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사도 간호사도 의사도 ‘불만족’ ... 정부는 강행 의지

 

간호지원사 1급 신설…간무협 발끈 “자존심 짓밟혔다”

간호사들도 싫고, 간호조무사들도 싫고, 심지어 의사들도 못마땅해하는 법안. 그야말로 의료계 대부분이 만족하지 않는 법안을 지난 8월 보건복지부가 제시했다. 전문대학 2년제 간호지원사 1급 신설을 포함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그것이다.

법안이 나오자 가장 극렬하게 반대 목소리를 낸 곳은 간호조무사들이다. 간호지원사란 명칭에 대한 거부반응을 순화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 표현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정부는 63만 간호조무사들의 직종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자긍성을 높일 수 있는 이름으로 변경하겠다고 했다"며 "그런데 '보조'와 '조무' 등 동일한 의미인 '지원사'로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우리들의 자존심을 밟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 간호조무사들은 오랫동안 간호조무사란 명칭대신 '간호실무사' 혹은 '실무간호사'를 요구해왔다. 그런데 여전히 간호지원사라니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간무협은 간호사로부터 지도감독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도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간호사에게 간호조무사에 대한 지도감독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곧 의원 등 작은 의료기관에 모두 간호사를 의무배치해야 한다는 얘기이고, 그렇게 되면 간호조무사는 업무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간협 “유휴 간호인력 활용할 생각은 왜 안하나”

간호조무사들과 대척점에 서 있는 간호사들도 정부 법안에 대해 불만이 많다. 간호사들도 이번 의료법 개정안은 간호보조인력을 간호의 주요 인력으로 만드는 개악이라고 비판을 가했다. 또 간호사, 간호지원사 1급, 간호지원사 2급으로 나누는 것은 직역 간 갈등을 조성할 것으로 우려했다.

▲ 간호인력개편안에 간무협은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간협은 정부가 의료기관 근무경력 5년 이상(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근무경력 1년 포함)이면 간호조무사를 1급 간호지원사 국가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환자의 안전을 담보로 한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또 정부가 현재의 심각한 간호인력난을 인력부족에서 찾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 대한간호협회는 정부가 간호인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간호인력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면허를 갖고 있는 간호사들이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간협은 "2013년 미국은 면허를 갖고 있는 간호사 320만명 중 82%가 활동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간호사 면허자 34만명 중 41%인 14만명만 활동하고 있다"며 "간호조무사를 간호지원사로 바꿀 것이 아니라 간호사들이 일할 수 있는 근무환경 개선과 적정수준의 임금이 보장돼야 한다"고 다른 해결책을 제시했다.

간협과 간무협은 매일 같이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날이 갈수록 더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다.

간협은 9일 "간호조무사협회는 의사협회를 대변하는 단체인가?"라는 다분히 감정 섞인 성명서를 발표했다. 간협은 "지난 2005년 간호법 제정안과 2007년 의료법 전면개정안에 모두 의협과 함께 반대 집회에 나섰던 간호조무사협회는 의사의 권익을 대변하는 단체인가, 아니면 간호조무사의 권익을 대변하는 단체인가"라고 지적했다.

“감독권은 의사에게”…의협은 관망세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들의 치열한 싸움에 대한의사협회는 관망세를 취하고 있다.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등에 대한 지도감독권은 의사가 갖고 있어야 한다는 성명서를 낸 이후 그 어떤 공식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섣불리 어느 한편에 섰다가는 쏟아지는 포화를 맞게 되기 때문에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의협의 한 관계자는 "곤란한 상황이다. 그래서 일단은 노코멘트다"며 말을 아꼈다.

“의원에서 인건비 상승 감당할 수 있을까”

논쟁에서 한발 떨어져 있다지만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의협의 처지다. 대부분 의원은 간호사보다 간호조무사를 채용한다. 그런데 이번에 발의된 의료법이 개정돼 간호조무사들이 1급 간호지원사 자격증을 갖게 되고, 또 전문대학을 졸업한 간호지원사들이 시장에 등장하면 원장들은 기존과 다른 상황을 맞게 될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해 개원가 원장들은 걱정이 앞선다는 반응이다.

서울에서 소아과를 운영하는 김 모 원장은 2년제 전문대학을 졸업한 간호지원사들이 배출되면 두 가지 측면이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그는 "간호학원을 졸업한 인력보다 전문대학을 졸업한 인력이 더 좋은 인력임에는 틀림없다"며 "더 나은 인력이 배출되는 것은 환자안전 등 많은 부분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 좋은 인력이 많다는 것은 의사들에게도 좋은 상황이지만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가 명쾌하게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는 것은 인건비 상승 때문이다.

그는 "간호조무사들이 이직과 전직이 많은 이유는 낮은 월급때문인 경우가 많다"라며 "간호지원사들이 전문대학을 나오면 지금과 같은 수준의 임금으로는 절대 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원장의 입장에서 저수가체계는 계속될 것이고, 간호지원사들의 임금이 올라가면 선택을 해야 한다. 두 명 쓰던 간호조무사를 1명으로 줄이는 등 좋은 인력이 시장에 있어도 의원급에서 채용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활의학과를 운영하는 한 개원의는 "현재의 간호인력체계에 큰 불만이 없다. 간호사가 필요한 분야는 간호사를, 그렇지 않은 분야는 간호조무사를 채용해 잘 운영하고 있다"며 "개원의들은 급여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간호지원사들이 전문대학을 나오고 시장에 긍정적인 파장을 불러올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간호등급제와 관련 없어 병협은 관심 미미

의협이 그나마 돌아가는 상황을 살피고 있지만 대한병원협회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강 건너 불구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병원협회 한 관계자는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지 않다. 내부 회의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았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들의 불협화음이 병원협회의 관심사에서 멀어진 이유는 단순해보인다. 간호조무사가 간호지원사로 변경되든 아님 그 무엇으로 바뀌어도 병원 수익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간호등급제 즉 병원의 수익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안이라는 얘기다.

병협의 한 관계자는 "간호등급제 시행 이후 간호사들이 상급종합병원으로 이탈하면서 병원들은 늘 간호사 부족에 허덕였다. 최근에는 포괄간호서비스가 시행되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며 "간호지원사 등의 문제에 관여할 여력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각계 논쟁에도 정부입장 변함 없을 듯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정부 모두의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의협의 한 관계자는 "정부는 분란만 일으키고 이 문제를 정리하지 못했다. 정부가 의료자원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문제를 더 꼬아놓았다"며 "간호 유휴 인력이 어느 정도인지조차 제대로 파악을 못하고 있다. 간호인력 얘기를 하는데, 실제 간호사들이 일을 하고 싶은데 안 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등에 대한 조사도 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간호사들은 업무 범위를 정하려 했다. 의료법에서조차 모든 의료 행위를 명시하지 않는데 간호사들이 구체적 영역을 정하려 했다"며 "간호조무사들은 이번 기회를 신분상승의 계기로 삼고 있어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고 꼬집었다.

논란이 거세지고 있지만 추진하겠다는 정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복지부 임을기 의료자원정책과장은 이번 개편안의 핵심은 '역할 구분'과 '질 관리'라고 밝힌 바 있다. 학원에서 양성되는 간호조무사의 관리기전이 없어, 수급관리뿐 아니라 질 관리가 어렵다는 것. 결국 간호사와 조무사 역할 구분을 분명하게 하겠다는 애기다.

복지부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번 사안을 어떻게 풀어갈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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