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대 신상원 내과교수 "환자 위한 의료없다" 발언…김종대 이사장 등 보험자 '공감'

"과잉진단과 치료로 '환자를 위한 의료'가 아닌 '의료를 위한 환자'가 만들어지고 있다. 의사들이 에스키모인에게 냉장고를 팔고 있는 것이다."
 

▲ 고려의대 신상원 교수.

27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장 정책세미나에서 고려의대 신상원 내과학교실 교수가 이같이 주장하며, "의료를 제어하지 못하면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 교수는 "21세기 현대의학이 많이 발전했지만, 이는 컴퓨터, 영상기기 등이 발전한 것이지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됐는지는 의문"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실제 지난 10여년간 갑상선암은 7배, 유방암 4배, 전립선암 4배 등 발병률(진단율)이 급증했으나, 사망률은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어 "현재 암세포 1cm는 물론 1mm까지도 발견하고, 암 뿐 아니라 모든 질병의 진단기준이 내려갔다"며 "일반인 누구에게라도 병명을 붙여 약 처방, 수술을 할 수 있게 됐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조기진단과 조기치료가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도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신 교수는 "21세기 의료는 과잉진단, 과잉치료를 빼고선 상상하기 어렵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환자를 위한 의료가 아닌, 의료를 위한 환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지금의 의료는 '에스키모에게 냉장고를 파는 행위'"라며 "의료가 대량 생산공장으로 변모했다. 의료컨베이어 벨트에서 정상인이 치료받고, 이로 인한 부작용으로 환자가 돼 또 치료받고, 이어 부작용으로 수술을 받는 등 불필요한 의료가 계속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10년간 갑상선 발병률과 사망률.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더라도 의사들은 계속 치료와 약처방을 권유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토로했다.

신 교수는 "만약 환자에게 치료 대신 식사와 운동에 대해 1시간 상담하면 원장이 '신 선생 약처방 안 하고 뭐해?'라고 지적한다"며 "수술을 많이 하고, 약 처방을 많이 해야 이익이 남는 구조가 문제"라고 전했다.

과잉진단, 과잉치료가 이뤄지는 현재의 의료를 "300키로로 달리는 자동차"라고 비유하며, "이를 제어하지 못하면 큰 재앙, 공허한 의료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건보공단 김종대 이사장은 "실제 임상입장에서 문제를 사실대로 말하기 어려웠을 텐데 용기 있는 발언을 해줬다"며 "앞으로 전문가들과 자리를 마련해 이를 논의하고, 의료전체 질서를 확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반인도 고혈압으로 진단…안 먹어도 될 약 먹어 문제만 양성"

 

이날 주제발표를 맡은 고려의대 안형식 예방의학교실 교수도 과진단· 과치료에 대해 문제제기를 이어갔다.

안 교수는 "과진단으로 정신적인 트라우마,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 등이 야기되고 있다. 그냥 두면 아무런 불편이나 사망을 야기하지 않는 증상들에 대해 불필요한 위해를 받게 되는 것"이라고 운을 뗐다.

특히 갑상선암, 유방암, 신장암, 간암, 흑색종, 전립선암 등에서 이러한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고, "이들 암은 과진단으로 발병률만 증가했을 뿐 치료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진의 편익은 치료에 좋은 결과를 주지 않고, 생존기간을 늘리는 데만 쓰고 있다"며 "진단 후 평균 생존 시간은 증가하지만 사망시간은 같으므로, 검진의 효과는 의문"이라고 판단했다.

▲ 고려의대 안형식 교수.

이러한 문제는 암뿐 아니라 골다공증, 대사증후군, 관절 및 척추질환 등에서 두드러진다고 밝혔다. 안 교수는 "질병기준의 수치가 낮아지면서, 고혈압 환자가 크게 늘어났다"며 "그럼에도 뇌경색 환자는 줄지 않고, 오히려 진료비만 급증했다"고 말했다.

고혈압 약을 예로 들며, "효과는 적고, 부작용은 상당히 많다. 혈당 컨트롤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무도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것은 모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경증의 환자들에게 약을 처방하게 되면, 병원은 물론 제약회사, 의료기기업체 등의 이익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환자 역시 적은 진료비로 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에 '필요성'을 따지지 않고 약을 먹는다는 것.

안 교수는 "이해당사자들이 많아 조심스럽지만, 지난 10여년간 과진단으로 의료체계가 확연히 바뀌었다"며 "앞으로 정부와 보험자 등에서 과진단에 대한 규모를 파악하고, 의료체계와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공단 정책연구원 정현진 보험급여연구실장은 공감하면서, 해당문제에 대해 체계적으로 규명하겠다고 언급했다. 

정 실장은 "어떤 경계부터 환자로 규정할지의 여부는 의료자원 배분에 영향을 미치므로 반드시 규명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를 범주화하는 학술활동을 지원하고, 전국민 건강보험DB를 통해 현상 파악에도 주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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