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장애 진단명 안쓰고 세부질환 구분

 

 

[DSM-5 개정1년 특집] 미국정신의학회(APA)의 정신질환 진단과 통계 편람 5판(DSM-5)이 개정된 지도 어느 덧 1년이 지났다.
5판의 주요변화는 기분장애의 진단 범주가 세분화 됐고 유아기·소아기·청소년기에 처음 진단되는 장애가 신경학적 측면을 감안한 'Neurodevelopmental disorder'라는 명칭으로 변경돼 정신건강전문의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인터넷이나 게임 중독처럼 아직 정식 진단명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심각하게 주의가 요망된다는 새로운 증상들을 따로 모아 구성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질환의 특성상 무수한 증상들이 한정된 진단명으로 수정되면서 불명확했던 치료 전략의 적극성을 높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완화된 진단기준과 광범위한 세부증상이 과잉진단과 처방을 유도할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에 변화의 폭이 가장 컸던 기분장애와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질환을 분석하고 전문가를 통해 DSM-5 개정판의 의의와 국내 임상에 가져다 준 특별한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신경학적 측면 강화하고 진단기준 엄격
DSM-4보다 항목별 기준 까다로워

DSM-5에서는 이전 DSM-4와 달리 신경학적 측면을 고려한 'Neurodevelopmental disorder'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겼다. 여기에는 자폐증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ASD), 학습장애(specific learning disorder), 뚜렛 증후군(tourette's motor disorder) 등이 있다. 특히 진보된 개념이 많아 긍정적인 측면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자폐증 진단기준도 거의 20년 만에 수정됐다. DSM-4에서는 심리장애를 17가지로 구분지었는데 이 중 ASD는 자폐증, 아스퍼거 증후군, 비전형적 자폐증이라는 개별 진단명을 사용해왔다. 특히 ASD는 전반적 발달 장애에 포함돼 하나의 질환 범주로 간주했다.

이와 반대로 DSM-5는 자폐증, 아스퍼거 증후군, 비전형적 자폐증이라고 개별 분류하지 않고 ASD라는 하나의 진단명으로 통합시켰다.

더불어 사회적 소통장애라는 카테고리를 추가해 대인관계가 서툴고 남의 표정 및 몸동작의 의미를 읽지 못하는 증상을 포함했다. 이를 두고 임상가들은 이미 비전형성전반적발달장애(PDD-NOS)로 진단된 소아가 이 진단명에 정확하게 맞을 것으로 보고 있다.

DSM-5 개정판에서는 ASD에 충족되는 기준도 엄격해졌다. DSM-4에서는 소아가 12개 행동 중 6개 이상에 해당할 경우 자폐증으로 진단했다면, DSM-5에서는 항목별 일정기준을 충족시켜야 하기에 다소 까다로워졌다. 또 ASD 카테고리에 3세 이전에 나타나는 증상들을 적용했다. 여기에는 대화가 없거나 또는 적거나, 사회성이 빈약한 세 가지 형태의 소통장애와 팔을 퍼덕거리고 발끝으로 걷는 것을 포함한 두 가지 이상의 반복행동, 이상한 것에 관심을 두는 행동 등이 있다.

ASD 카테고리 내에서는 중증도에 따라 세분화됐다. 중증도는 사회적 소통의 어려움, 관심영역의 제한, 반복적인 행동의 정도로 인해 개인이 얼마만큼의 지지가 필요한지에 따라서 급수가 정해진다. 다시 말해 ASD를 똑같이 진단받았다 하더라도 중증도에 따라서 1∼3단계로 나뉘는 것이다.

미국정신의학회(APA)는 진단명을 하나로 통일한 이유로 과거 진단법이 부정확했고 자폐증은 공통된 행동 이상으로 정의되기 때문에 중증도로 구별해야 한다는 점을 피력했다.

APA는 "환자 한 명을 두고 의사들이 다른 진단명을 내릴 뿐만 아니라 같은 증상을 보여도 진단명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면서 "특히 자폐증과 유사질환의 진단 기준이 모호해 오히려 자폐증 환자만 양산, 소아 100명 중 1명이 자폐증 진단을 받았다"고 말해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아스퍼거 증후군과 비전형적 자폐증을 ASD에 완전히 포함시켰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이미 아스퍼거 증후군이나 비전형적 자폐증 진단을 받은 상당수에게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APA는 "아스퍼거 증후군 아이들은 독특한 정보를 포함한 지식수준이 높은 반면 사회성은 떨어진다"면서 "PDD-NOS도 증상이 뚜렷하지 않아 가벼운 자폐증을 보이는 아이들이 이러한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월경 전 증후군·분열적 기분조절장애 진단 추가
치매·기억상실장애 주요 신경인지장애에 포함
 

 

DSM-5에서 그다음으로 많은 변화를 보여준 진단 범주는 단연 기분장애(Mood Disorders)다. DSM-4는 기분장애라는 큰 범주 안에 기분삽화, 우울장애, 양극성장애, 기타 기분장애, 가장 최근의 기분삽화를 기술하는 세부진단으로 구분했다.

반면 DSM-5는 양극성 및 관련장애(bipolar and related disorders)와 우울장애(depressive disorders)로 분리해 기분장애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게 됐다. 또 기분삽화에서 혼재성 삽화(mixed episode)를 삭제하고 대신 조증(mania)과 주요우울장애(major depressive disorder, MDD) 증상이 동시에 동반된 경우 혼재성 조증(manic episode with mixed feature)으로 진단하기를 권고했다.

또 양극성 및 관련장애로 지정돼 증상에 따라 다각적인 접근이 가능해졌다. 특히 조증과 경조증삽화(hypomanic episode)에서 활동성(activity)과 힘(energy)의 변화를 강조하고 진단에 물질이나 다른 의학적 상태의 생리적 효과(physiological effect)에 의한 감별사항을 추가한 것이 한몫을 했다.

양극성 및 관련 장애와 우울장애 진단에 가장 최근의 5분삽화를 기술하는 세부진단이 더해져 내용이 풍부해졌다. 예를 들면 DSM-4에서 '~ specifier'였던 것이 DSM-5에서는 'with ~'로 변경돼 진단을 내린 후에도 이를 좀 더 구체화 할 수 있게 됐고, 가장 최근의 기분삽화를 기술하는 세부진단의 분류가 더 늘었다.

불안양상을 보이는 경우에는 'with anxious distress에 specifier를 붙일 수 있다. 특히 'with anxious stress specifier로 진단받은 환자는 대개 자살 위험도가 높고 증상이 나타나는 기간이 길며 치료에 대한 반응 역시 부정적이다.

기분부전증(Dysthymia)은 DSM-4의 만성 주요우울장애와 기분부전증을 합친 지속성 우울장애(persistent depressive disorder, PDD)라는 명칭으로 변경됐다. DSM-5는 주요 우울장애가 2년 이상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자기에 대한 부적절감, 흥미 또는 즐거움 상실, 사회적 위축 등의 증상을 보이는 만성적인 우울감을 동반할 경우 PDD 진단명을 내리도록 했다.

주요우울장애에 애도반응(bereavement)도 포함됐다. DSM-4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후, 증상의 수와 기간이 주요 우울증 삽화의 진단 기준을 충족시킬지라도, 만약 이러한 증상이 2개월 이상 지속되지 않거나 현저한 기능장애, 무가치감에 대한 병적 집착, 자살 생각, 정신증적 증상 또는 정신운동 지체를 포함하지 않는다면, 이는 주요 우울증 삽화가 아닌 사별로 인한 반응으로 간주해야 한다"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DSM-5에서는 실제로 애도반응이 2달 내에 끝나는 것은 익히 드물며 정상반응이라 해도 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즉 상실에 의한 일반적인 반응이라는 이유로 이를 간과하고 치료를 소홀히 하게 되면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임상적 관심의 초점이 될 수 있는 기타 상태 부분에서도 애도반응과 관련한 내용을 별도로 기술했다.

또 눈여겨 볼점은 DSM-4에서 '앞으로의 연구를 위해 제안된 진단 기준'에 속했던 월경 전 증후군(premenstrual dysphoric disorder, PMDD)이 정식 진단으로 승격됐다는 점이다. 분열적 기분조절장애(disruptive mood dysregulation disorder, DMDD) 역시 추가됐는데, 이 진단은 기존에 '아동 양극성 장애'에 더 가까웠다.

산후 발병의 세부진단(postpartum onset specifier)은 'with peripartum onset'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임신 및 출산과 관련된 기분 문제에 대한 기간이 확정됐다. 수정된 가장 큰 이유로 산모의 50%가 출산 이전에 MDD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기타 기분장애에 대한 설명이 더 상세해졌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애도반응이 중증 우울증으로 진단받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슬픔·불면증·다른 일에 흥미를 잃거나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등은 정상적인 애도 반응에서 얼마든지 보일 수 있다는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기분장애 외에도 주요신경 인지장애에 치매와 기억상실장애가 포함됐고, 새롭게 경도 신경 인지장애가 추가됐다. APA는  경도 신경 인지장애가 정식 진단 분류에 속하면서 조기 발견율을 높일 뿐만 아니라 이들 증상을 가진 환자의 회복을 앞당기고, 치매로 발전하기 전 초기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장애는 아니지만 지속적인 연구를 추천하는 항목에는 △가벼운 정신증상 증후군 △단기간 경조증에서 우울삽화 지속적인 복합 △카페인사용장애 △태아기 알코올 노출 관련 신경행동장애 △비자살적 자해 등이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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