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물어보고 쉬운 말로 ... 큰 목소리로 말하되 톤 높여선 안 돼

 

환자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병원 매뉴얼대로 '영혼' 없이 답하는 병원 직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병원이 노인환자라는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업무 매뉴얼대로 노인을 응대한다. 노인환자들이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병원 대기실에서 환자를 호출할 때 노인들은 빨리 답할 수 없다. 또 젊은 사람들처럼 재빠르게 움직일 수도 없다. 그런데 병원 직원은 빨리 오라며 재촉한다. 진료실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의사가 질병에 대해 설명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고, 물었던 걸 또 묻는다. 이때 의료진은 노인환자의 질문을 잘라먹는다. 

환자경험을 조사하는 GROW E&C 대표 최정윤 대표는 고령사회에서 병원이 준비해야 할 것은 병원의 서비스 효능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노인들의 떨어진 신체기능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라고 조언한다. 

최 대표는 "병원이 노인의 특성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노인이 되면 신체의 모든 능력이 저하된다. 빨리 설명하면 잘 알아듣지 못하고, 행동도 느리다"며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그 시간이 고통일 수 있다. 정신적으로도 집중이 잘 안 된다. 주의력과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설명한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김민의 교수(비뇨기과)도 노인과 대화할 때 노인의 특성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또 인내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 교수는 "노인환자에게 질문을 하면 즉각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 다음 질문이 짧아지고 목소리가 커진다. 노인의 특성을 이해하고,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질문하는 속도를 늦추고, 쉬운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며 "또 노인환자 진료는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고, 배려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 대표는 구체적 상황을 예로 들었다. 암환자와 대화할 때는 신뢰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고 완치를 얘기하기보다는 함께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즉 "○○○ 씨, 암입니다"라는 객관적 정보만 주지 말고 "함께 노력해 봅시다, 함께 싸워 봅시다, 우리가 함께 합니다" 등 힘이 되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 대표는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에게는 공감을 보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고통스런 시술을 받는 노인환자가 소리를 지르자 옆에 있던 한 전공의가 '너무 아프시죠. 저를 때리세요'라고 하는 것처럼 공감을 먼저 표현해야 한다"고 부연한다. 

전문가들은 병원에서 노인환자를 진료할 때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명확한 지시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세요"라고 할 때 진료실에 왔다고 하고 기다려야 하는지, 그냥 앉아 기다려야 하는지 등 정확히 일러줘야 한다는 것. 

또 노인환자와 대화할 때 큰 소리로 말하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최 대표는 "큰 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목소리 톤을 올리는 것과는 다르다. 톤을 올리면 짜증을 내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냉랭한 말투도 노인환자를 대할 때 주의해야 한다"며 "적극적인 경청도 중요하다. 노인환자가 말할 때 재진술, 반영, 명료화 등을 이용해 잘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배려하는 조직문화와 꾸준한 소통 교육

매일 수천명의 환자를 진료하는 병원에서 노인환자의 특성에 맞는 진료와 대화를 하기란 쉽지 않다. 의료진과 병원 직원들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9월 순천향대 부천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 395명을 대상으로 노인환자를 진료할 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조사했다.

이때 응답자 61%가 이해를 위한 반복적 설명이 가장 어려웠다고 답했다. 이어 29%가 환자의 증상과 무관한 대화, 18%가 느린 반응시간으로 인한 업무지연 등이라고 답했다. 또 노인과 대화할 때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은 48%였는데, 이 중 간호사가 50%를 차지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은 52%였고, 이 중 의사가 72%였다. 

또 노인환자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직원에게 필요한 것을 묻는 질문에 존중, 배려하는 직장문화조성이 36%로 가장 많았고, 노인환자 소통을 위한 지속적 직원교육 33%, 직원의 선천적 인성과 자질 25% 순이었다.  

노인환자와의 소통을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이 직장문화라는 응답에 병원은 조금 놀랐다고. 그래서 행복한 직장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설문조사를 진행한 김 교수는 "직원이 행복해야 노인환자 등과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행복한 직장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며 "직원들이 쉴 수 있는 행복정원 조성, 행복라운지 운영, 직원힐링프로젝트, 친절문화 마일리지제도 등을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병원 내에서 노인환자의 특성과 응대방식에 대한 직원교육, 봉사활동 참여, 노인유사 체험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며 "상급종합병원에서 시범사업 중인 15분 진료가 활성화되면 이 문제도 자연스럽게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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