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득하고 합의할 수 있는 것이 근거중심의료"
허대석 서울대병원 내과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에서 다시 진료 현장으로 돌아온 서울의대 내과 허대석 교수의 얼굴은 예전보다 한결 편안해 보였다.

몇 년 동안 치열한 논란의 중심에서 다시 임상의사로 또 대학교수로 돌아온 기분이 어떨까 궁금했다.

허 교수의 대답은 “허허... 그렇지요 뭐”였다. ‘허허’라는 짧은 단어로 표현했지만 웃는 얼굴에 그동안의 수많은 감정이 녹아 있는 듯 했다.

허 교수는 카바수술(CAVAR) 공방, 글루코사민 효과, 태반주사 효과, 로봇수술, 라식수술 등 그동안 진행됐던 일들은 일정 부분 체계적으로 정리됐다고 자평했다.

우리나라 의료비가 GDP의 약 6.5% 즉 70조원을 넘어서는 있는 상황에서 검증되지 않은 곳에 의료비가 쓰이고 있는 걸 찾는 첫걸음을 뗀 것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

기존 의료기술 정리 못해 아쉽다
허 교수는 “칭찬보다는 눈총 맞을 것을 알면서도 시작한 일이라 후회하지는 않는다.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들이 조금이라도 걸러졌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며 “크게 논란이 됐던 카바수술은 심장전문의들의 논쟁인데 평가기관으로 보건의료연구원이 들어갔는데 이 이해 당사자인 것처럼 비춰져 안타까웠다”라고 소회를 말한다.

신의료기술은 많이 정리했지만 기존의 의료기술들을 정리하지 못해 허 교수는 못내 아쉽다고 했다. 비소세포성폐암에 처방할 수 있는 약은 성분기준으로 21종, 제품기준으로 600종이 넘는데 한달 약값이 5만원 미만인 것도 있고 500만원이 넘는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다고 했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약효과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가격이 비싸다고 효과가 좋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란다. 허 교수는 좋은 약을 저렴한 가격에 쓸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했다.

또 다른 미련은 신의료기술 중 신고도 하지 않고, 게다가 효과까지 있다고 주장하는 의료 기술들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허 교수는 “눈미백수술 등 몇몇 새로운 시술이라 불리는 것들은 대부분 효과 입증이 안 돼 있고, 비급여로 이뤄지고 있어 국민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 사각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이런 부분들을 앞으로도 관심을 갖고 해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근거란 곧 합의에 이르는 언어

허 교수의 근거중심의료에 대한 믿음은 더 굳건해 진 듯 했다. 의료비를 아끼는 관리중심의료가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지속가능한 모델은 아니라는 게 허 교수의 주장이다.

납득하고 합의할 수 있는 것이 근거중심의료이고 여기서 근거란 곧 합의에 이르는 언어라는 얘기다. 약가인하나 지난해 영상장비 수가 인하 논란도 정부가 근거 없이 비용만 절감하려는 단편적인 행동이 문제를 더 키웠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보건복지부가 CT, MRI, PET 등의 수가를 14.7~29.7% 일괄적으로 인하하자 병원계가 행정 소송을 했고 정부가 패했다”며 “정부가 의료비 점감을 목적으로 근거자료 없이 일을 처리했다 정부가 누가 봐도 납득하고 합의할 수 있는 것이 근거중심으로 일을 처리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근거중심의료가 의료계를 옥죄기 위한 일부 의견과 관련, 허 교수는 자율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겠지만 의료는 최소한의 약속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는 국민의 입장에서 봐야하고,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의료는 불투명 상품이라는 얘기다. 이를 없애려면 국민의 신뢰가 필요하고 신뢰를 전달하는 방식은 근거 밖에 없다는 게 허 교수의 주장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기존의 낭비 요인을 없애고 또 우선순위를 정해 근거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얘기다.

허 교수는 의료를 통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 문제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의사, 약사, 제약사, 정부 등이 단순하게 밥벌이로서의 의료가 아니라 공통의 가치, 공동의 목표가 필요하다. 물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의사 따로 약사 따로 모두 각자 움직이고 있어 하루 빨리 공동의 가치를 설정하는 게 중요하다”

인터뷰 중간 중간 보건의료연구원에 쏟는 허 교수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보건의료연구원을 나무에 비유한다면 지금은 갓 돋아난 새싹에 지나지 않는다고 걱정을 했다.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려면 뿌리가 깊게 내려야 하는데 하고 뒷말을 아꼈다.

당분간 허 교수는 진료와 교육에 집중할 것이라 했다. 병원에서 허 교수의 활약을 다시 눈여겨봐야 할 듯하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