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1] 환자가 진단하고 기계가 수술하는 ‘미래’...더 이상 미래가 아니다

 
2017년 겨울, 저녁식사를 마치고 한가로이 TV를 시청 중이던 직장인 A씨. '뾰롱뾰롱' 하는 알람음에 팔목에 찬 웨어러블기기의 액정을 들여다보니 '감기(급성상기도감염)'라는 진단명과 함께 얼마 전 편의점에서 사다 놓은 해열제 한 알을 투약하라는 처방이 깜빡이고 있다(약은 사다놓은 날 '상비약' 리스트에 업데이트해 뒀다). 낮부터 몸이 무겁다 했더니 역시 감기다. 약을 먹고 누울까 하다, 지난달에도 감기가 낫지 않아 오랫동안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라 병원에 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처방' 밑에 깜빡이고 있는 '병원' 아이콘을 누르니 집 주변에 감기를 주로 보는 의료기관들의 리스트가 쭉 나열된다. 그중 '친절도' 별점이 가장 높은 B병원의 이름을 누르자, 일정이 비어 있는 시간대에 맞춰(스케쥴러와 연동된다) 진료예약을 하겠다는 확인창이 뜬다. OK 버튼을 누르니 끝. A씨는 다시 시선을 TV로 돌렸다. <기획①> 미래 의학, 더 이상 미래가 아니다 <기획②> '의사'에 도전하는 슈퍼컴 '왓슨' <기획③> "미래가 원하는 의사 스펙은 공감·관찰능력" <기획④> "미래의 의사, 데이터 과학자로 거듭나야"
 

웨어러블 기기를 착용하는 것만으로 질병의 진단과 처방이 이뤄지고, 유전자와 줄기세포를 이용해 절단된 사지를 재생하며, 낡거나 기능이 떨어진 장기를 새 장기로 교체하거나, DNA를 조작해 성별부터 신장·피부·머리카락과 눈동자의 색까지 부모가 원하는 모양으로 '디자이너 베이비'를 만든다.

이런 일들이 과연 영화나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공상'에 불과할까?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이런 상상들이 곧 미래 사회 우리의 '현실'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달라질 미래는 의사들에게도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투자자 비노드 코슬라(Vinod Khosla)는 2012년 기고문을 통해 "앞으로 대부분의 의사가 닥터 알고리듬에 자리를 내줘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 데 이어 같은 해 강연을 통해 "지금의 헬스케어는 마술과 같으며, 기술이 80%의 의사를 대체할 것"이라고 밝혀, 의학계에 논란을 일으켰다.

인간의 쓰임새를 되돌아보게 하는 '기계의 역습'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미래 사회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의료'를 강렬히 희망하게 되리라는 중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유엔미래보고서 2045>
3D프린터로 장기 만들고, '트랜스 휴먼' 길거리 활보

여기 미래를 연구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 밀레니엄 프로젝트(The Millennium Project)는 글로벌 미래를 연구하는 그룹으로, 유엔과 그 산하의 각 연구기관 등 다양한 국제기구와 협력 속에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문제 해결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밀레니엄 프로젝트는 1988년 유엔의 새천년 미래예측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1996년 비정부기구 NGO로 창립됐으며, 현재 전 세계 50개 지부, 각 분야 3500여 명의 학자와 전문가가 참여한 가운데 글로벌 미래예측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다.

이들은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미래를 예측하고, 그 연구결과를 유엔미래보고서로 펴내고 있다. 올해에는 ‘유엔미래보고서 2045’라는 이름으로 30년 후 우리의 삶에 관한 예측 시나리오를 내놨다.

라이프로그와 기술의 결합

 

라이프로그(lifelog)는 말 그대로 삶의 기록을 뜻한다. 자고 일어나는 시간과 우리가 먹는 음식, 활동 내용과 거리, 나아가 그때그때의 기분까지 일상생활과 관련한 가능한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는 일이다.

유엔미래보고서는 이 같은 라이프로그가 기술과 결합해 실시간 건강 모니터링 기술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초기 단계에 들어선 이 기술이 2017년경 목표한대로 완성되면 맞춤의학의 새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의료 관련 빅데이터가 환자들 스스로 건강을 진단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기술은 국가의 보건의료 패러다임도 바꿀 수 있다.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 개인의 건강기록을 데이터화해 합하면 공중보건을 위한 빅데이터가 되고, 이는 개인의 건강을 넘어 사회적 질병과 건강문제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유용한 정보가 된다. 질병의 증상이 나타난 후가 아니라 발병하기 전에 예방하거나 조기에 치료하면 생존율도 높아지고 국가 복지 예산절감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덧붙여 2040년에는 개인당 적어도 하나 이상의 의료기기를 몸에 이식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장치는 개인의 요구사항에 맞춰 정확하게 조정돼, 실시간 건강체크는 물론 정기적인 투약 알림, 비상시 경보장치 등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의사 vs 컴퓨터, 정확성과 휴머니티의 대결

 

보고서는 미국의 심장내과 의사이자 스크립스 병진과학연구소 소장인 에릭 토폴(Eric Topol)의 말을 인용, "미래에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의사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의료분야의 모든 영역이 빅데이터로 융합되는 미래시대에는 컴퓨터가 의사의 역할을 대신 해줄 것이라는 예측이다.

컴퓨터는 실시간 모니터링과 초대형 표본 데이터 분석, 그리고 24시간 근무가 가능하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병원을 방문하거나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부담이 없어지고, 관련 장비가 대중화되면 의사에게 진찰을 받는 것보다 더 저렴한 비용으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의사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환자의 불안심리를 안정시켜 주는 것은 컴퓨터의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아닌, 인간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관심, 상호작용이라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

또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기계가 감당할 수 없는 예외적인 상황이 있게 마련이니 이에 대처하고 관리할 인력이 필요하고, 기술과 마찬가지로 질병의 세계, 그리고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주변의 세계 또한 지속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이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이를 컴퓨터에 반영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의 창의력이다. 보고서는 "인간을 다루는 문제에서는 반드시 인간적인 문제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색다른 창의성이 필요하거나, 때로 비정상적인 사고를 해야 하고, 인간의 직감이 필요하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줄기세포와 3D 프린트의 혁명
보고서는 생명공학계의 여론을 인용, 이식에 사용하기 위한 장기의 생산이 2020년경에는 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줄기세포를 이용하는 기술력의 발달에 힘 입은 결과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까지 장기이식과 관련된 치료비가 전 세계 보건의료 지출의 약 8%인 3500억 달러에 달해, 장기 생산으로 인한 경제적 이득 또한 막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더불어 1985년 개발돼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3D 프린트 산업 또한 의료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2025년경이면 각종 장기를 비롯해 인공 턱뼈와 치아, 관절, 두개골 등 각종 조직과 세포, 피부에 이르기까지 인간 신체의 78개 부분의 3D 프린팅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간과 기계의 융합 '트랜스 휴먼'
이번엔 조금 더 먼 미래로 가보자. 사이보그에 관한 얘기다.

보고서는 2018년경에는 웨어러블 기기의 발전으로 인체에 다양한 기계장치를 장착하는 인체 임베디드(embedded) 시스템이 보편화될 것이라고 보면서, 이것이 인간을 점차 사이보그에 가깝게 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생명공학의 발달과 개인용 의료기기의 광범위한 이식이 인간과 기계의 급속한 융합을 불러올 것이라는 예측이다.

구체적으로는 2030년이 되면 평범한 인간의 시력을 넘어서는 인공안구가, 2043년이 되면 나노봇이 인간의 지능을 인공지능과 결합시켜 지능을 확장시켜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러한 결합이 자연스러워지면서 마침내 2100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사람과 기계의 융합이 일어나 '트랜스 휴먼'이 보편화 될 것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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