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혁신 어려운 이유, 지표 적용 어렵고, 의사 참여 한계 ... 자기 분야 개선 통한 혁신 대안

 

많은 병원이 혁신을 외치지만 정작 혁신에 성공한 병원은 많지 않다. 그 이유로 병원에 혁신에 중요한 질지표 관리가 어렵고, 의사들이 혁신에 참여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때 병원에는 린 경영과 6시그마가 유행처럼 번졌던 때가 있었다. 린 경영은 전략적 관점에서 철저한 낭비를 제거하고 이를 통해 고객의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을 말한다. 6시그마란 백만개당 3~4개의 결함을 목표로 고객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특성치를 선정하고, 치명인자를 찾아 근원적으로 개선하는 경영기법이다.

현재 두 경영기법의 인기가 시들해진 상태다. 이론에서처럼 병원에 린경영이나 6시그마를 적용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질지표가 일반기업과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경영학에서 질관리는 질지표 관리하고 강조한다. 측정하지 않으면 관리할 수 없다, 측정하면 좋아진다, 지표 없는 프로세스는 없다 등은 지표관리를 강조하는 말들이다.

4일 열린 한국의료질향상학회에서 삼성서울병원 퀄리티혁신실 팀장을 역임한 성균관의대 이준행 교수(삼성서울병원 내과)는 임상질지표를 갖고 개발하려 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이준행 교수는 "6년 동안 퀄리티혁신실 팀장을 맡았는데, 당시 중증환자 지표를 만든 적이 있다. 그런데 암이라고 모두 중증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암이라도 중증이 아닐 수 있고, 중환자실 입원환자는 중환자인가라는 질문도 제기됐다"며 "지표란 합의된 정의에 근거해야 하는데, 정의조차 합의되지 않아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또 "병원 내에서 임상질지표 포스터를 만들어 공개하려고 했는데 의사들이 난리가 났다"며 솔직하게 병원에서 지표를 관리하는 것에 신념을 잃었다"고 말했다.    

의사 참여가 혁신의 성공 여부 갈라

병원 혁신의 성공 여부는 의료진의 참여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의사들은 병원 혁신 움직임에 참여할 수 없는 현실적인 제한이 있다고 호소한다.

분당서울대병원 경영혁신실 여상근 경영혁신팀장은 "현재의 의료 환경 자체가 의료혁신의 장애물이라 할 수 있다. 의사는 진짜 바쁘다. 진료도 해야 하고 논문도 써야 한다"며 "자신의 시간을 빼앗기면서 혁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의사는 많지 않다. 병원의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 이상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말한다.

한림대 응급의학과 이태헌 교수도 같은 의견이다. 병원에서 너무 많은 활동을 요구받아 진료 이외에 다른 것을 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교수는 "집에서 아들이 집에 들어오는 것이냐 나가는 것이냐고 물어볼 정도로 응급의학과 의사는 바쁘다"라며 "병원에서 혁신을 위한 과감한 투자를 하지 않으면 의료진의 참여를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행 교수는 미국 몇몇 병원은 의사가 혁신 활동에 참여하면 업무로 인정해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업무의 20% 정도를 이노베이션으로 정하고 이외의 진료 일정은 잡지 않는다는 것. 

"혁신이 어렵다면 자기분야 개선을"

많은 의료진이 혁신 운동에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혁신을 위한 대안으로 '자기 분야 개선'을 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부분의 병원이 혁신을 위해 혁신위원회를 구성하고, 새로운 경영기법을 도입하지만 실적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많지 않다는 게 이준행 교수의 생각이다. 구호가 아닌 좀 더 실질적인 혁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원장이 바뀔 때마다 혁신을 외친다. 이후 혁신위원회를 꾸리고 TF를 구성한다. 사실 TF를 만드는 것과 혁신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며 "의사가 자기 분야에서 문제가 있는 것을 지속적으로 개선을 하는 것이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혁신이라 본다. 거창한 것이 아니다"라고 꼬집는다.

소화기내과 전공인 이준행 교수는 영상의학과와 소화기내과와의 관계에서 CVR(Clinical Value Report)를 통한 혁신을 꾀하고 있다고 사례를 소개했다. CVR의 내용은 간단하다. 내시경을 하던 도중 의심되는 소견이 발견되면 이메일, 카톡, 전화 등 모든 수단을 이용해 알려달라는 호소다.  

이준행 교수는 "과거에는 환자에게 이상이 있을 때 화이트를 사용하거나 밑줄이나 강조 등을 통해 타 진료과 의사에게 전달할 수 있었지만 전자챠트를 사용하면서 이것이 불가능해졌다"며 "진료과 간 서로 간섭하자는 의미다. 착한 간섭을 통해 의사가 놓칠 수 있는 것을 예방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시경 교육과정을 개선하는 것도 혁신이라고 소개했다. 과거 내시경교육은 교육생들이 경험을 통해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사고도 많았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 교수는 "과거에는 넣어봐~로 대신했던 교육을 최근에는 3개월 동안 집중적인 교육을 시킨다"라며 "상세한 이론 교육을 하게 하고, Description 연습과 피드백, 시뮬레이션 트레이닝, 임상 관찰, 감독하 시술, 집담회 등으로 교육 과정을 개선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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