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현명하게 선택하기 캠페인

응급실에서 진료를 하다 보면 '이 검사가 반드시 필요할까'라고 고민하면서도 오류를 예방하거나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환자 상태가 순식간에 나빠지는 상황을 목격하거나 굳이 검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환자에게 설명한 후 실제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되면 '더 많은 게 더 좋다'라는 생각을 고수하게 된다. 응급실에 가볍게 머리를 다쳐오는 소아환자에게 CT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의료진이 CT검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할 때도, 보호자들은 강력하게 CT검사를 요구하고 “응급실에 온 이유가 CT검사를 하기 위해서”라고도 한다.

최근 미국에선 이런 경우와는 다르게 불필요한 검사를 줄이자는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다. '현명하게 선택하기 (Choosing Wisely)'라는 캠페인이다. '불필요한 검사로 발생되는 위해를 줄이고 비용을 줄이자'는 것이 근본적인 취지이다. 의료의 질에서는 'misuse (잘못된 사용)', 'underuse(과소한 사용)', ‘overuse (과도한 사용)’이 모두 문제가 되는데, 이 캠페인은 ‘과도한 사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의 높은 의료비나 의료비의 3분의 1이 불필요하게 사용됐다는 점을 보면 이런 캠페인이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캠페인의 주체는 정부기관이나 소비자단체가 아닌 미국내과학회가 설립한 ABIM Foundation이다. 지금까지 50여개 전문의학단체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인터마운틴헬스케어나 카이저 퍼머넌트 등의 의료전달체계 그룹들도 참여하고 있다. 전문의학단체들은 각각 상위 5개 정도의 ‘흔히 시행하는' 불필요한 검사와 상황을 열거하고 의료진에게 가능한 이들을 시행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http://www.choosingwisely.org/doctor-patient-lists/).

최근엔 ‘컨슈머리포트지’도 캠페인에 동참하면서 환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자료를 웹사이트에 올리고 있다 (http://www.consumerreports.org/cro/health/doctors-and-hospitals/choosing-wisely/index.htm). 의료보험을 확대하고 의료비용을 줄이려는 ‘오바마 케어’에서 캠페인은 더욱 주목받을 것으로 생각된다. 로버트우드재단은 이 캠페인이 더욱 확산되도록 작년부터 2015년까지 재정을 지원한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캠페인이 우리나라에서도 유효할지 의문이다. 미국의 전문의학회단체에서 권고하는 부분이 우리나라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학병원이나 개원가에서 선뜻 불필요한 검사를 줄이자는 캠페인을 벌일 수 있을까?
원가에 못 미치는 저수가체계에서 이것이 가능할까?
검사가 줄면 어디에서 줄어든 수익을 메울 수 있을까?
의료진이 검사를 하지않으려고 해도 환자들이 원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Choosing Wisely’ 캠페인대로 진료를 하려면 양심은 지킬 수 있겠지만 병원을 운영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캠페인의 권고를 무시하려니 의사로서의 자긍심과 양심이 상처를 받는다.

또한, 진료나 검사를 너무 싸게(?) 책정된 상황에서 공급자와 소비자의 ‘과도한 사용'을 조절하기는 극히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의료비용이 증가하고 있고 비용을 억제하려 상황이기 때문에 ‘과도한 사용'을 줄이려는 정책은 펼쳐질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미국의 경우는 전문의학단체가 주도적으로 이런 운동을 이끌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선 전문의학단체가 이런 운동을 이끌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정부가 나서고 의료계가 반발하는 사태가 벌어질까 걱정된다.

정부가 이런 정책을 주도하면, 위의 전문의학단체가 ‘참고자료’로 환자들에게 설명하고 결정하도록 한 권고문들이 ‘심사의 척도’로 뒤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Choosing Wisely 캠페인의 취지는 의료진과 환자들이 정말 특정 검사가 필요한지 고민하고 근거와 상황에 따라 결정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라고 한다. ‘더 많은게 더 좋다'라는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려고 하고 있고 전문의학단체들은 그 근거들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문의학단체들도 불필요하고 해가 될 수 있는 과도한 의료서비스의 사용을 막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는 그런 때가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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