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전공의 수련환경 어떻게 바꿀까] 호스피탈리스트·E 포트폴리오 등 개선책 마련 분주

의사 선배들은 전공의들의 수련환경이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개선됐다고 말한다. 실제 정부는 수련환경 개선책을 마련, 전공의 근무시간을 주당 80시간으로 제한토록 했다. 최근 법원에서는 전공의의 추가 근무에 대해 근로기준법을 적용해 추가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며 전공의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여전히 1~2시간 쪽잠으로 환자들이 음주진료보다 위험한 '졸음진료'에 노출돼 있으며, 주당 80시간을 맞추기 위해 '이중 근무표'를 작성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촘촘해지는 제도에 맞서 병원에서는 폭력이나 폭언 등 인권유린이 횡행한 것은 물론 강제적인 연속근무 지시, 의무기록 조작 등 전공의들에게 불법적인 행위를 강요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십년째 반복되는 전공의 문제에 대해 대한전공의협의회를 비롯한 전공의 및 의대생 관련 단체들은 '호스피탈리스트'제도를 제안했다. 또한 의학회와 전공의 지도교수들은 'E-포트폴리오'로 체계적인 학습관리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난해 일어난 전공의 음주 진료, K대 D의료원의 근무기록 조작 등 여러 전공의 사태를 봤을 때 '책임지도전문의'제도부터 시행해야 한다는 대안도 나왔다.

이러한 제도들은 무엇인지, 또 이들이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신년을 맞아 짚어봤다.

전공의협의회 “호스피탈리스트 도입하자”
환자·보호자와 소통 유리… 의료과실 발생도 낮아

정부에서 수련환경개선안을 만들었지만, 병원 대부분이 이를 지키지 않고 있자 전공의들 스스로 '호스피탈리스트(입원전담전문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실제 강원도 원주시 A대학병원에서 호스피탈리스트 고용을 직접적으로 요구하며 파업을 시행한 바 있으며, 뒤이어 대한전공의협의회도 이들 전공의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전협이 전공의 1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련규칙 표준안 개정 이후에도 여전히 근무시간이 동일하다고 응답한 전공의가 81.4%였고, 오히려 늘었다고 말한 전공의도 8.9%에 달했다.

또한 병원으로부터 수련현황표를 거짓으로 작성하라는 직접적 압력을 받은 전공의도 44.5%였고, 전공의 중 15%가 하루 2시간 수면으로 버티며, 36시간 이상 연속 근무하는 전공의도 40%였다.

대전협 이승우 부회장은 "복지부에서는 거짓으로 보고된 수련현황표를 토대로 잘 이뤄지고 있다는 발표까지 계획 중"이라며 "전공의들의 근무환경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점을 묵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공의들의 잘못된 수련환경으로 양질의 진료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결국 환자들만 피해를 보는 것"이라며 "개정안을 시행하기 위해선 추가 인력이 필요하며, 이를 관리, 감독하는 기구가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전협은 전문간호사 PA가 아닌 호스피탈리스트의 도입 및 고용을 촉구하고, 의·정협의에서 마련하기로 약속됐던 수련환경평가기구를 조속히 개설할 것을 요구했다. 대전협 송명제 회장은 "전공의도 국민이다. 이제 전공의도 인권이라는 단어에 부합해 환자와 함께 기뻐하는 날이 와야 한다"며 "수련환경 개선안이 실행되기 위해 정부에서 호스피탈리스트 고용을 도와야 한다"고 거듭 제안했다.

미국에서도 호스피탈리스트제도 효과를 입증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하버드의과대학 연구팀이 호스피탈리스트 모델에서 진료 연속성 단절로 인해 의료과실(malpractice)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연구한 결과가 'Journal Hospital Medicin' 12월호에 게재됐다. 지난 1997년부터 2011년까지 보험사에 접수된 5만 2000여 건의 의료과실 신고건을 분석한 결과, 호스피탈리스트의 의료과실 신고 건은 100명 당 연간 0.52건에 불과했다.

반면 내과 전문의는 1.91건, 응급의학과 전문의 3.50건, 외과 전문의 4.79건, 산과 및 산부인과 전문의 5.56건으로 호스피탈리스트의 의료과실 신고 건보다 높게 나타났다. 호스피탈리스트의 의료과실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이유는 응급실이나 외래에서 진단을 받은 후 입원하기 때문에 진단을 놓칠 가능성이 적었기 때문이다.

또 호스피탈리스트의 경우 임상 경험이나 병원 시스템의 이해도가 높아 환자에게 제공하는 진료의 질적 수준이 높고, 입원기간 중 환자 및 보호자와 계속 대면하기 때문에 상호관계가 충분히 형성돼 과실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됐다. 다만 추가 인력에 대한 확보는 전공의가 아닌 병원 운영비에서 충당할 부분이므로, 병원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도입자체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한 전공의는 "결국 재정이 문제며, 복지부에서 강제 시행을 하기 전까지는 병원들은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해당 제도 도입을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재정적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정부가 호스피탈리스트에 관심을 갖고 수가를 책정한다고 했을 때 우리나라 의사들은 대부분 자기 환자가 된 사람을 끝까지 케어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정착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학회, E포트폴리오 수련 평가 시행 추진
교육·진료·수술·시험 등 수련 상황 실시간 입력
전공의 성취 정도 쉽게 파악…초기 비용 정부 투자 관건

현재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서 전공의 수련환경 평가를 위해 E포트폴리오를 사용 중이며, 이는 환자진료나 수술 참여, 연차별 시험결과, 교육 및 학회 참여, 환자 상담기록, 술기교육 이수여부 등을 전공의 개개인이 기록하는 수련 상황판이다.

이는 웹기반의 전산프로그램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입력할 수 있으며, 전공의의 성취정도와 평가가 용이하고 수련목표 달성 성취도에 따른 지도가 쉽다. 영국에서는 전공의 뿐 아니라 의대생들에게도 이를 적용하고 있으며, 지도전문의도 전산에 교육 내용을 입력토록 하고 있다. 간호사, 조산원, 약사 등의 교육에서도 활용 중이다.

일부 전공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수들은 현재의 전공의 수련환경 문제를 없애고, 체계적 교육을 위해 이를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한의학회 김재중 수련교육이사는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면서 "초기에 개발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 정부의 투자를 이끌어내야 한다"며 "양질의 전문의를 만든다는 목표로 각 학회들이 정부에 이를 설득하자"고 말했다. 이어 "운영비 조달은 학회는 물론 영국처럼 일부는 전공의가 부담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며 "운영에서도 영국처럼 실시간으로 이를 작성하고, 바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의학회는 내년부터 환자증례, 학술활동, 교육사항, 평가내용, 상담내용, 관련 자료를 포함한 '전체 프로그램'을 개발한 후 각 학회의 특성을 담은 툴을 개발토록 전달할 예정이다. 이후 포트폴리오 내용과 웹 평가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개발된 시스템을 일부 진료과들에 시범적용 한 후 문제점을 개선하는 과정을 거칠 계획이다.

이르면 오는 2017년부터 적용가능한 학회부터 신입 전공의들에게 E포트폴리오 적용을 시작하고, 이어 전체 전문학회 및 세부, 분과 전문의 제도에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양질의 전문의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하다. 학회의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므로 병원, 전문의, 전공의의 의지와 노력, 그리고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선준비 후시행을 기치로 수련환경을 개선하자"고 당부했다.

E포트폴리오 도입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이 많았으나, 여러 가지 제약이 많다는 우려도 나왔다.

서울의대 박완범 교수는 "내과에서는 이미 온라인 전공의 기록이 시행 중이다. 전공의 인적사항, 수련기록, 퇴원환자기록, 외부 학술회의 참석 기록, 발표논문기록, 타과 파견근무, 최종 전공의 기록 현황을 보면 E포트폴리오와 비슷하다"고 밝혔다.

다만 "실시간 입력이 아니라 1년치를 몰아서 작성하고, 전문의시험을 위한 형식적 작업에 불과하다. 과장의 형식적 승인과 피드백 과정이 없는 등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E포트폴리오도 만약 실시간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이처럼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대한내과학회 엄중식 수련부위원장 역시 "실시간으로 입력해야 하는 것은 전공의들의 업무를 가중시킬 가능성이 있다"면서 "병원마다 전공의 수가 수백명씩 차이가 나는 만큼, 우선 전공의 수 상한제를 마련하고 해당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입 전 지도전문의 자질관리와 E포트폴리오 활용 교육이 필수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엄 수련부위원장은 "이를 해결하려면 지도전문의 역할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의대 임인석 교수(소아과학회 교육이사)도 지도전문의의 자질에 대해 동의하면서 "교수들이 교육에 상당부분 할애해도 병원이나 학회에서 보상이 없다"며 "이 부분의 보상, 평정 인정 등의 지원이나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도입은 찬성하지만 '돈'이 문제다. 웹시스템 마련부터 운영까지 재정안을 먼저 짜야 한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정재혁 사무관은 "전공의 수련환경, 전문의 시험방식 변경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한번의 시험으로 판단되는 것은 매우 문제다. 4년간 전공의 평가 과정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도록 제도를 개선해 전문의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전문의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수련의 질 향상과 평가가 필요하다면서, "책임지도전문의 등 단계적 수련을 책임질 수 있는 시스템 마련하고, E포트폴리오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법을 바꾸기 위해 대화와 논의를 해야 하며, 환자, 학부형, 일반 국민의 설득이 필요하다"면서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비용지급 문제에 대해서는 "전공의 질 평가에 대해 복지부에서 일부분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예산을 많이 책정할 수 없지만, 최소한이라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스승이 제도·법보다 더 큰 문제, 역량 갖춘 지도전문의 먼저 키우자
해당 전문과목 지도경력 5년 이상…1인 담당 전공의 20명 넘지 않아야

지난해 일어난 전공의 수련환경 문제를 들여다 보면 무엇보다 지도전문의로부터 비롯된 문제가 많았다. 궁극적으로 수련을 받는 피교육자 입장에서는 '지도전문의'의 태도 변화가 절실하다는 입장. 호스피탈리스트 채용이나 E포트폴리오 도입 등 아무리 여러 제도와 법을 바꾸더라도 지도전문의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주장이다.

해외에서는 진료보다는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과 질 관리, 교육 등을 총괄하는 책임지도전문의가 활성화돼 있다. 미국은 수련프로그램의 진행을 총괄하는 권위있는 프로그램 디렉터가 있으며, 직임과 프로그램의 안정성을 위해 충분한 기간 진료가 아닌 교육에만 매진해도 직위를 보장하고 있다.

전공의의 관리, 감독은 물론, 전공의 평가 및 피드백, 당직과 근무시간·근무환경 조정 등 각종 정책과 절차를 조정하는 일도 맡는다.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든 기관의 임상적인 교육의 질도 관리한다. 영국에서도 역시 프로그램 퍼스널이라는 지도전문의가 있으며, 전공의의 교육 목표가 달성될 수 있도록 이들을 지도하는 역할을 한다.

1~4명의 전공의를 맡아 이들의 개별적 발전과 업적을 감독·보고하며, 프로그램의 준비, 운영, 감독 등의 적합성을 확인하는 일을 한다. 호주에도 지도전문의가 존재하며, 병원의 수련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책임을 지고 연 2회 전공의를 평가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도전문의가 있고 이들을 총괄하는 전문의(해당과의 과장 정도 직위)가 있지만, 진료와 논문에 쫓겨 전공의 교육에 매진할 수 없는 상황.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지도전문의가 추가근무를 강제하고, 근무일지나 진료기록부 조작 등을 지시하는 등의 문제가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적절한 역량을 갖춘 지도전문의 수를 확보하고, 지도전문의 수에 맞게 전공의 정원을 배정하는 제도가 우선 도입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톨릭의대 박시내 교수(대한의학회 수련위원)는 "질적 향상을 위한 지도전문의 체계를 구축한 후, 멘토나 책임지도전문의 제도 등을 도입해야 한다"면서 "지도에 적합한 전문의를 배출할 수 있도록 대한의학회에서도 역량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책임지도 전문의의 자격은 해당 전문과목의 지도전문의 경력이 5년 이상된 자로, 수련기관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하는 교수로 제한된다. 또한 1인당 담당하는 전공의의 수를 20명을 넘지 않도록 하고, 수련프로그램의 크기가 커서 20명을 초과할 경우 부책임 지도 전문의를 따로 두도록 해야 한다. 부책임 지도전문의 역시 해당 전문과목 지도전문의 경력이 5년 이상돼도록 규정했다.

책임지도전문의는 근무환경 관리, 급여·안전·출산 등 복지부분에 대한 프로그램 절차를 시행하고, 과도한 업무나 피로를 완화할 수 있도록 제어해야 한다. 전반적인 전공의 수련 지도는 물론 전공의들의 인성도 평가해야 하며, 임상 경험이나 학문활동에 대한 리뷰도 해야 한다.

박 교수는 "지도전문의에 대한 수련병원의 충분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전공의 교육에 사명을 가진 만큼 진료활동을 축소해줘야 한다"면서 "이들이 투자할 시간과 노력에 대해서는 병원과 학회 뿐 아니라 국가에서도 적절한 보상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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