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수련의 질, 환자안전에 도움... 정부의 의지와 투자에 달렸다

▲ 호스피탈리스트제도를 도입하면 수련의 질이 높아질 것이란 의견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계없음>

대학병원의 1~2년차 전공의들은 슈퍼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일을 한다. 외래진료 보조에서부터 병동 환자 진료, 중환자실에서도 환자를 봐야 한다. 응급실 콜에 언제든지 뛰어갈 수 있도록 대기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에 병원 스텝들이 지시한 일도 해야 하고, 3~4년차 선배의사들의 지시도 빠짐없이 처리해야 한다.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상황이다.

밤에는 병동이나 중환자실 당직도 서야 하는데 이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다. 1~2년차의 경력으로 환자를 상태를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짧은 경력으로 혹시 잘못 오더를 내리지 않을까 마음을 졸여야 할 때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마음 놓고 자신의 판단이 맞는지 틀린지에 대한 생각을 자문할 선배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야간에 중요하지 않은 일로 선배의사를 병동이나 중환자실로 콜 했다가는 뒷감당을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 되면서 전공의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쳐가고,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안전은 위협받는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전공의 수련제도의 허점을 메우기 위한 대안으로 호스피탈리스트(Hospitalist)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호스피탈리스트란?

호스피탈리스트란 미국에서 약 10년 전에 도입된 제도로 입원한 환자를 주로 담당하는 내과전문의를 말한다. 현재 미국에서 활동 중인 호스피탈리스트는 3만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 없는 호스피탈리스트를 파악하려면 미국의 의료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은 내과전문의를 딴 후 일반내과전문의(general internist)와 호스피탈리스트, 분과전문의(subspecialist) 등으로 구분한다. 일반내과전문의는 외래환자를 주로 진료하고, 호스피탈리스트는 입원환자의 주치의 역할을, 분과전문의는 세부전문과목별로 자문 역할을 한다. 응급실에서도 환자가 오면 응급의학전문의가 우선 진료를 하고 이후 입원이 필요하면 호스피탈리스트가 접촉을 한다.

미국에서 호스피탈리스트가 본격 도입된 이유는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과 비슷한 조건에서다. 1983년부터 미국 메디케어에 포괄수가제 도입이 확대되면서 병원들은 재원기간을 줄여야 했기 때문에 외래환자를 담당하는 의사와 입원환자를 구분했다.

또 환자안전의 목소리가 커졌고, 응급의료법이 연방법으로 실시되면서 세부전문의가 당직하기보다는 호스피탈리스트가 통합적으로 환자를 보는 역할을 하게 됐다. 전공의 근무시간을 주당 80시간으로 제한한 것도 호스피탈리스트가 빠르게 자리 잡은 요인으로 분석된다.

수련의 질 확 좋아질 것

호스피탈리스트제도가 도입되면 전공의들의 수련의 질이 눈에 띄게 좋아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현재 부실한 전공의 수련제도의 빈틈을 충분히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의대 김대중 교수는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전공의들이 너무 바쁘다. 그래서 윗년차들이 아랫년차를 제대로 교육 시키지 못한다"며 "호스피탈리스트가 있어 병동에 상주해 전공의 교육을 담당하면 수련의 질이 높아지고 더불어 환자 진료의 수준도 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전공의가 지나치게 많은 당직을 서지 않게 되고 휴식을 충분히 취하면 정신상태에 따라 생길 수 있는 문제(사고)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환자 안전도 수련환경이 좋아지면서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대 허대석 교수는 환자안전법 제정이 진행 중이지만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다. 환자안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의료인력, 응급환자 치료 등인데 현재의 환자안전법에는 병원에 위원회 만드는 것들이 주가 되는 등 탁상행정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의 자격을 따고도 활용하지 못하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게 허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많은 전문의가 자신의 전문의 자격증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개원을 하고 있다. 의료계 내부의 엄청난 낭비다"며 "문제는 배출된 전문의가 많은데 대학병원 등 대형병원에서는 의사가 부족하다. 호스피탈리스트는 이러한 부분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호스피탈리스트에 대한 전공의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다. 한 전공의는 "생기면 좋을 것 같다. 현재의 업무가 줄고, 전공의가 아직 할 수 없는 일등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추후 일자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긍정적"이라며 "나쁘게 보거나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전공의는 거의 없다. 일이 워낙 과도하기 때문에 업무가 분담되더라도 자신의 직위가 없어지거나 업무나 교육을 빼앗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모든 제도는 어떤 식으로 운영하는지가 관건이다. 단순히 전문의가 보라고 강요해서는 절대로 나아지지 않는다. 전공의만 부려먹는 악순환이 계속될 뿐"이라며 "전공의들의 과도한 업무가 호스피탈리스트 도입으로 줄면 전공의들이 보다 여유로워지고, PA라는 잘못된 제도도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공의들은 보건복지부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만 하지 말고 의료의 질이나 환자안전 등을 보완하려면 호스피탈리스트가 적절한 제도인만큼 도입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병원 경영진도 지금은 반대하고 있지만 정부가 적정수가를 보장한다면 안 할 이유가 없다며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호스피탈리스트 얼마나 필요할까?

여러 장점이 있음에도 호스피탈리스트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는 것은 정부가 적극적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거부하는 공무원 조직의 생리상 찬반논란이 예상되고 또 비용에 대한 부담도 져야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정부는 의료계 어떤 사항이든지 재정이 부족해 수가를 책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돈이 없는 것이 아니고 관심이 없다"며 "현재 의료비는 GDP 대비 7% 정도를 쓰고 있다. 정부는 고가약, 고가항암제, 고가항생제 등을 급여화 해 주고 있다. 이 돈은 모두 다국적제약사 주머니로 들어가고 있다. 고가약 정책만 바꿔도 충분하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 호스피탈리스트제도를 국립대병원 중심으로 시범사업을 해보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호스피탈리스트에 관심을 갖고 수가를 책정한다고 했을 때 제도, 문화 등 의료계가 풀어야 할 문제도 산적해 있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대부분 자기 환자가 된 사람을 끝까지 케어하고 싶어 한다. 다른 의사에게 보이는 것조차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런데 호스피탈리스트제도가 도입되면 이런 관습을 깨야 하는 어려운 문제가 있다.

호스피탈리스트가 당직을 전제로 하는 제도라 이 문제 또한 호락호락 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수련병원에서 3년차 정도 되면 당직을 서지 않는다. 1~2년차 때 당직을 서고, 위로 갈수록 당직은 남의 일이 된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전문의가 당직을 서야 하는 호스피탈리스트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생기는 것이다.

허대석 교수는 "미국은 호스피탈리스트들이 4인 1조로 당직근무를 시키고, 3인이 근무하고 나머지 1명은 완전히 쉬게 해 준다. 한달 정도를 푹 쉴 수 있도록 하는 배려도 있다"며 "월급도 다른 근무에 비해 많이 책정하는 등 나이 들어서도 당직을 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고려를 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호스피탈리스트를 하려는 수요는 충분할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현재 개원가가 굉장히 어렵다. 충분한 보상 등이 확보된다면 호스피탈리스트를 하려는 개원의들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호스피탈리스트에 대한 수요와 비용 측정 등이 쟁점이 될 수 있다. 김대중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호스피탈리스트에 대한 경험이 없어 내과에서 몇 명의 호스피탈리스트가 필요할지 추측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급여를 얼마로 정해야 할지도 논쟁거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대학병원 조교수들의 연봉이 1억원도 안 되는 병원이 많다. 그렇다면 1억원 정도 준다고 가정하고 교대근무를 고려하면 5~10명 필요할 것"이라며 "중환을 많이 보는 과 중심으로 호스피탈리스트를 도입하면 병원당 40~50억원 정도면 해볼 수 있다. 40개 대학병원이라면 2000억원이라는 큰 돈"이라고 우려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미국의 호스피탈리스트는 낮근무, 밤근무 등 근무형태에 다르지만 1억5000천에서 2억 정도의 연봉을 받고 있다. 이를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도 1억~1억5000천만원 정도가 적당하지 않겠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국립대병원에서 먼저 시범사업 해보자
정부도 호스피탈리스트에 대해 전혀 무관심한 상태는 아니다. 지난 5월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에 따른 대학병원의 과제' 심포지엄에서 보건복지부 권덕철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전문의 중심의 의료제도를 1차의료와 전문의제도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또 "수련환경 개선에 따른 대체인력을 논의하고 있고 또 비용 보상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며 "호스피탈리스트제도는 3년을 수련해야 하는 등 전문의제도 개편과 입원전담의 제도가 필요한 만큼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공의 수련에도 좋고, 환자안전의 질을 확보할 수 있는 등 좋은 제도라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전문가들은 시범사업이라도 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주의대 김대중 교수는 서울대병원이나 국립대병원에서 1년 정도 운영해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호스피탈리스트가 장점이 많기 때문에 시범적인 운영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며 "국립대병원 중심으로 서울대, 충남대, 부산대 아니면 전남대, 몇 개 병원에서 우선 해보고 확대하면 된다. 만일 형평성 문제가 있다면 사립대병원도 몇 개 참여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호스피탈리스트에 대한 논의를 진척시키려면 의사는 의사대로, 환자는 환자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목소리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 교수는 "이제 이해당사자들이 차분하게 둘러앉아 어떤 것이 과연 국민과 의료계 전체의 이익을 위해 올바른 것인지 큰 틀에서 바라봐야 하는 시점이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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