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홍재 분당차병원 종양내과 교수

▲ 분당차병원 종양내과 전홍재 교수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기자

암은 4대 중증질환의 하나에 포함될 정도로 위중한 질환이다. 특히 췌담도암은 처음 진단 시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고, 수술적 접근이 쉽지 않아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나 수술이 어려운 환자 중에서도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의 유기적 조합에 의해 수술 가능한 병기로 전환이 가능한 경우가 있다.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에서 췌담도암 치료 방향을 가능하면 여러 과 전문의가 모여 결정하는 다학제 진료를 권고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각 과의 전문의가 한자리에 모이려면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상에서는 어려운 일이지만 분당차병원 췌담도암 다학제 통합진료팀은 소화기내과, 외과, 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영상의학과 등의 전문의가 모여 이 같은 다학제 진료를 실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다학제 진료 시스템에서는 의사가 의사를 서로 설득하면서 최적의 치료지침을 찾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최상의 치료법을 도출할 수 있다"고 말하는 분당차병원 종양내과 전홍재 교수. 그를 만나 분당차병원의 췌담도암 다학제 진료팀이 가진 경쟁력과 지향점을 들어봤다.

- 다학제 진료시스템은 어떤 환자들을 대상으로 도입하나?

다학제는 각 과 선생님들이 한자리에 모여 치료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예전에도 의료진들이 모여 컨퍼런스를 했는데, 이 경우는 환자의 치료 예후를 놓고 토의하고 앞으로 주의할 점을 주로 이야기했다. 즉, 케이스리포트 같은 것이었다. 다학제 통합진료는 환자를 통해 지식을 얻겠다는 것이 아니라 최상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각 과에 따라 의견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한자리에 모여 논의해 보면 근거(evidence)가 있는 방향으로 의견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 의사가 의사를 설득하면서 최선의 방향을 도출할 수 있어 환자에게도 결국 최고의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 암은 중증질환이다. 한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지 않고 여러 명의 의견을 듣고 싶을 것이다.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다학제 시스템이다.

신규환자는 대부분 다학제를 하고 있다. 암 환자라면 누구라도 이런 혜택을 받는다. 가장 큰 문제는 의료진들이 한자리에 모여 환자 한 명을 위해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인데, 환자 치료를 위해 조금씩 더 노력하자는 데 동의했기 때문에 주 2회 정도 정기적으로 모이고 있다.

- 과거에도 협진이라는 시스템이 있었다. 다학제 시스템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내원한 환자를 위해 진료 후 소화기내과, 외과, 영상의학과 등에 협진을 요청했다. 그러나 각 과의 의견이 모두 같지 않을 텐데 그중 내가 고르면 그게 최선의 치료가 될까? 다학제 진료는 다 같이 모여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 있다. 영상의학과 설명을 시작으로 각 과에서 치료 의견을 낸다. 의미가 있고 적절하다는 치료방침이 결정된 후 치료를 하게 된다. 다양한 의견이 오가겠지만 하나의 의견으로 모아져 그 방향으로 가는 게 장점이다.

 

- 분당차병원에 다학제 진료시스템이 도입된 시기는 언제며 다른 병원과의 차별점이 있다면?

작년부터 췌담도암을 시작으로 유방암, 대장암, 폐암까지 진행하고 있다. 췌담도암은 처음 진단 시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고 담도의 구조적 특성상 수술적 접근이 쉽지 않다. 수술하더라도 재발이 많아 예후가 좋지 않은 암이기도 하다. 또 췌장암은 10~15%만 수술할 수 있고 나머지 환자들은 제대로 된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수술이 어려운 환자 중에서도 상당수 항암제와 방사선치료의 유기적 조합으로 수술 가능한 병기로 전환할 수 있다. 이런 환자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학제가 필요한 곳이 췌담도암이라고 생각한다. 췌담도암 환자들은 고령에다 경제적인 상황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고, 연고지 치료를 희망하는 환자들도 대다수다. 다학제를 하는 병원이 많지 않을뿐더러 메이저센터에서도 췌담도암은 다학제 진료를 하지 않는 곳이 많아 차병원이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 의료진이 여러 명이면, 주치의에 대한 의존도가 분산돼 환자가 불안해할 수도 있을 텐데?

주치의 제도는 장점이 많다. 사실 어떤 진료형태가 좋다 나쁘다를 말하긴 어렵지만, 조금 더 분업화해 가는 것이 세련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각 분야에서 최고의 치료를 받게 해줄 수 있고, 코디네이터가 있어 놓치는 부분이 없다. 진료회의에 참석한 의사들은 모두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환자라고 생각한다. 또 환자가 원하면 어떤 의료진이든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 환자 치료를 최우선으로 하기 위한 시스템이지만, 의료진 간 의견충돌이 없을 수 없다. 어떻게 조율하나?

사실 15분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환자의 경제적 상황, 합병증 등을 모두 고려해 논의한다. 이후 환자에게 치료옵션을 선택하게 할 수도 있고 의료진들이 옵션을 제시할 수 있다.

- 췌담도암 다학제 진료팀 구성원은?

소화기내과에서 내시경 진단을 하고, 수술은 외과, 항암치료는 종양내과, 방사선치료를 하는 방사선종양학과, 그리고 진단 및 필요한 시술을 제공하는 영상의학과, 코디테이터가 한 팀이다.

다학제 진료는 환자가 원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고 횟수 제한이 없다. 치료 후 암 사이즈가 줄어들거나 늘어나는 케이스가 있다. 영상 등을 리뷰해보고 논의돼야 하기 때문에 따로 추가조치가 필요 없을 때까지 다학제가 계속된다. 대면진료가 기본 원칙이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궁금한 부분에 대해서는 질문할 수 있게 한다. 한 환자당 20~30분씩 소요된다. 다학제 맞춤 진료실은 물론 필요한 장비와 코디네이터도 제공 등 병원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고 있다.

- 췌담도암 다학제 진료시스템의 지향점은?

모든 암 환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는 없지만, 만족한 치료를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다학제 진료가 지속가능성이 있는 이유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의사들의 노력을 느끼고 있고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다. 의사들도 환자를 치료하면서 만족감을 느끼기 쉽지 않은데 보람을 느낀다. 환자와 의사들이 모두 만족하니 결과도 좋은 편이다. 더불어 의사로서 다시 한 번 사명감도 되새길 수 있다. 궁극적으로 환자와 보호자, 의사들이 모두 만족하는 치료를 하는 것이 다학제 진료를 시행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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