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 적응증 확대·경제성 평가 등 제도 개선 목소리 높아

표적항암제나 희귀질환치료제 신약은 효능이 입증돼 출시가 되더라도 높은 가격으로 건강보험 재정부담 때문에 급여권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급여가 인정되지 않으면 환자는 치료비용 부담으로 신약을 처방받는데 제한이 있다.
이에 정부는 이들 약에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신약의 효능·효과나 보험 재정 영향 등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약회사가 일부 분담하는 '위험분담제'를 2013년 말 도입했다.
위험분담제는 비용효과적 의약품을 선별 급여하는 원칙을 살리면서도 대체 치료법이 없거나 치료적 위치가 동등한 의약품이 없는 고가항암제, 희귀질환치료제 등에 대한 환자 접근성을 제고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시행 중인 위험분담제가 제도상의 제약이 많아 취지와 목적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어 있어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살펴봤다.

위험분담제를 선택하는 이유 = 최근 결정된 일동제약의 피레스타를 포함해 위험분담제가 적용되는 의약품들은 젠자임의 에볼트라, 머크의 얼비툭스, 세엘진의 레블리미드, 아스텔라스 엑스탄디, 화이자 잴코리, 한독 솔리리스 등 7개로 항암제 또는 희귀질환치료제다.

환자의 니즈로 개발을 시작해 빛을 보게 됐지만 타 질환 치료제보다 높은 약가는 보험급여 장애 요소.

다국적사들은 글로벌 프라이스와 비교해 국내에서 수용 가능한 가격을 책정, 정부와 줄다리기를 거듭한다.

다국적사 한 관계자는 "2007년 이후 국내에 등재된 신약은 OECD 국가 평균 가격의 44% 수준으로 공급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항암제 등은 절대가격이 높다는 이유로 급여등재가 어려워 난항을 겪는다"고 전했다.

실제 얼비툭스는 10년만에 급여화에 성공했고, 잴코리는 3번의 고배를 마신 후 급여가 인정됐다.

또다른 다국적사 아태지역 임원은 "한국은 아시아에서 시장 성숙도가 높은 국가이기 때문에 제품에 있어 해당 국가의 정부가 어느정도 부담할 수 있는지 고려를 하고 협상을 시작한다"며 "항암제처럼 생명을 연장한다던가 치료하는 개념은 합의 도출에 어려운 점이 있는데, 혁신에 대해 어느정도 보상을 해주느냐가 어렵다. 특히 한국은 다른 국가보다 조금 더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격문제로 환자를 외면할 수는 없는 상황. 여기에 급여가 인정될 경우 매출신장도 이뤄지기 때문에 제약사들은 위험분담제를 선택하고 있다.

위험분담제 적용 이후 이들 제품의 매출은 수직상승했는데, 올해 복지부가 예측한 에볼트라, 레블리미드, 얼비툭스, 엑스탄디 등 4개 의약품의 연간 예상 청구액은 889억원에 이른다.

 

적응증 확대, 경제성 평가, 환급문제는 '발목' = 위험분담제가 시행된지 2년째지만 이 제도를 통해 환자에게 공급되는 약은 7품목에 불과하다. 이는 유효성을 검증하기 위한 평가절차 등이 비합리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급여기준 확대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심평원의 '신약 등 협상대상 약제의 세부평가 기준'을 살펴보면, 위험분담 계약 기간 동안 급여 기준확대 적용이 불가하다는 조항이 들어있다.

항암제의 경우 적응증 추가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약물인데 이 같은 조항은 환자의 접근성 및 일반 등재 신약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다국적사 관계자는 "위험분담제를 통해 등재된 약제들은 일반 신약과 동일한 비용효과성평가 등재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급여기준 확대를 제한할 객관적인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환자들 역시 불만이다. 엑스탄디는 이전에 도세탁셀로 치료 받았던 전이성 거세 저항성 전립선암에만 급여가 인정되는 반면 항암치료 전력이 없는 전이성 거세 저항성 전립선암 환자들은 급여혜택을 받지 못한다.

잴코리는 2차 치료제에서만 보험급여가 적용되기 때문에, 1차로 복용한 환자들은 고스란히 고가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환자단체 한 관계자는 "위험분담제가 적용되는 약제는 4년간 다른 질환에 급여 확대가 제한되고 있어 역차별과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며 유연성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위험분담제 약제에 대한 경제성평가도 개선요소로 꼽히고 있다.
위험분담제는 '대체약제가 없는 약제에 한해, 환자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의 심각한 질환에 사용하는 약제'에 적용된다.

대체약제가 없어 비교가능한 약제가 없음에도 다른 치료방법과 비교해 경제성평가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있고, 이 같은 경제성평가를 거치느라 치료가 시급한 환자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문제는 올해 복지부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는데, 보건복지위 문정림 의원은 "제도의 취지는 '국민의 보장성 강화와 비급여 고가치료제로 인한 경제적 부담 환화'에 있다"며 "대체약이 없고 생명을 위협하는 약제의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한 위험분담제에 있어 경제성 평가를 융통성 있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환겹형 전액환자본인 부담 환자에 추가적으로 차액을 환급하는 것은 비밀유지조항에 저촉될 위험이 있고, 계약 만료 후 재평가에 대한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에 대한 규정도 미비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유연한 제도 개선 필요= 정부는 4대 중증질환 보장성강화 정책 일환으로 항암제 및 희귀난치성질환 치료제에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위험분담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문제점들로 인해 제약사들은 위험분담제를 주저하는 상황.

이에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 측은 "제약사들이 위험분담제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경제성평가 요건을 완화하고 다양한 형태로 위험분담제가 이뤄져야 하며 적응증이 다양한 치료제의 경우 위험분담제를 통한 확대가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위험분담제를 적용할 수 있는 대상 질환군 확대가 필요하며 예측 가능한 제도 운영을 통해 가격 조정 절차가 확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험분담제 적용 대상에서 '대체 가능하거나 치료적 위치가 동등한 제품과 치료법이 없는 경우'는 '비교대상 약제가 없어 비용효과성을 판단할 수 없는 경우'와 '임상자료가 불충분해 효과를 판단할 수 없는 경우'도 포함돼야 한다고도 피력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위험분담제가 건보재정 절감이 아닌 환자의 신약 접근성 보장을 위한 제도가 돼야 한다"며 "생명과 직결되고 투약을 못하면 사망에 이르는 중요한 약제와 대체약제가 있는 약제를 구분해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 심평원 관계자는 "현재 추가적응증 확대 문제를 검토 중"이라며 "다만 위험분담제가 일반화되면 기존 약가협상 제도가 흔들릴 수 있고 등재과정이 일반 신약 절차와는 다르기 때문에 제한적인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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