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의대 박정수 교수, '갑상선암 검진권고안' 조목조목 비판

"증상이 없으면 검진을 하지 말라니, 이것이 과연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에서 국민에게 할 소리인가? 조기검진을 통해 건강한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권리이지 국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갑상선 수술 분야의 권위자로 꼽히는 연세의대 박정수 교수(강남세브란스병원)는 최근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갑상선암 검진권고안(초안)'에 대해 "과잉수술이나 과잉치료에 대해서야 국가적 차원에서 어느 정도 제제를 가하거나 기준을 제시할 수 있겠지만 애초에 검진권고안이라는 시작부터가 잘못됐다. 포커스가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달 14일 국가암정보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무증상 성인에서 초음파를 이용한 갑상선암 선별 검사는 권고하거나 반대할 만한 의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하여 일상적으로 권고하지는 않는다. 다만 수검자가 갑상선암 검진을 원하는 경우 검진의 이득과 위해에 대해 적절한 정보를 제공한 후 검진을 실시할 수 있다'는 내용의 검진권고안을 공개하면서 박 교수를 비롯 대한갑상선내분비외과학회 등 유관 학회와 갑상선암 전문의들 사이에서는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다.
보건복지부와 국립암센터는 완성된 초안 보고서에 대해 9월 한 달 동안 유관 학회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10월 초까지는 최종안을 확정짓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박 교수는 "정부의 검진권고안 초안 공개는 성급했다"며 "정말 갑상선암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할 생각이었다면 발표 이전에 의견을 수렴하는게 먼저였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갑상선암 검진 제정위원회라는 명목 하에 가정의학과, 예방의학과, 갑상선학회 대표들을 참여시키긴 했지만 결국에는 국가기관 단독으로 추진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구색맞추기에 불과했다는 것.

권고안의 내용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무증상 성인에서 초음파를 이용한 갑상선암의 선별검사는 권고하거나 반대할 만한 의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해놓고 '일상적으로 권고하지는 않는다'라니 앞뒤 자체가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납득할 만한 근거자료 없이 억지로 끼워맞추다보니 이런 기상천외한 권고안이 나오게 된 것 아니겠냐고.
'무증상 일반인'이란 대목도 문제다.
갑상선암이란 원래 증상이 없다. 미국 국립종합암네트워크(NCCN) 보고에 따르면 전체 갑상선암의 50%는 건강검진이나 다른 영상진단 또는 목의 다른 수술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된 것이고, 나머지 50%는 증상이 없는 결절로 발견된 것이라고 했다(J Natl Compr Canc Netw. 2010;8:1228-1274).
갑상선암으로 증상이 있으려면 암이 이미 커져서 갑상선 주위에 있는 장기를 침입 또는 압박할 때로 부위에 따라 목에 뭔가 매달려 있는 느낌이나 숨이 차다든지, 목소리가 변하는 등의 증상을 호소하게 된다. 암의 크기가 작아도 위치가 기도, 식도, 성대신경, 갑상선피막 근처라면 이들 장기가 침범을 당해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반대로 폐까지 전이됐다 하더라도 환자 자신은 증상을 못 느껴 늦게 발견되는 수도 있다.
박 교수는 "증상이라는 것은 워낙 주관적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차이가 큰 데다 증상이 생겼을 때는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완치가 어렵고, 치료할 때 어려운 점이 많다"며 "몸 안에 암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덮어뒀다가 나빠지면 그 때 가서 치료하라는 말과 뭐가 다르냐"고 반문했다.
다음으로는 '검진의 위해'란 부분을 짚었다.
권고안에는 '수검자가 갑상선암 검진을 원하는 경우 검진의 이득과 위해에 대해 적절한 정보를 제공한 후 검진을 실시할 수 있다'고 돼있는데, 검진 그 자체로 어떻게 위해성이 있을 수 있냐며 이는 검진을 하면 수술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고 협박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지적대로 권고안에서 잠재적 위해로 언급된 '드물긴 하지만 지속적인 목소리 변화를 겪을 수 있으며(0.2~2.1%), 갑상선전절제술을 시행하는 경우 평생 갑상선 호르몬 보충제를 복용해야 하고 부갑상선 기능저하로 인해 지속적인 칼슘제 복용이 필요한 경우(0.3~2.9%)도 있다'는 표현은 검진이 아닌 수술을 고려 중인 환자에게 필요한 설명이다. 자동차를 타고 볼일을 보러 나가면 교통사고가 날 수 있으니 아예 차를 몰고 나오지 말라는 소리와 똑같은 소리라고 비유했다.
박 교수는 "건강검진이라는 것은 본래 병으로 인한 증상이 없을 때 실시해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고, 더구나 암은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해야 완치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라며 "그런데 유독 갑상선암에 대해서만 그럴 필요가 없다고 일부 비갑상선 전문의사들과 국가기관이 주장하고 있으니 이대로 두면 영국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영국은 사회주의 의료체제로 조기발견이라는 개념이 없는 나라다. 환자가 증상이 있어야 병원을 찾아오기 때문에 갑상선암으로 1년 안에 20명이 죽고, 5년 생존율이 여성에서 79%, 남성에서 75% 정도에 불과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조기치료 시 10년 생존율이 99%에 육박하지만 현행 검진권고안 대로라면 우리나라도 곧 영국을 따라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해야 하는 도의적인 책임과 초대 대한갑상선학회 회장된 자격으로 '바지사장 노릇이나 하는 하수인 자리에서 당장 발을 빼라'고 하고 싶지만 복지부에서는 학회의 의견과는 별개로 앞서 발표된 내용과 같이 권고안을 밀고 나갈 것이라며 "진단에 관해서는 이제 발을 빼겠다. 과잉진단이 아닌 과잉치료를 막자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전 세계적으로 갑상선암 치료 흐름도 무조건 전절제술이나 일률적인 방식으로 수술하지 말고 환자에 따라 맞춤형 치료를 하자는 방향으로 바뀌는 추세"라며 "그동안 일부 병원에서 과도하게 수술을 해온 점은 어느 정도 인정하는 만큼, 1㎝ 미만 크기의 작은 암에 대해서는 당장 수술하지 말고 지켜보되 가능한 조기에 발견함으로써 수술 범위와 이후 약물치료를 최소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