하는 노인의료비 증가를 막지 못할 것이라 예상한다. 실제 일본 건강보험조합 중 80%가 2014년 적자를 기록했고, 전체 조합의 30%에 해당하는 400여 개의 조합이 보험료율 인상을 했기 때문이다.

노인 의료비 상승은 세대갈등으로 번질 불씨를 안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는 카드로 일본 정부는 제네릭 사용 촉진, 의약품이나 의료기기의 허가나 취득기간 단축 등의 규제개혁, 건강기능식품 제도개선, 인터넷 의약품 판매 규제 완화 등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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